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미디어스

Updated 2018.11.18 일 13:09
상단여백
HOME 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스터 션샤인’- 총을 든 규방 처자, 존재론적 선택을 향해 달려갈 세 남자[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8.09.10 16:42

조선은 유교 사상이 사회적 체제가 된 시대였다. 모계적 전통이 남아있던 조선 초기만 해도 신사임당의 사례에서 보듯이, 결혼하고 친정에 머물며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가풍이 가능했다. 하지만 유교적 질서가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가며 여성은 우리가 아는 '삼종지도', 어려서는 아비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그리고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가부장제에 일체화되어 간다. 우리는 이슬람 여성들이 쓰는 히잡 문화를 생소해 하지만 조선시대 쓰개치마의 용도는 히잡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한 나라의 공주조차도 결혼하면 시댁의 문밖을 나서는 것이 쉽지 않았던, 그래서 '규방'이라는 곳이 여성들의 세계이자 감옥이 되었던 시대, 그 시대의 끝자락에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애신(김태리 분)이 있다. 

하지만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우리가 만난 건 남자의 복색을 하고 총을 든 여인이었다. 한밤중 지붕을 타고 총을 겨누다 만난 남녀 주인공, 그렇게 드라마는 구한말 최고의 명문가 규수인 애신의 파격적인 면모로 시작된다. 

총을 든 규방 처자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는 그녀가 총을 드는 이유를 애신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일찍이 의병이었던 아비와 어미, 하지만 그들은 조국을 팔아넘기기로 작정한 일본의 앞잡이 이완익과 그에게 자신을 팔아넘긴 동지에 의해 타국 일본에서 살해당한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동지와 애신을 구한 어미 덕에 애신은 무사히 고씨 가문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조국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부모, 그리고 가산을 기꺼이 의병 자금으로 내놓으신 할아버님의 아래에서, 마치 유전적 소인처럼 애신은 풍전등화의 조국에서 총을 든다. 그녀에게 의병 활동은 '당위'였다. 

하지만 동시에 애신은 여전히 조선 최고 명문가의 아녀자다. 스물아홉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지만 정혼자가 있고, 지엄한 명문가의 규율에 맞춰 외출 시엔 가마를 타고 하인을 대동하며, 쓰개치마를 뒤집어쓰는 유교적 생활이 몸에 밴 여인이다. 혼인을 하지 않겠다,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그녀의 고백에 할아버지가 내린 엄명을 어기지 못하고 달려가다 대문 앞에서 멈추어버리는 여인. 여전히 그녀는 조선의 양반가 규수였다. 

양반가 규수이자 의병의 일원으로 총을 든 여인, 이 아이러니한 조합. 하지만 그 조합은 개인 애신이 아니라, 유교주의 사회에 의병의 가풍이라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선택이었다. 즉, 애신은 그 당시 조선의 여인으로서는 그 누구보다 파격적인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에 애신 '개인'은 없다. 마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적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든 논개와 다르지 않은 선택이다. 

사랑을 통한 인식의 확대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그렇게 할아버지가 정해준 틀을 넘어서지 않으며 살아왔던 애신의 삶에 균열을 불러일으킨 건 '사랑'이었다. 가장 사적이고 감정적인 사건, 총을 겨눈 자리에서 만난 자기와 같은, 하지만 자신과 전혀 다른 이. 유진 초이라는 이방인에 대한 불안함으로 시작된 만남은 호기심과 궁금함을 넘어 어느덧 사랑으로 흘러간다. 

그 이방인에 대한 관심은 동시에 지금까지 견고하게 지켜왔던, 애신이 쌓았던 의병이자 규방 처자로서의 옹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미스터 션샤인>이 흥미로운 건, 등장인물 개개인 모두가 격동하는 구한말 조선에서 각자 자신의 사회적 존재론에 근거하여 어떤 입장을 선택하지만, 가장 개인적인 감정 '사랑'을 통해 그 자신이 했던 선택에 질문을 던지며 사회적 갈등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돌이켜보면 왜 애신이 유진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어느 틈에 유진이 애신과 함께하기 위해 기꺼이 그 길을 향해 가게 되었는지, 2018년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뜬금없기도 하다. 생각 외로 <미스터 션샤인>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친절'하지 않다. 아마도 그건 김은숙 표 드라마에서는 사랑이 당위라는 전제 위에서 쌓여진 서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사랑이 사회적 자각의 확산을 위한 작위적 설정에 근거해서이기도 하다. 이제 종반을 향해 달려가는 이 드라마에서 여전히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두 주인공의 사랑, 그 개연성에 대한 의문은 바로 이런 설정으로부터 기인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그녀가 했던 옳은 선택이었던 의병 활동. 하지만 그 선택이 의지론적이었을 뿐, 얼마나 현실적인 고민이 부족했는가를, 애신은 유진(이병헌 분)을 구동매(유연석 분)를 쿠도 히나 (김민정 분)과 만나며 깨닫게 된다. 그저 나라를 구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일. 하지만 과연 자신이 구하려는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가,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노비였던, 백정이었던 이들을 통해 하게 된다. 양반 댁 규방 처자, 우물안 개구리였던 자신의 인식의 한계를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녀가 선택한 전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전제에 대한 의문은 그녀의 선택이 가졌던 안이함을 단련한다. 그래서 유진에 대한 마음으로 그녀는 거뜬히 그녀를 가뒀던 고씨 가문의 담을 넘는다. 이때 그녀가 넘는 담은, 총을 들고 넘었던 담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극복'이다. 여전히 고씨 가문의 손녀인 그녀는 당시 양반가 여성으로서 치욕이 될 수도 있는 정혼을 파하고 유진과의 길 위에 서고자 한다. 
​​​​
담을 잃은 그녀, 대신 담이 되어주려 할 그들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하지만, 그녀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할아버지의 죽음은 그녀를 원래의 궤도로 돌려놓는다. 이제 그녀에게는 큰마음을 먹어야 넘을 수 있던 담 자체가 없어졌다. 대신 그녀가 든 총은 더욱 그녀와 일체화되었다. 할아버지가 죽으라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려 했던 사랑은 이제 그저 헛된 꿈이 되었다. 이제 납치당한 이정문을 구하는 임무를 위해 사랑하는 이를 기꺼이 이용하려 들 만큼. 

드라마는 고씨 가문이라는 담을 잃은 애신의 고뇌는 생략한다. 가문을 잃은 처자의 존재론적 고민은 물을 가치조차 없다 여긴다. 그 부모가 죽음으로 대신했듯 애신 역시 그러할 뿐이다. 총을 든 채 나타난 의병의 일원으로 그 모든 걸 설명하고자 한다. 아마도 <미스터 션샤인>이 가진 행간은 이 '선택'의 고민이 가진 말줄임표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그 말줄임표를 강제하는 건 풍전등화의 시대다.

대신, 그런 그녀를 두고 고뇌의 칼날은 남성 캐릭터들에게 향한다. 6개월 동안 연락도 없는 애신에 유진은 애가 타고, 나라의 위기에 애신이 죽을까, 쿠도 히나가 죽을까 동매는 불안하다. 김희성(변요한 분)이라 다를까. 그래서 남은 회 차, 이미 선택이 끝난 그녀를 향해 그들이 달려갈 것이다. 여태까지 그들을 보호했던 담을 버리고, 이제 '담'조차 없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총을 든 규방 처자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결국 존재론적 선택을 향해 달려갈 그들을 위한 가장 매력적인 배경이 된다. 결국 애신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조선에 온 세 남자에게 닥친 조국의 운명, 그 상징이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톺아보기 http://5252-jh.tistory.com

meditator  5252-jh@hanmail.net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ditator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이석영 2018-09-10 21:20:38

    그냥 얕게 피상적으로 보여지는 부분만으로 쓴 기사가 아니라,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게 해준 좋은 통찰과 식견이 담긴 기사 감사합니다.   삭제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2길 22 가든빌딩 608호 (우) 07238  |  대표전화 : 02-734-9500  |  팩스 : 02-734-2299
    등록번호 : 서울 아 00441  |  등록일 : 2007년 10월 1일  |  발행인 : 안현우  |  편집인 : 안현우  |  개인정보책임자 : 윤희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희상 팀장
    Copyright © 2011-2018 미디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mediaus.co.kr

    ND소프트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