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하든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신(神)이 아닌 이상 몇 번의 실패와 실수를 거듭해야 좋은 성과도 내고 보람된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실수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범했느냐, 아니면 홀로 했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당사자의 느낌도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홀로 했다면 그래도 '아,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죄책감과 반성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했을 때는 그에 따른 부담감, 또 다른 죄책감, 그리고 수치심 같은 게 더해져 더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특히 열린 공간에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 운동선수들 입장에서는 그런 느낌이 더 할 것입니다. 승부가 걸린 경기, 특히 개인 뿐 아니라 국가의 명예도 걸려 있는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같은 대회에는 비판, 비난을 각오하고 경기에 나서다보니 그만큼 부담감도 크고, 그래서 심리적인 요소도 상당히 중요한 게 사실입니다.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하는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다 보니, 특히 요즘같이 인터넷 문화가 발달해 선수에 대한 평가를 너도 나도 누구나 올릴 수 있는 시대에 내부적인 사정도 잘 모르고 결과만 보고 무조건 인신공격성 '악플'을 다는 경우를 보면 참 안타까울 때도 많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 했음에도 단 한 순간의 실수로 결과가 좋지 않아 상당한 비난을 받는다면 심하게는 기량이 퇴보해서 선수 은퇴까지 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는 오늘날입니다. 그래서 운동선수를 하면서, 국가 대표로서 나름대로 좋은 기량을 갖고 있다면 상당히 어려운 여건에서 훈련을 하고, 그 때문에 그에 따른 주변 환경의 적절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자주 입을 모으곤 합니다.

지난 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평가전에서는 좀처럼 실수를 잘 하지 않는 이영표(알 힐랄)가 실수로 결승골을 허용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전반 35분, 하프 라인 부근에서 볼을 잡은 뒤 뒤에 있던 김영권(FC 도쿄)에게 패스를 하려다 너무 짧게 패스하는 바람에 상대 선수에 커팅당해 결국 전방에 있던 쇼자에이에까지 연결, 이것이 득점으로 연결되면서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 골로 한국은 이란에 0-1로 패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고개를 떨궜던 이영표는 소속팀 복귀를 위해 출국하는 자리에서 "내 탓이다. 초등학생도 안 할 실수를 범했다."면서 스스로 채찍질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 이영표 (사진-김지한)
하지만 이영표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대단히 호의적이었습니다. 평가전이라 큰 의미를 둘 이유도 없고, 이미 이영표가 축구 선수 생활을 하고, 국가대표로 뛰면서 선보인 활약이 이것 하나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많은 활동량을 선보여 체력적으로 많이 지칠 법도 하겠지만 우리 나이로 34살이라는 축구 선수로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철저한 자기 관리로 여전히 국가대표급 선수로 활약하는 것 자체가 우리 축구계에 큰 귀감이 되고 있다는 부분도 이영표의 '단 한 번의 실수'를 감싸주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영표 스스로도, 또 팬들도 이번 실수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앞으로 뛸 경기에서의 활약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더욱 많았습니다.

이영표의 실수, 그리고 그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선수가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이영표와 함께 2002, 2006, 2010년 월드컵을 뛰면서 한국 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데 함께 했던 김남일이 그 주인공입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세계적인 선수들 앞에서 오히려 주눅들지 않고 터프한 플레이를 펼치며 한국 축구의 4강 신화에 견인차 역할을 했던 김남일은 '진공청소기'라는 별칭을 오랫동안 가질 만큼 인상적인 모습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습니다. 부상, 부진 등으로 한동안 잊혀질 뻔했던 그는 다시 보란 듯이 일어서서 국가대표팀에서 제 몫을 다 했고, 결국 2010년 월드컵 멤버로도 극적으로 합류해 대표 생활 '유종의 미'를 기대하게 했습니다.

▲ 김남일 (사진 왼쪽- 뉴스뱅크 이미지 F, 조선일보)
그러나 김남일은 단 한 번의 '큰 실수'로 대표 선수 생활에 큰 오점을 남기고야 말았습니다. 조별 예선 그리스, 아르헨티나전에 모두 교체 출전했던 김남일은 최종전 나이지리아전에도 교체 출전해 관록의 플레이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2-1로 앞선 후반 25분 패널티 에어리어 내에서 무리한 거친 백태클로 패널티킥을 허용하면서 동점의 빌미를 제공하는 '중대한 실수'를 범했습니다. 패널티킥 판정을 받은 뒤 김남일의 표정은 일순간 굳어지면서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이후 이를 만회하기 위해 더욱 부지런히 뛰는 모습이 오히려 안쓰럽게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2-2로 비기면서 한국 축구가 그토록 원했던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마음 고생'을 했던 김남일은 한순간에 '월드컵 영웅'에서 '역적'으로 몰리면서 팬들의 상당한 비난, 악플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그의 부인인 아나운서 김보민의 미니홈피에 사람들이 대거 몰려 볼썽사나운 장면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10년간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좋은 성과를 냈음에도 '가장 큰 대회', 그것도 '승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백태클' 하나로 김남일은 순식간에 그동안 쌓아왔던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얼마 전 모 언론사와 인터뷰를 한 김남일은 "원래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이 오래가지 않나. 한국에 남아있던 아내와 가족까지 비난을 받아 가슴이 더 아팠다"면서 당시 실수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아픔을 토로했습니다. 순전히 자신이 잘못 했다고 인정하는 모습도 그랬지만 그동안 대표팀에서 쌓아온 것들, 노력해왔던 것들이 마지막 경기 하나로 아쉽게 마무리됐고, 또 그것을 지금도 감당해내야 하는 걸 보면 더욱 안타깝게만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월드컵 실수에 소속팀 문제까지 더해져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지금은 묵묵하게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주축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김남일'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는 합니다만 아직도 당시의 실수 하나로 김남일을 '저평가'하려 하는 걸 보면 과정보다 결과에만 집착하는 현실이 새삼 무섭게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보여줘서 최상의 결과를 내야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운동 선수가 감당해야 할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제 아무리 좋은 실력을 갖춰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게 부끄럽고 어렵게 여겨져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가 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온갖 어려움을 물리치고 최선을 다하려는 선수, 그리고 그런 최선을 다했던 것을 경기에 1-2번도 아니고 꾸준하게 보여주는 선수라면 우리는 결과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박수를 쳐주고 격려해줘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영표에 대한 팬들의 '선플'이 정말로 선수에 대한 인신공격, 그리고 결과에만 집착하는 문화가 사라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 번 실수했다 해서 무작정 비난하는 것보다 그 선수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 그리고 앞으로도 기대하는 바 등을 생각해서 좀 더 다른 시선으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이번 이영표 '선플'을 통해 기대해 보겠습니다. 이영표든 김남일이든 우리를 대표하는 국가대표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를 기분 나쁘게 해줬던 것보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해준 순간이 더 많았다는 걸 늘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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