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선거제도 개혁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현행 소선거구제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에서 시작된 선거제도 개혁의 적기가 다가왔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가 선거제도 개혁을 제1과제로 삼으면서 포문을 열었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지로 화답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역시 선거제도 개혁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문희상 국회의장도 "선거구제 개편은 헌정사 70년의 최대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당장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이뤄져야 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정개특위 명단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비교섭단체인 정의당 심상정 의원을 정개특위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미디어스는 선거제도 개혁 운동을 이어온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만나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과 당위성, 현실적인 어려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연합뉴스)

Q.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는 지금이 바로 선거제도 개혁의 적기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왜 지금이 적기인가?

선거제도 개혁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정치권 안에서 합의가 가능한 상황이 마련돼 있어야 하고, 또 하나는 권위 있는 기관의 안이 있어야 한다. 한 가지 더 보태면 여론이 뒷받침 돼야 한다. 현재 각 당마다 차이는 있지만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놓은 안을 무시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여론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뜨겁지는 않지만 방향성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처음에 말한 합의가 가능한 상황인데, 지금 그래도 그 조건이 괜찮다.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이 없다는 점, 지방선거 전에 강하게 반대했던 자유한국당이 지금은 그 정도까지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 여당인 민주당이 속으론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당론으로 돼있다는 점, 나머지 정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정도로 정치세력간 합의가 가능한 요건이 만들어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정개특위만 구성되면 역대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하기 가장 좋은 조건이 마련될 것이다.

Q. 그러나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구성은 난항을 겪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정개특위 명단을 내지 않고 있다. 아마 소수정당인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위원장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으로 보인다. 정개특위가 구성되고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면 자유한국당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을 수 있다. 특위 구성을 바꿔서라도 협상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Q. 시기적으로 적기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지만, 선거제도 개혁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선거제도 개혁은 늘 어렵다. 세계 어느 나라의 사례를 봐도 선거제도 개혁이 어렵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조건이 좋은 상황이다.

Q. 내년 4월까지 정개특위가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진다면 그 이전에 결정이 돼야 하기 때문에 연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합의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하지 않나?

시간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쟁점이 이미 정리가 돼 있고, 법안도 발의돼 있다. 선관위가 제시했던 안에서 의원 정수만 바꾸면 되는 상황인데, 그건 시간이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정개특위가 가동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할 거냐, 말 거냐, 하자는 쪽으로 간다면 세부적인 건 하루면 정리될 수 있는 내용들이다.

Q.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혁에 개헌을 걸었다. 민주당은 대통령 4년 연임제, 자유한국당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연동하고 있다.

민주당이 개헌을 연계한 건 간접적으로 선거제도 개혁을 하지 말자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민주당은 2020년 총선 전에 개헌할 의사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의사가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지난 지방선거에서 개헌이 안 되면 총선 때는 개헌을 안 한다는 게 민주당 입장이었다.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시작되면 민주당은 개헌 얘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거다. 자유한국당에서 진짜 개헌 논의를 하자고 나오면 민주당이 곤란해질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원래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같이 하자는 입장이었다. 지방선거 당시 안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돌입하면 자유한국당도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민주당이 개헌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선거제도 개혁에 개헌을 걸었다가 선거제도 개혁이 어려워지면, 책임을 뒤집어쓰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Q.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어떤 장점이 있나?

일단 정당들이 정책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현재 정당들은 정책경쟁이 아닌 정쟁만 하고 있다. 지금 선거제도 하에서는 상대방의 발목을 잘 잡아야 다음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건설적 대안을 얘기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고, 그런 정치인은 정치를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 당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중심의 선거제도이고 따라서 개인의 발목을 잡는 정치가 아니라 정책 대안을 말하는 정치로 바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까지는 승자독식 선거제도가 승자독식의 사회를 만들어왔다. 국회 자체가 기득권화돼 있기 때문에 사회 자체도 기득권을 가진 사람에게 유리한 것이다. 최근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가 얘기했지만 선거제도 개혁을 가장 바라지 않는 사람들은 기득권 세력들이다. 기득권 행정부 관료의 입장에서는 국회가 지금처럼 무능해야 편하다. 국회의원들에 정책을 파고들고 제대로 행정부를 견제하기 시작하면 본인들은 피곤해진다.

재벌도 마찬가지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제대로 된 정당이 생겨서 재벌정책을 만들면 피곤해진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의원 개별적으로 약점도 많고 검찰개혁을 할 능력도 없으면 편하다. 반면 정당들이 검찰개혁 논쟁을 하고 대안으로 법안을 만들어버리면 검찰도 피곤해진다. 기득권 집단들은 지금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는 걸 바랄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선거제도 개혁을 하면 그 기득권 집단들을 다 개혁할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Q.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대표성을 강화하고 다당제를 유발한다. 다당제가 정착되면 대통령제 존치가 어려운 것이 아닌가?

꼭 그렇지는 않다. 요즘 논문들에서도 나오지만 대통령제와 다당제가 결합된 나라가 많다. 사실 대통령제를 선택한 나라가 많지 않고, 대통령제를 택한 나라의 다수는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중남미는 대체로 대통령제에 비례대표제다. 그 중에 정치가 불안정한 나라도 있지만 코스타리카, 우루과이처럼 정치 안정이 잘 된 나라도 있다. 단순히 대통령제와 비례대표제가 맞지 않다고 볼 수 없다.

대통령제에서 다당제가 될 경우에 대통령이 소속정당 외에 다른 정당의 지지를 얻어 연립정부를 구성해 운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나라만 해도 여소야대가 여러 번 만들어졌었다. 여소야대가 되면 대통령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협치를 하든 연립정부를 구성하든 해야 한다.

최근 정당학회 보고서에서 대통령제의 문제점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비례대표제 도입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권력구조를 바꾸지 않더라도 다당제 국회를 만들어 국회가 견제 기능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국정운영할 때 여당만 갖고는 안 되기 때문에 협치나 합의제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효과도 있다.

Q.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국민들에게 잘 홍보돼 있는지 의문이다. 적극적인 지지여론이 형성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 하지만 국민들이 내용을 정확히 알게 되면 찬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언론이 참 문제다. 공중파 방송사 같은 곳에서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 공영방송이 다시 민주화됐다고 하는데, 민주화된 방송이 제도개혁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게 무슨 방송 민주화인가.

사실 이명박, 박근혜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기존의 방송적폐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민주주의 제도의 결함 때문에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탄생하고, 그것 때문에 방송적폐가 생겼다. 적어도 MBC, KBS는 스스로가 그렇게 문제가 많았던 것이 견제 받지 않는 승자독식 선거제도 때문이란 걸 알아야 한다. 또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민주주의 제도를 바로잡을까 얘기를 해야 하는데, 언론이 이런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방송사들 시청률 걱정할 때가 아니다. 나라 전체의 미래가 걸려있는 일이다. 시청률이 좀 덜 나오더라도 선거제도 개혁 얘기는 해야 한다. 저는 방송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Q. 하승수 대표는 '세금도둑잡아라'에서 국회 정보공개소송을 주도하고 있다. 국회가 특활비를 스스로 삭감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제 시작이다. 아직 많이 남아있다.

Q. 그런데 일각에서는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게 아니냔 지적도 나온다.

그렇지 않다. 정치혐오는 이미 심하다. 국회의원이 나쁜 일을 해서 언론에 보도가 되면 국민들의 반응은 '원래 나쁜 놈들'이란 반응이다. 배신감을 토로하는 국민은 적다. 이미 정치혐오가 극에 달했다는 증거다. 정권이 바뀌면서 대통령에 대해서는 오히려 기대가 있지만, 국회에는 기대가 없고 불신만 강한 게 현실이다.

제가 의도하는 것은 국회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다 드러내 어떻게 개혁할지 얘기를 해보자는 거다. 물론 국회의원 중에서도 개혁하려는 사람이 있지만, 내부개혁은 쉽지 않다. 국회의장도 실권이 별로 없어서 할 수가 없다. 결국 국회 내부개혁이 어렵다면 국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공개해 여론의 압박을 통해 개혁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봤다.

저도 사실 소송을 여러 건 하고 있지만, 바라는 건 큰 틀의 결단이 내려지는 것이다.

Q. 큰 틀의 결단이란 무엇인가?

문희상 의장 같은 분들이 특활비 내역 등을 모두 공개하는 결단을 하는 것이다. 국회의장은 정보공개 권한이 있다. 과거의 관행이었던 것은 시정하고,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법적 책임을 져야겠지만, 그런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참여연대 활동을 하던 시절에 고건 서울시장에게 업무추진비 정보공개 소송을 했었다. 소송 과정에서 고건 시장이 완전히 우리가 원한 자료는 아니었지만 자료를 일부 공개했다. 이후 고건 시장은 이걸 계기로 복마전이었던 서울시를 투명한 서울시로 개혁하겠다면서 여러 제도를 개선하고 홍보했다. 이 일로 국제 투명성 기구에서 상도 받았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역으로 이용해 홍보의 계기로 삼았다. 이런 지혜를 발휘했으면 한다.

제 목표는 명확하게 국회 개혁, 선거제도 개혁이고 정보공개는 하나의 수단이다. 국회 내부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정보공개를 했고, 이제 필요한 건 국회 내부에서 개혁가가 나서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개혁을 선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국회의장이든, 여당 대표든, 야당 대표든, 국회에서 이니셔티브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진정성 있게 나선다면 국민들이 엄청난 호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문희상 의장이 나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국회 예산 사용 내역을 공개하고, 비판 받을 것은 받고 책임질 것은 지고, 선거제도 개혁 등의 동력으로 삼으면 좋지 않겠나. 국민들은 지지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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