현재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화두는 ‘공정한 사회’입니다. 이 말을 제시한 주체가 자기 앞가림하기도 부끄러운 이명박 정부라는 것은 5공 전두환 시대의 모토가 정의사회구현이였던 것만큼이나 민망하고 어처구니없지만 그 구호가 의미하고 추구하는 것 자체의 정당성과 시급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죠. (그렇기에 누가 먼저 담론을 선점하는가는 무섭고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불공평하고 자의적인 편들어주기, 눈감아주기는 심각합니다. 아주 멀리 볼 것도 없이 한 유망한 여성 그룹의 컴백 무대만 봐도 확연하게 드러나니까요.

제목에서 짐작하신 것처럼 SBS 인기가요에서 복귀무대를 가진 2NE1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주 인기가요 전체 방송 분의 15%에 달하는 11분가량의 방송 분량, 다른 가수들과 비교해도 3배에 가까운 시간, 전례에 없던 3곡 완창이라는 방송 몰아주기에 대한 불만이죠. 인기가요 측이나 소속사인 YG에서 내세운 해명이나 설명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혹은 일부 팬들의 편들기와 주장을 들여다보아도 이런 불균등하고 분배에 대한 어떤 타당성도, 명분도, 규칙과 정당성도 찾아볼 수 없기에 하는 말이에요.

다른 누구와의 비교를 하기 위해서, 특정한 편을 들기 위해서 유치하게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상식적이고 원칙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들의 주장처럼 2NE1이 정규앨범의 3곡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이상 어떤 곡을 먼저 내세우기보단 모두를 대중 앞에 선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1년 조금 넘은 공백기 후 오랜만에 복귀하는 그녀들이 현재 1~2주마다 선두가 바뀌고 누가, 어떤 노래가 유행하는지도 알기 힘든 군웅할거의 가요계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인기와 파급력을 가진 가수라는 것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복귀에 많은 이들의 관심과 기대가 크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상황과 SBS 인기가요의 편파적인 편성은 전혀 다른 이야기에요.

2NE1의 트리플 타이틀곡 전략이 그렇다면 앞으로 출연하는 다른 모든 가요 프로그램에서도 3곡을 완창하는 것을 기준으로 할 예정인가요? 한곡을 타이틀로 내세우는 미니 앨범이야 그렇다 치고 다른 가수들 역시도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자신들도 2~3곡을 타이틀로 선정했다며 똑같은 대우를 요구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요? 앞으로도 오랜만에 컴백하는 주목받고 인기 많은 이들에게도 똑같은 분량을 할애할 것인가요? 소속 가수의 출연 분량을 줄이고 그 시간을 같은 소속사의 동료에게 할당해달라고 한다면 매번 그렇게 편의를 제공할 것인가요? 그렇다면 그 기준은 무엇이고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하는 가수들과 팬들의 박탈감과 불만은 어떻게 잠재울 생각이죠? 간단하게만 생각해봐도 YG와 인기가요가 내세운 해명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들일 뿐입니다. 그저 2NE1에게만 예외적이고 편파적이었다고밖에 할 수 없어요.

그녀들이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다고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귀 무대의 완성도와 신곡들의 수준, 인기 정도를 평가하려는 것도 아니에요.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누가 어떻게 복귀 무대를 가지고 해당 방송에 출연하더라도 가수 스스로도, 팬들과 시청자들도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이렇고, 저럴 때는 저렇게 편성을 고무줄 식으로 오락가락 움직이며 일부 가수들의 편의만 봐주게 된다면 굳이 다른 가수들이 들러리처럼 등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애 특집 방송을 만들어 온전히 그들만을 집중 조명해주는 것이 더 나을 거예요.

게다가 이런 예외가 인기가요와 2NE1의(다른 YG소속 가수들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과거 관계 때문에 더더욱 두드러지기에 그렇습니다. 무엇하나 검증받지 못한 신인의 데뷔 무대에서부터 특별 편성과 파격 무대를 제공했던 인기가요는 그 이후에 가수로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일주일에 한 무대만을 고집했던 2NE1의 무대를 한동안 독점하면서 인기가요가 아니면 그녀들을 볼 수 없는 일종의 특권을 한동안 누렸습니다. 최고의 무대를 원한다는 YG의 요구가 인기가요에 부합했다는 서로의 해명이 있었지만, 그런 말보다는 보다 자주 모습을 보기 원하는 대중들의 요구에 응답해야 하는 가수로서 어떤 무대에서도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 옳은 대처가 아니었을까요. 당연히 인기가요와 YG의 밀월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짜고 치기와 편의 봐주기가 이번 컴백 무대에까지 이어졌다는 의심과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례와 원칙을 무시하고 굳이 이런 식으로 강행할 필요가 없었던, 비판과 욕을 먹어도 싼 복귀무대에요.

공정한 사회라는 것은 그리 복잡하지도 난해한 것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하고 확실한 규칙이 존재하고, 그 규칙에 따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순복하며 적용받는다면 달성할 수 있는 목표에요. 하지만 이렇게 핑계를 대고, 저렇게 빠져나간다면 나중엔 모두가 그런 편법과 편의를 요구하게 될 것이고 점점 더 공정하고 올바른 경쟁은 멀어져 버릴 것입니다. 인기가요와 2NE1은 모두에게 축하받으며 기분 좋게 출발해야 할 복귀무대에서 이런 원칙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해 버렸어요.

한낱 걸그룹의 가요 프로그램 복귀 무대에 너무 거창한 기준을 들이댄다구요? 인기가 모든 것인 연예계에 존재하지도 않은 규칙을 내세우며 특정 그룹을 공격한다구요? 이런 순진한 척하는 반발에 대응하는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다른 그룹이 이런 특혜를 받았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였겠냐고. 다른 이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했을 때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선을 넘지 않는 것이야말로 공정한 사회의 첫걸음입니다.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가수, 우리 2NE1은 마땅히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그룹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가수들의 팬들도 모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존중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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