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망 중립성 유지 또는 강화보다는 완화 쪽으로 기우는 상황이다. 망 중립성은 트래픽 양에 상관없이 사용료를 동일하게 부과하는 것으로 통신망 제공사업자가 모든 콘텐츠를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그러나 망 중립성 원칙의 훼손은 중소 콘텐츠업체, 스타트업 등을 고사시켜 혁신성장의 동력을 잃는 길이 될 것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통신업계, 망 중립성 완화·폐지 주장

미국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망 중립성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은 망 중립 원칙 하에 제한적이고 최소한의 망 중립성 완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도 통신업계를 중심으로 세계적 추세에 따라 망 중립성 완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망 중립성이 경쟁과 혁신, 이용자 편익 등의 관점에서 시장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반박이 제기된다.

통신업계를 중심으로 망 중립성 완화 또는 폐지 의견이 팽배하다. 통신업계는 통신비 인하 정책에 따른 통신사의 수익성을 보전하고, 5G, IoT 등 신성장 사업 투자를 위해서라도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며, 망 중립성 완화 또는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통신업계는 인터넷 기업에 책임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제로레이팅이나 트래픽 유발 수준에 따른 망 사용료 조정을 주장한다. 또한 특정 콘텐츠 사용자가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면 전체 네트워크에 부담이 되고 인터넷 품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트래픽 제한, 망 사용료 차별을 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망 중립성이 완화·폐지되면 인터넷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된다. 인터넷콘텐츠업계를 중심으로 망 중립성이 경쟁과 혁신, 이용자 편익 제고 등 시장 근본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포털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시민단체들은 국내 인터넷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고 미국 상황에 따라 망중립성을 훼손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다. ISP사업자들이 콘텐츠 사업 진출을 꾀하면서 경쟁 콘텐츠 사업자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망 중립성 완화 내지 폐지를 주장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ISP사업자가 콘텐츠사업자나 이용자에 대해 정보의 양·내용에 따라 망사용 차단·지연이 가능하다면, 망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망 중립성 완화·폐지, 혁신성장 걸림돌"

특히 망 중립성 완화 내지 폐지가 이뤄지면 '혁신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당장 ISP사업자들의 수익이 늘어날지는 모르지만 중소 콘텐츠 사업자, 스타트업, 1인 기업 등은 망 사용료를 감당할 수 없어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 인터넷 사업자인 네이버, 카카오, 향후 망 이용대가 지불자가 돼야 할 구글의 유튜브, 넷플릭스 등과 같이 충분한 재정적 역량을 보유한 기업 외에는 살아남기 어렵단 얘기다.

또한 이미 인터넷 사업자들과 일반 이용자들은 망 사용료를 내고 있다. 인터넷 사업자들은 트래픽양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요금을 지불하는 종량제 방식으로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고 있고, 일반 이용자들은 유선망에서는 정액제, 모바일에서는 종량제를 통해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특히 망 중립성 원칙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네트워크 접속은 국민 기본권이자, 융합·초연결 시대의 핵심"이라며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무선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등 기본권을 확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소비자 친화적 서비스 경쟁 촉진을 위한 망 중립성 보장'을 내세웠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방송정보통신 수석전문위원은 "미국의 망 중립성 완화 기조를 무조건적으로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편협한 사고의 산물"이라며 "망 중립성 원칙에 대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직접 천명했을 뿐만 아니라 대선공약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안정상 수석전문위원은 "망 중립성 완화는 포털 등 대형ISP보다 스타트업들의 혁신과 성장을 위협할 것이 자명하다"며 "통신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 구조를 가지지 못한 대다수 스타트업들의 혁신과 아이디어는 시장에 내보이지도 못한 채 주저앉게 되고, 인터넷 서비스는 대형 포털사 중심으로 변화와 혁신을 수용하지 못한 구조로 성장 정체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신업계는 5G망 투자 유인을 위해 망 중립성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 수석전문위원은 "해외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들로부터는 망 사용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국내 이용자나 콘텐츠 사업자들에 대해 망 사용료를 유도하기 위한 계산된 노이즈 마케팅"이라며 "국내 망 사업자인 이동통신사는 저렴한 5G 주파수 경매대가 지불, 필수설비 공동 활용 등으로 실제 5G망 투자비의 상당부분을 절감했는데, 이런 부분은 숨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