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언제나 사고, 긴장, 갈등의 연속입니다. 그저 보통 사람들이 사는 것 마냥 별일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기만 하면 굳이 TV 앞에 앉아서 1시간 동안 드라마를 보지는 않겠죠. 도무지 현실에선 없을 법한 일들만 가득하고 그런 사건들이 이어질수록 등장인물들은 우왕좌왕하며 더욱 더 사건을 키웁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일들이 진행될 때마다 누군가는 상처입고 아파하고 혹은 성공하고 행복해합니다. 드라마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은 작품 속 그들의 감정을 쫒아가며 그들의 마음에 공감을, 그리고 혹은 반감을 가지며 울어도 보고 욕도 하고 웃기도 하는 즐거운 대리만족을 경험하는 것이죠.
주인공 김탁구는 희망찬 미래만을 생각하며 세상에 뭐 저런 천사가 다 있나 싶은 선행과 올곧음을 보여주지만, 어머니와 생이별, 툭하면 자기를 향해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 사랑하는 이마저 자신의 동생(핏줄하나 섞이지 않은 이상한;;)이자 라이벌에게 뺏기는 실패를 생각하면 결코 행복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구마준은 행복할까요? 이 열등감 덩어리가 사는 이유는 오로지 복수와 반항 밖에는 없어 보입니다. 행동 하나하나는 완전 밉상에 삐뚤어졌지만 이 도련님의 삐쭉거림은 안쓰럽고 서글퍼 보일 뿐이죠. 그의 아내가 된, 아무리 봐도 어설픈 악녀 신유경라고 해서 행복하겠어요?
하지만 이 모든 불행과 슬픔을 다 합친다고 해도 우리의 한 실장님만 할까요.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선 어떤 과정도 생략하고 무시하는, 이 드라마에서 제일 악독하고 잔혹한 남자, 최고의 악역이지만 왠지 그의 악행을 보며 욕설과 비난을 쏟아내기 보다는 불쌍한 연민이 느껴질 뿐입니다. 어릴 적 사랑이었던 서인숙을 친구에게 빼앗기고, 그녀의 삐뚤어진 아들 욕심을 이용해 불륜으로 품에 안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무심한 남편 구일중 회장에게만 향해 있죠. 갖은 악행을 마다않고 오로지 자신의 사랑과 그의 아들 구마준을 위해 힘써왔지만 이 모자들은 그의 노고와 희생을 무시하고 깔볼 뿐입니다. 거성 그룹을 세우기까지는 그의 역할도 분명 있었을 터이지만 구일중 회장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한 실장의 또 다른 모든 것인 거성그룹에서 쫒아낼 생각만 하고 있죠. 아무리 나쁜 짓을 하며 살아왔다지만, 그는 자기가 손을 더럽히며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고 무시당하고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에서 김탁구의 정반대편에 서있는 진정한 라이벌, 가장 불행한 남자는 한 실장이에요.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수단이 가진 선과 악의 방향,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의 크기와 방법,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로 받는 주위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김탁구와 가장 다른 삶의 방식, 결과를 가진 남자는 한실장입니다. 똑같이 불행하게 시작했고 지금도 우울한 환경에서 싸워가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정 반대인 이 두 남자의 다툼이 김탁구의 핵심 줄기에요. 드라마의 생명력이 매력 있고 납득할 수 있는 악역의 힘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지금 이 드라마가 누리고 있는 인기의 힘은 또 다른 악의 축, 서인숙과 한 실장에게 있습니다. 김탁구의 제작진들은 잔혹하지만 불행한 남자 한 실장을 이렇게 멋지게 구현해준 관록의 연기자 정성모에게 큰절이라도 해야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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