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 the guest>, <오늘의 탐정> 그리고 <러블리 호러블리>

김영하가 『아랑은 왜』라는 소설에서 다룬 '아랑의 전설', 이는 우리 고전소설인 <장화홍련전>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전래의 대표적 귀신 설화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밀양 고을에 부임하는 신임 부사들마다 첫날밤을 넘기지 못하고 비명횡사하고 만다. 결국 밀양은 기피 부임지가 되고 마는데, 담이 큰 이상사라는 부사가 자임하고 부임한 첫날 이슥한 시각, 잠자리에 든 그를 찾아온 건 '처녀 귀신' 아랑이었다. 양갓집 규수로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여 야반도주를 하였다는 불명예스러운 소문의 주인공이었던 아랑. 하지만 사실은 관가에서 일하던 이와 유모의 작당으로 겁간의 위기에서 저항하다 살해당하고 만 것. 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귀신이 되어 부사를 찾아가지만, 부사들은 그런 아랑의 속도 모르고 귀신이란 존재만으로 혼비백산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 원형적 귀신의 전설에서도 보여지듯, 죽어 저승으로 귀의하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도는 '원귀'의 이유는 바로 '이승'에 있다. 그 이승이 문제인 것이다.

현실에서 고통 받는 영혼의 빈틈을 찾아든 '손’

OCN 수목 오리지널 <손 the guest>

OCN 수목드라마 <손 the guest>는 바다에서 온 '손' 박일도가 그의 숙주가 되는 일반인들에게 들어가며 문제가 발생한다. 박일도에 빙의된 이들은 괴력을 발휘하며 살인도 불사하며 사건을 일으킨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이 바로 이들이 빙의되는 ‘이유’이다. 이른바 영혼의 빈틈이라고 칭해지는 '자존'의 약한 지점을 박일도는 귀신처럼 알아차리고 찾아든다. 극중 첫 번째 빙의자였던 김영수(전배수 분). 그는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하다 터널공사 도중 사고로 인해 온 몸에 마비가 왔다. 하지만 그의 산재에 대해 업주는 나 몰라라 하고 가족들은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방문 너머로 아내의 하소연을 듣고도 위로 한 마디 할 수 없었던 그에게 박일도가 찾아왔고, 그는 자신의 분노를 사업주와 가족에 대한 살해로 풀어내고자 한다.

김영수에 이은 폐차장의 최민구, 최민상 형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생 최민구가 빙의된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박일도가 씐 건 형 최민상. 결국 그를 잡았지만 구마 기회를 놓치고, 최민상은 스스로 잔인하게 자신의 목숨을 거둔다. 그런데 아들이 죽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어수선한 주변 정리를 요구하는 어머니. 정신병에 걸린 둘째 아들도, 박일도에 희생된 형도 그 원인은 어머니의 가정 폭력과 폭언, 학대였다.

OCN 수목 오리지널 <손 the guest>

그리고 문자 메시지로 빙의된 김은희(김륜희 분). 그녀는 자살한 약혼자의 뒤를 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순간에 박일도에 씐 것이다. 외려 죽으려 한 그녀를 구해 복수를 하게 해주었다고 당당한 '손', 빙의된 김은희가 찾아간 곳은 약혼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동료 직원들이다. 그들은 김은희의 약혼자를 왕따 시키고 사내 폭력의 희생자로 만들었으며, 그를 못 이겨 회사를 떠난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아갈 꿈에 부풀었던 젊은 연인은 하루아침에 모든 미래를 빼앗겼다. 약혼자는 스스로 손목을 그었고, 그의 아이를 뱃속에 지닌 김은희는 죽음 대신 무참하게 칼을 휘두른다.

이렇게 드라마 속 손을 부르는 건 ‘현실’이다. 노동자를 외면한 사주의 이기심과 가장의 산재 앞에 신음하는 가족의 고통, 가정 폭력 그리고 직장 내 왕따 등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문제들이 결국 인간을 쇠잔하여 하여, '손'의 숙주로 가장 안정된 조건을 만든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래서 그들의 폭주는 무섭지만 처연하다.

여전히 어린아이인 생령이 벌이는 죽음의 장난

KBS2 수목드라마 <오늘의 탐정>

<오늘의 탐정> 역시 마찬가지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영 선우혜(이지아 분)의 폭주로 인한 범죄. 병상에서 몸은 어른으로 자랐지만 여전히 의식은 벌레를 잡아 죽이던 어린 아이와 다를 바 없는 선우혜는 '장난'처럼 사람들의 목숨을 거둔다. 아이들에게 시달리던 유치원 교사의 경우처럼 거두는 방식이 희생자의 가장 취약한 부분. 그 선우혜의 잔인한 장난에 아직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역시 버림받았던 혹은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으로 보인다.

아들에게 폐만 된다며 어머니의 죽음을 강권하던 선우혜에게 버티던 이다일(최다니엘 분)의 어머니는 결국 대신 아들의 목숨을 거두겠다던 협박에 손목을 긋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청력을 잃었던 정여울(박은빈 분)에게도, 그리고 이제 다시 그 죽음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나선 여울에게도 동생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건드린다. 그런 식이다. 영은 살아있는 인간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귀신조차 불러들이는 산 자의 운명과 사랑

KBS 2TV 월화드라마 <러블리 호러블리>

<러블리 호러블리>의 귀신은 어쩌면 가장 전래의 전형성을 지닌다. 이른바 귀신의 전매특허인 '한'의 현대적 버전이다. 8년 전 코리나 레지던스에서 죽었던 라연과 필립의 어머니, 그 두 사람은 8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귀신이 되어 돌아온다.

그들이 돌아오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사랑'이다. 8년의 주기로 죽을 운명에 빠진 아들 필립과 의붓딸 을순. 그들의 비극적 운명을 막기 위해 무당이었던 어머니가 24년 전 을순의 운을 빌어 아들의 생명을 구했듯이, 이제 귀신이 되어 돌아와 위기의 순간마다 노랫소리로 홀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저질렀던 업보를 필립을 통해 갚아 을순을 구하고자 한다.

KBS 2TV 월화드라마 <러블리 호러블리>

필립의 연인으로 필립의 스토커였던 윤아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라연. 하지만 라연은 거울 속에 스며 침묵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가 돌아왔다. 드라마에서 드러난 건 필립과 그의 공식 연인 윤아, 그리고 작가 을순의 삼각관계이지만, 사실 저변에 흐르는 건 죽은 필립의 연인 귀신 라연과 을순의 삼각관계다. 인간과 귀신이 얽힌 삼각관계, 거기엔 8년의 세월을 넘어 이제 새로운 사랑에 눈을 뜬 필립이 있다. 애증이었던 라연 대신 새로운 을순에게 마음이 향한 필립에 대한 사랑은 라연을 시간의 그늘에서 걸어 나오게 한다.

이렇게 세 드라마 <손 the guest>, <오늘의 탐정>, <러블리 호러블리> 속 호러는 ‘현실’을 길어올린다. 귀신은 무섭지만 드라마를 보다보면 귀신은 처연하고, 차라리 그들을 귀신 들리게 한, 혹은 귀신이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더 안쓰럽다. 그렇게 드라마 속 귀신은 삶으로 인해 죽음의 경계를 허문다. 삶은 그들의 먹이요, 놀이요, 미련이다. '호러'라는 장르를 통해 드라마는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에서 뜻밖에도 ‘삶’을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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