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평가전에서 한국은 전반에 쇼자에이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0-1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만회골을 넣기 위해 잇따라 공격을 시도했지만 이란의 압박에 이렇다 할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에 후반 30분이 지나면서부터는 서서히 이란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걸려 넘어지지 않았는데도 일어나지 않는 이른바 '침대 축구'의 악몽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침대 축구로 한국 축구의 기세를 꺾으려한 이란은 원정에서 한국에 승리를 거뒀습니다. 첫 경기보다 다소 아쉬운 경기력을 선보인 한국 축구였지만 후반 막판에 좋은 기회를 몇 차례 살릴 수 있는 상황에서 '침대 축구'를 구사하며 분위기 흐름을 끊은 이란에 발목이 잡혀 결국 상승세가 꺾이고 말았습니다.

경기장에 꽤 오랜 시간동안 누워 '헐리우드 액션'을 취하는 것을 두고 축구팬들은 '침대 축구'를 한다고 흔히 말합니다. 상대의 기세가 오르거나 흐름이 좋을 때 어떻게 보면 몸으로 때우면서 시간을 끊어 심리적으로 상대 기를 꺾는 효과가 있는 것이 바로 '침대 축구'의 특징입니다. 특히 토너먼트 같은 단기전에서 '침대 축구'를 통해 박빙의 승부에서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7일 오후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한국-이란 평가전에서 박지성이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2010.9.7

상대의 심리적인 부분을 자극하고, 따라 붙으려는 기세를 꺾는 측면에서 '침대 축구'는 하나의 전략이라 볼 수 있지만 이는 후진국형 전략으로 정평이 나 있는 게 사실입니다. 눈에 보일 정도로 시간을 끄는 행위가 이제는 팬들로부터 외면 받고 욕먹는 일이 되다보니 그보다는 심판을 자극하는 다른 방법을 교묘하게 시간을 끄는 것을 더 자주 볼 수 있게 됩니다. 어쨌든 시간을 끄는 행위 자체가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정으로 명시돼 경고 또는 퇴장까지 줄 수 있다고 규정돼 있는 만큼 정말로 아파서 쓰러져 있는 것 외에는 교묘한 '침대 축구'가 예전보다 많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대 축구의 흐름입니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월드컵, UEFA 챔피언스리그 같은 큰 대회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시아 지역에서는 아직도 '침대 축구'를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A매치 평가전이나 또 한 대륙 최고 클럽을 가리는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침대 축구'로 상대를 교묘하게 이기려는 팀들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나라 축구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것밖에 남는 게 없을 텐데 곳곳에서 '침대 축구'로 피해를 보는 팀들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사라지는 '침대 축구'가 아시아 축구에서 유독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걸 보면 아시아 축구 전체를 관장하는 AFC(아시아축구연맹)의 타이트하지 않은 규정 적용이 원인이 돼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듭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중동 지역, 중국 같은 경우에는 '침대 축구'가 정당한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게 강하게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올해 초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에서 중국 C리그 팀들의 지나친 '침대 축구'도 그랬고, 지난해 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서울을 꺾고 올라온 움 살랄 감독이 "침대 축구는 하나의 전술"이라고 규정하면서 정당성을 강조한 것을 보면 아시아 축구 지도자들의 인식이 여전히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하는 데 '한 몫' 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지도자가 그러니 이를 배우는 선수들의 자세는 뭐 당연히 안 봐도 뻔한 거고, 그 때문에 전체적으로 이 지역 선수들이 '후진국형 전략'을 수시로 교묘하게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침대 축구' 외에도 전반적으로 아시아 축구는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한 패스, 호쾌한 슈팅 같은 공격적인 축구보다는 한 골을 지키기 위해 일찌감치 잠그거나 무의미하게 패스해서 시간을 끄는 이른바 '수비 축구' 지향적인 모습을 더 자주 보이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른 일본이 그랬습니다. 예선 3경기에서 네덜란드, 덴마크에만 각각 1실점을, 그것도 덴마크는 패널티킥으로만 골을 내주며 내용적으로는 탄탄한 수비력을 구축한 팀이라는 인식을 해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일본은 철저한 '실리 축구'로 교묘하게 수비적인 축구를 구사하면서 어려운 조에서 16강을 통과한 팀이었습니다. 경기 중에 선수들은 탄탄한 수비 조직력과 더불어 때로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경기장에 쓰러져 누워 시간을 끄는 전략을 자주 보여줬습니다. 그런 전략이 16강전 파라과이전에서도 나타났고, 경기 중에 조는 관중이 카메라에 잡히기까지 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일본팀 입장에서는 16강에 오른 것이 경사스러운 일이었겠지만 수비 지향적인 축구로 16강에 오른 것만큼은 일본 축구 이미지 뿐 아니라 아시아 축구 전체를 욕 먹이는 일이라는 점에서 씁쓸한 16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아시아 축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게 나타나면 그만큼 한국 축구에 돌아가는 피해도 큰 게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 축구의 질을 떨어트리는 침대 축구, 수비 지향적인 축구를 그저 눈뜨고 지켜보는 것은 오히려 한국 축구에 좀 어이없게 피해가 간다는 측면에서 달갑게 봐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오히려 이 기회에 조광래 감독이 현재 팀을 정비해가는 과정에서 유럽 선진형 축구를 구사해 한국 축구를 세계 축구계에 강하게 인식시키고, 아시아의 대표적인 축구 강국이라는 인식을 더욱 확고하게 다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기회'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정말로 정확히 4개월 뒤에 열리는 아시안컵 때도 그렇고, 다음 주부터 8강전이 열리는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그렇고 '침대 축구', '후진 축구'를 구사하는 팀들에 화끈한 축구를 보여주면서 '교묘한 전략'이 아닌 '진짜 축구'로 승승장구해서 우승하는 한국 축구의 통쾌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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