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를 보며 새삼 시스템의 위대함을 실감한다. 왕년의 워터게이트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가 쓴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라는 책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걸 보니 그렇다.

이 책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종일관 화를 내며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는 극단적 지시를 일삼고 있다. 오죽하면 참모가 중요 서류를 대통령의 책상에서 빼돌릴 정도다. 한미FTA 파기는 이런 식으로 현실이 되기 직전까지 갔는데, 더 웃기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서류가 없어졌는데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더라는 거다. 자기가 지시해 놓고 결과를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있다는 것 아닌가.

현지시간 9일 이 책의 저자인 밥 우드워드는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가족 소개령의 내용이 담긴 트윗 초안을 작성했었다는 증언이 있다고 발언했다. “화염과 분노”란 표현이 등장하고 북미 간의 군사적 갈등이 고조되던 무렵엔 우리도 곧 전쟁이 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때 핵 항공모함의 행방과 주한미군의 가족이나 비전투요원 등에 대한 소개 지시 여부 등은 전쟁의 사전 신호로 여겨졌다. 밥 우드워드의 발언이 진실이라면 우리는 실제로 전쟁의 턱 밑까지 갔던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막장의 막장까지 갔다는 건 뉴욕타임스 칼럼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급 인사가 익명으로 ‘트럼프 행정부 내 저항 세력’을 자처하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한 것이다. 앞서 밥 우드워드의 책처럼 이 칼럼도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부적합성을 논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성자 색출에 들어갔고 의심을 사고 있는 고위급 인사들은 너도 나도 칼럼 작성 사실을 부정하며 사실상의 충성서약을 내놓는 중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 탑승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다소 과장은 있을 수 있지만 최근 출간된 백악관의 비사 등을 다룬 책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바를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상당한 문제가 있음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핸디캡을 안고도 어떻게든 국가 운영을 정상궤도 내에서 이뤄지도록 만들고 있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관료제에 감탄할 뿐이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비교적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과 별개의 부분에서 이 상황이 우려를 더해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밥 우드워드의 책 출간이나 뉴욕타임스 칼럼 게재와 같은 사건들이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기반을 뭉치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탄핵당하면 투표하러 나가지 않은 당신들 잘못”이라며 지지층에게 노골적으로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다. 트럼프 지지층들은 11월 중간선거를 사실상 ‘탄핵투표’로 묘사하고 있다.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러시아스캔들 등을 빌미로 트럼프 탄핵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정부 내 난맥상이 지지층의 단결로 이어지는 핵심 고리는 음모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딥 스테이트’를 언급하고 있다. 딥 스테이트란 전임 정권과 결탁한 기득권을 일컫는 말로, 이들이 ‘이단아’인 트럼프 대통령을 몰아내고 무력화하기 위해 다양한 음모를 꾸미며 나라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게 딥 스테이트 음모론의 핵심이다. 문제의 뉴욕타임스 칼럼은 익명으로 게재됐고 ‘저항세력’을 자처하고 있다는 점에서 딥 스테이트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확신감을 줄만한 소재다. 더군다나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종일관 ‘가짜뉴스’로 취급하는 기성의 유력 언론이다.

이것을 남의 나라 얘기로만 볼 수 있을까? 똑같은 현상이 한국 정치판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정치적 논쟁이 음모론과 음모론의 대결이 되어 버린 게 그렇다. 누군가 음모론을 말할 때 그것의 논리적 완결성을 따지는 등의 합리적 비판을 제기하는 것은 더 이상 아무 소용이 없다. 음모론의 위력은 이에 맞서는 또 다른 음모론이 등장할 때에만 감소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문제로 시작된 논쟁을 따라가 보면 이런 현실과 만날 수 있다. 이재명 도지사 문제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구도와 겹치면서 더 뜨거운 이슈가 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관련 에피소드 방영 이후 정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대다수의 인식 속에서 이재명 도지사는 ‘조직폭력배’ 마저도 좌지우지하고 권력을 활용해 멀쩡한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음모론적 존재로 각인됐다. 누구라도 이재명 도지사에 대해 조금의 긍정적 발언을 했다면 우선 조폭으로 의심받는 게 인터넷 세계의 현실이다.

이재명 도지사의 정치인으로서의 자질과 별개로 이 문제의 실체가 뭔지 합리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런 고상한 얘기는 그저 ‘쉴드 쳐주는’ 얘기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해결책(?)을 찾아낸 것은 방송인 김어준 씨다. 오히려 이재명 도지사에 대한 음모론이 음모라는 프레임을 제기해 상황을 뒤집으려 시도한 것이다.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 김어준 씨의 시도가 일부 영향을 발휘한 건 사실인 것 같다.

김어준 씨의 최근 인터넷 방송에서 댓글로 인터넷에서 서로를 음해했다는 둥의 인터넷 강사들 간 분쟁이 화제가 된 것도 이런 이유다. 이미 상업의 영역에서는 ‘인플루언서 마케팅’ 등의 기법이 발달해있는데, 정치도 마찬가지가 됐다는 것이다. 이재명 도지사 관련 음모론을 이용해서 현 정권 지지자들의 분열을 노리는 불순한 세력이 있으며, 이 문제로 서로 싸우는 건 결국 음모에 넘어가고 마는 것이라는 얘기를 뒷받침하기 위한 접근이다. 음모가 문제가 아니라 음모론이 음모인 게 더 문제라는 것이다. 드루킹을 보지 않았는가, 인터넷을 믿을 수 없다!

언젠가부터 여의도 정치의 문법도 이런 세태에 익숙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가치를 내세우는 정치인은 겉으로만 대의명분을 말하고 있을 뿐 뒤로는 자기 사익만 챙기고 있다는 냉소주의적 공격은 그야말로 ‘전형’이 됐다. 노선과 가치를 둘러싼 진지한 정책적 논의는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실종됐다. ‘사기’나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면 정책을 평가하지도 못하는 지경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보수주의도 아니고 확실히 정상도 아니다”라면서 “이건 급진주의다”라고 했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를 둘러싼 일련의 혼란을 어떤 극단적인 것의 문제로 규정한 것이다. 모든 문제를 음모론적 구도로만 보며 냉소주의적 현실 감각에 굴복한 결과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21세기식 극우주의다.

한국은 상식을 앞세운 자유주의 정권이 정부를 운영하고 있지만 대중적 차원에서 이런 식의 극단적 에너지는 좌우를 불문하고 지속적으로 증폭되고 있다. 피해자로서의 권리와 소비자로서의 권능을 동일시하는 세태가 인터넷을 통해 일반화되고 시장주의적 공정성 희구가 세상만사의 유일한 해법처럼 여겨지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여의도 정치와 기성언론은 중심을 잡기는커녕 이런 현상을 더 부추기고 있다. ‘트럼프 월드’는 이미 우리에게도 현실이 아닌가 자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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