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제빵왕 김탁구는 그 만듦새가 탄탄하고 설정을 세심하게 가다듬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는 아닙니다. 물론 40%를 넘은 시청률은 굳이 월드컵 중계로 오랜 결방을 감행했던 SBS의 과격한 편성 덕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작품 자체의 장점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매주 내용을 궁금하게 만들도록 시청자의 긴장감과 호기심을 적절히 조절하는 빼어난 호흡관리와 내용의 흡입력, 그리고 미숙하고 불안한 젊은 주인공 연기자들을 잘 이끌며 극을 주도해온 전인화나 정성모, 전광렬 같은 중견 연기자들 덕분이죠. 하지만 그런 큰 줄기를 제외한다면 제빵왕 김탁구는 여기저기 가져온 소재들이나 설정들에 납득하기 어려운,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드라마에요.

그래도 지금까지는 이런 작은 흠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 몇몇 실수나 억지들에 집중하기에는 김탁구와 구마준의 제빵 대결이 흥미진진했고, 팔봉 선생님의 가르침이 따스했고, 거성가와 그룹을 둘러싼 두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성과 부성이 만들어준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기 때문이죠. 어차피 그 토대를 재벌가에서 일어난 출생의 비밀과 불륜에서 출발했던 이 작품은 세심한 설정과 현실성보다는 자칫 막장으로 빠질 수 있는 민감한 소재를 성장드라마, 액션 활극, 전문직 드라마 등등 여러 장르의 혼합과 조율, 그리고 각각의 캐릭터로 극복했던 묘한 퓨전 드라마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꾹꾹 눌러오던 완성도의 이음새와 얼개가 종반을 앞둔 지금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벌여 놓은 이야기가 워낙 많기에 해결해야 하는 숙제들이 하나둘도 아니고, 이 모든 것을 급작스럽게 풀어내기 위해서는 다소 무리한 억지 설정이 불가피해 보이거든요. 팔봉선생님이 돌아가시고 김탁구가 거성가에 들어간 실질적인 다른 시즌을 시작한 시점부터, 제빵왕 김탁구에는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하나 둘씩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병상에 쓰러진 구일준 회장은 그나마 자신의 사람이었던 공주댁도 쫓겨나 이젠 스스로 누구 하나 믿을 사람 없다고 한탄했던 거성가에서 감쪽같은 이중생활을 잘도 지속했습니다.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든 불편한 상황에서 큰딸 자경에게 들킨 시점이 이렇게 늦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에요. 그 증세를 금방 알아챘을 의사의 입은 어떻게 막고, 밥은 어떻게 먹고, 화장실은 어찌 갔답니까? 아무리 잘사는 회장님댁 넓은 궁궐 같은 집이라지만 회장님의 꾀병이 가능하기 위해선 기본적인 생활을 방 하나에서 환자 혼자서 다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허술했다는 것을 납득해야 합니다.

김탁구와 어머니의 어이없는 상봉 장면은 또 어떻구요. 한실장의 수족이 되어 오랫동안 폭력, 감금, 협박, 살인까지도 거리낌 없이 자행하던 이 깍두기 아저씨들은 갑자기 김탁구의 14년 모자 상봉을 방해하지 말라는 눈물 섞인 절규를 듣고 갑자기 부르르 떨며 말없이 물러나고, 심지어 아무리 금수 같은 짓을 했어도 부모의 정은 끊을 수 없다며 한실장과의 관계까지 끊어 버립니다. 이런 남자의 정과 로망을 가진 깡패들이었다니, 이럴 줄 알았다면 신유경도 협박을 받았을 때 아버지와의 아픈 상처를 고백했다면 그냥 구마준과 상처투성이 결혼을 할 것도 없이 김탁구와 이어질 수 있었을 텐데 싶더라구요.

그뿐이랍니까. 엄청난 정보력으로 거성그룹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김탁구의 어머니 사람들은 그가 어머니를 손수 모시기 전까진 그토록 찾아 헤매던 김탁구가 2년이나 머물렀던 팔봉빵집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고, 한실장에 의해 각종 악행과 범법 행위가 벌어지건만 구회장부터 김탁구와 그의 어머니 모두 경찰 같은 공권력에 의뢰할 생각도 없습니다. 회사 지분을 차지하기 위해서,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각종 협박과 납치같은 범죄가 밥 먹듯이 일어나지만 아무도 그 억울함과 불법을 호소하지 않고 한실장만 째려보고 끝날 뿐이에요. 어쩌면 김탁구의 80년대는 정의사회 구현을 부르짖던 것과는 달리 무법지대였었나보죠.

의도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일중 회장은 어머니 죽음의 진실을 알기 위해선 모두를 속이는 방법밖에는 없었을 것이고, 김탁구의 한량없는 덕과 인망으로 주위 사람을 감화시킨다는 중심 스토리 때문에 악당들까지도 그의 진심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겠죠. 어머니와 김탁구의 감동 재회를 위한 타이밍을 맞추기도 했어야하고, 한실장의 악행을 부각시키기 위해선 그것을 멈출 공권력 같은 제동장치는 필요하지 않았어요. 모두가 드라마의 흐름을 위한 알고도 모른척한 부실공사들일 겁니다. 이 드라마는 그 모든 것을 덮을만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고, 그래서 그런 소소한 허점과 무리수들이 내용 몰입을 방해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점점 더 말도 안 된다며 욕을 하며 보게 되는 막장 드라마 같은 씁쓸함이 강해진단 말이에요. 어차피 방송이 진행되면서 점점 더 방송 시간과 별반 차이 없이 실시간으로 촬영을 감행해야 하는 한국 드라마의 촬영 여건 속에서 갈수록 떨어지는 작품의 질은 어쩔 수 없다지만, 제빵왕 김탁구는 40%의 시청률에 걸맞지 않은 빈틈을 너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부디 이제 도착점을 코앞에 둔 히트작이 이런 씁쓸한 무리수들 없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가장 좋은 해결책은 팔봉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부터 김탁구의 거성 그룹 적응을 다루는 시즌 2를 따로 제작하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작품의 완성도도 급격하게 떨어졌을 뿐더러, 사실 스승의 죽음 이후로 주인공 김탁구는 본래 목표인 제빵왕과 별반 상관없는, 모두를 용서하고 사랑하지만 별로 매력은 없는 시시한 성인군자로 변해 버렸거든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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