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예능은 부쩍 다큐를 탐하고 있다. 물론 아무 예능이나 다 되는 것은 아니다. 1박2일, 무한도전 정도의 특급 프로그램쯤 돼야 찬사와 시청률을 보장받을 수 있다. KBS 외에 MBC, SBS 모두가 일요 예능을 새롭게 시작했는데 거기서 이와 같은 흉내를 냈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 분명하다. 세상은 분명 가진 자에게 관대하고 없는 해몽도 보태게 된다. 불공평하다고 볼멘소리 해봐야 들어줄 사람 없으니 억울하면 성공하고 볼 일이다.

대놓고 다큐를 찍겠다고 나선 1박2일은 재미의 정의를 바꾸고자 하는 것 같다. 그 점은 무한도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나 다큐를 표방한 1박2일 지리산 편은 웃기지 않아도 한 시간쯤은 얼마든지 재미있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애써 증명하고자 했다. 그만큼의 자신감도 있었겠지만 분명 이것은 도박에 가까운 시도였다. 멤버들 각자가 뿔뿔이 흩어져 다녀야 했던 1박2일은 평소처럼 복불복도, 게임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혼자서 다니는데 애드리브고 뭐고 걷는 것도 힘든데 말을 하기란, 그것도 웃기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는 MC몽의 ‘스마일 로드’가 제목처럼 가장 에너지 넘치는 예능의 색깔을 유지했다. 강호동과 은지원이 유일하게 두 명이라 다른 코스보다 모든 면에서 좋은 조건이기 때문에 혼자씩 떠난 코스와 비교는 할 수 없다.

그렇게 각자의 길을 떠나 하염없이 걷다보니 더는 걸을 수 없는 밤이 찾아오고 예정보다 늦은 강호동과 은지원은 목적지가 아닌 매동마을 민박집을 찾아 거처를 정했다. 민박집이니 다른 여행객들도 있었고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을 보면 강호동은 참 외모와 달리 사람 마음도 잘 읽는다. 연예인들을 상대하는 것과 일반시민을 대하는 것이 같을 수가 없는데 시민들 상대로 해서 친화력을 끌어내는 것은 참 기똥차게 잘 한다.

거기서 강호동은 가족과 함께 여행 온 참한 처녀와 지리산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행객과의 중매까지 주선하게 됐는데 그 부분에서 문득 김제동의 오 마이 텐트가 떠올랐다. 민박집이 아닌 텐트촌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따뜻한 밤의 정경이 오버랩 됐다. 그러고 보니 이번 1박2일 지리산 편 자체가 오 마이 텐트와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김제동은 현재 7일간의 기적을 통해서 더 공익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오 마이 텐트에서는 산사나이 김제동과 어쩌면 김제동보다 훨씬 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간접적이나마 도시와 일상에 발 묶인 갑갑함을 풀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오 마이 텐트 정규 편성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작년 상황이 떠오르면서 문득 가슴이 잠깐 무거워졌다.

사실은 그 프로그램은 꼭 김제동이 아니어도 충분히 가치 있는 기획이다. 특히나 이번 1박2일처럼 걷는 여행이고 걷는 속도만큼이나 여유롭게 자연과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는 점에서 누가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김제동이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기타를 잘 치는 김C가 해도 참 어울리는 포맷일 것이다. 오 마이 텐트가 정규 편성 됐다면 2회부터는 스타 게스트와 함께 걷는 세계 유일의 워킹 토크쇼가 됐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도시에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건 자연에 의탁해온 사람들의 마음은 아무래도 다르다. 지리산 둘레 길을 찾은 다큐 1박2일은 굳이 감동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여행이 자연으로 떠나는 길이지만 그 길 끝에는 결국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을 향해 가고 있다. 1박2일이 가진 힘은 다큐도 예능으로 인식되게 하고 있다.

1박2일은 지난 혹한기 대비캠프에서 예기치 않은 폭설을 만나 본의 아닌 다큐를 제작한 적이 있었다. 폭설 때문에 원래 스케줄을 포기해야 했었다. 그때 1박2일은 비록 예능은 놓쳤지만 아름다운 설경으로 인해 오히려 시청자를 크게 감동시켰다. 아마도 이번 지리산 다큐는 거기서 얻은 힌트와 자신감이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 아닐까 싶다. 동기야 어디에 있건 무한도전의 WM7도 그렇고 공교롭게 1박2일까지 폭소보다 감동과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한계에 도달한 버라이어티의 새로운 활로 찾기가 아닌가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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