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 돌풍'에 그칠 줄 알았던 제주 유나이티드의 강세가 시즌 중후반을 지나는 이 순간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주는 대단한 팀 응집력, 그리고 하고자 하는 선수들의 의지와 자신감을 앞세워 8경기가 남은 현재 13승 4무 3패, 승점 43점을 기록하며 1위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제주의 잇따른 상승세 속에 치열했던 선두권 경쟁이 21라운드에서 다소 벌어지는 양상까지 보이면서 제주 연고 이전 후 사상 첫 K-리그 정규리그 우승도 정말로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또 FA컵도 현재 준결승까지 올라 K-리그와 FA컵을 동시에 거머쥐는 모습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제주의 최근 모습은 그야말로 '천하무적' 그 자체입니다. 이번 주말에 열린 수원과의 21라운드까지 4경기 연속 승리를 거두는 동안 9골을 넣고 2골만 내주는 탄탄한 공-수 전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번 터지면 그칠 줄 모르는 공격수들의 '한 방'도 대단하고, 짜임새 있는 조직력을 앞세워 보다 빠르고 파워풀한 색깔 있는 축구로 강팀들을 잇따라 물리치며 '완전히 달라진 팀'으로 거듭났습니다. 패배 의식에만 사로잡혀 있었고, 제주 연고 이전 뒤 6강에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했던 제주가 승리하는 완전히 새로운 팀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제주가 지난해와 완전히 달라진 점은 내실 있는 선수 구성과 이들의 장점을 살려 조직적인 팀으로 거듭나게 한 박경훈 감독의 지도력, 이를 바탕으로 선수들이 자신감 있는 플레이로 더욱 짜임새 있는 경기를 펼치며 '지지 않는 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박경훈 감독이 알툴 감독의 후임으로 들어오면서 어느 정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있었지만 서울, 수원 등에서 들어온 선수들의 영입을 통해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에도 변화가 생기면서 리빌딩 작업이 가속화되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은 박 감독은 기존 선수들과 새롭게 영입된 선수들의 조화를 위해 '칭찬하는 리더십', '소통하는 감독'의 면모를 보여주며 순조로운 리빌딩 작업을 벌였고, 선수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장점과 재능을 확실하게 보여주며 새로운 팀을 만드는데 합심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예상보다 빠른 상승세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어쨌든 팀 리빌딩이 어떻게 해야 잘 이뤄지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제주입니다.

▲ 제주 상승세의 중심 김은중(오른쪽)과 이적생 배기종 (사진-엑스포츠뉴스)
사실 박경훈 감독에 대한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2007년 국내에서 열린 U-17(17세 이하) 월드컵에서 대표팀을 맡아 2년간 팀을 가꿔나갔으면서도 1승 2패의 부진한 성적으로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는 쓴맛을 맛보며 '실패의 아이콘'과 같은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으로서 2회 연속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풀타임 출전했던 그였지만 지도자로서의 경력도 부족하고, 그런 안 좋은 성적까지 더해지면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승부사 기질을 앞세워 과감하고 체계적인 팀 리빌딩 작업으로 반년도 안 돼 제주를 최고 순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작년 아니 이전의 제주 팀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팀으로 바꾸면서 선수 시절 얻었던 옛 명성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주와 박경훈 감독 모두 다시 새롭게 평가받고 있는 셈입니다.

K-리그에서 나름대로 잠재력이 있는 선수들로 주목받던 선수들이 제주에서 활력 넘치는 플레이를 펼치는 것도 상승세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퇴물'로 취급받는 줄 알았던 김은중이 주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월드컵 멤버 발탁에 실패했던 구자철 역시 팀의 중원사령관으로서 제 몫을 다 하면서 팀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서울에서 이적한 김호준, 수원에서 이적해 최근 2경기에서 3골을 넣은 배기종, 중원에서 연결 고리 역할을 잘 수행해내고 있는 박현범 등 이적생들의 활약과 신인으로 좋은 실력을 발휘하며 국가대표까지 이름을 올린 홍정호의 활약도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크게 두각을 나타낸 스타는 없어도 내실 있는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많은 점이 어떻게 보면 제주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비결이 됐고, 이들을 한데 잘 묶어 '이기는 팀'을 만든 박경훈 감독의 지도력까지 더해지면서 계속 해서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좋은 점들이 더해지면서 '색깔 있는 축구'를 구사하는 것도 돋보입니다. 팀의 상징 앰블렘이 강자로서의 힘, 강력한 공격축구를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구단 자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었지만 이전까지 그런 모습은 그렇게 비춰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제주는 올 시즌 3골 이상 넣은 경기가 7경기에 이를 만큼 팀 컬러에 맞는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승리하는 팀'의 면모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는 선수들의 창의성과 빠른 팀플레이를 통한 공격력, 안정적인 중원과 수비까지 더해졌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결과였습니다.

지난 해 제주는 14위에 머물렀던 사실상 꼴찌나 다름없는 팀이었습니다. 특히 딱 1년 전인 지난해 9월 13일, 포항과의 홈경기에서 팀 역사상 최다 실점인 8골을 내주면서 1-8로 패해 그야말로 '답이 없는 팀'이라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프로스포츠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던 제주 지역에 단비 같은 존재, 찬사를 받는 팀이 될 것이라는 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패배의 팀'으로 전락하면서 많은 팬들의 안타까움을 받는 팀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스타 한 명 없이도 오직 실력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며 자신감을 만든 선수, 그리고 감독의 의지는 이들을 다른 팀으로 거듭나게 했고, 그 결실을 서서히 맺기 위해 마지막에 최선을 다해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꼴찌에서 최고로'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돋보이는 행보를 걷고 있는 제주가 시즌 막판까지 좋은 성적을 내면서 정규 리그 1위라는 드라마를 쓰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해봐야 하겠습니다. 제주가 우승한다면 K-리그 뿐 아니라 프로 스포츠 전반에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남은 두 달 동안 이 달라진 팀이 어떤 결과를 낼지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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