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자유한국당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명단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당초 정개특위 위원장으로 내정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평화와 정의가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했기 때문에 심 의원을 정개특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를 두고 자유한국당이 정치상황의 변화로 선거제도 개혁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역시 선거제도 개혁에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거대양당이 선거제도 개혁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연합뉴스)

지난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한 종류인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선거제도 개편안을 국회에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19대 국회는 선거제도 개혁을 이루지 못한 채 지역구 의석을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는 선거구 획정안을 내놨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여파로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하면서 선거제도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입장은 유연해진 것처럼 보였다. 지난 7월 2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헌 논의가 이뤄지면 국가 권력 구조 개편과 함께 선거구제 개편, 권력구조 혁신 이 세 가지 문제는 필연적으로 맞물릴 수밖에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서 기존의 입장에 함몰되고 매몰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권력구조 개편을 염두에 둔 발언이긴 했지만,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았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에 유연한 입장을 보이는듯 했던 자유한국당이 다시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다. 당장 자유한국당은 정의당의 정개특위 합류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정당 중 하나다. 자유한국당의 이러한 주장은 결국 2020년 총선이 다가옴에 따라 민주당과 1대1 구도를 만들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지방선거 직후까지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벌였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율 역시 50% 전후를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치상황이 심상치 않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민주당 지지율 역시 하락세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율이 40%를 밑돌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정치상황의 변화로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1대1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당제를 사실상 제도화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를 자유한국당이 진행할 필요성이 사라졌단 얘기다.

자유한국당이 정개특위 구성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것에 대해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양당체제를 생각하고 있어서 그럴 것"이라고 분석했다. 엄 소장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다당제 기반이 제도화 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같은 정당의 독자생존의 여지가 커진다"며 "이걸 막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엄경영 소장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하락하고, 민주당 지지율도 하락하고 있다"며 "한국당 입장에서는 향후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커진 것 같다"고 봤다. 엄 소장은 "이대로 가면 2020년 총선에서 해볼만 하다는 전망이 많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강하게 주장했던 더불어민주당도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건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집권 이후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민주당은 4년 연임제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권력구조 개편을 야당이 받아주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9일 이해찬 대표는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연계해서 해야 하는데, 우선 선거구제만 바꿀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개헌하고 같이 해야 한다"며 "야당이 정부·여당 안에 동의하면 저희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거대양당이 '권력구조 개편'을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에 끼워 넣으면서 선거제도 개혁은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을 중심으로 정계개편 논의가 잇따른다는 소식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어려워지면 군소정당은 당선자를 배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몸집을 불리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엄경영 소장은 선거제도 개혁 성공의 열쇠는 민주당이 쥐고 있다고 봤다. 엄 소장은 "현재 정치 상황에서 민주당이 선거제도 개혁을 강하게 추진하면 한국당도 반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엄 소장은 "민주당이 천년만년 집권하는 것이 아니다. 힘이 있을 때 손해 보는 것 같더라도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며 "민주주의 기반을 확충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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