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5.18 민주화운동 민중가요 <오월의 노래> 중 한 구절이다. <오월의 노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1980~90년대 5.18 관련 시위마다 불렸던 곡으로, 5.18 당시 참상들을 노래한다. 그 중 계엄군이 저지른 성폭력도 이 가요의 가사로 불릴 만큼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진실규명 작업에서는 거의 없던 일처럼 잘려 있었다. 그리고 38년이 지난 올해 5월에서야 ‘미투(#Me too)’ 운동에 힘입은 5.18 민주유공자 김선옥 씨가 최초로 당시 성폭력 피해를 증언하자,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에서 성폭력 문제를 함께 다루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6일 국회에서 민주평화당과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여성신문 공동주최로 ‘5.18과 여성 성폭력’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열린 자리였다. 1980년 광주에서 자행된 성폭력을 국가폭력으로 규정하며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성폭력을 명시한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오갔다.

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실에서 민주평화당과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여성신문 주최로 5.18과 여성 성폭력 토론회가 열렸다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4일 국회에서 의결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기구로, 발족일로부터 2년간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오는 14일 위원회 공식 출범일을 앞두고 아직까지 위원회가 발족되지 않은 상황이다. 위원회는 특별법에 따라 국회의장 추천 1명, 여당 추천 4명, 비교섭단체를 포함한 야당 추천 4명 등 9명의 위원으로 구성돼야 하지만, 현재 민주평화당을 제외한 여야와 국회의장이 조사위원 추천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은 인사말에서 지금까지 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은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다”라며 “자유한국당은 대단히 문제라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양보를 해서 (진상규명 특별법)법안이 만들어졌는데 이제까지도 의원 추천을 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최근 자유한국당은 진상규명위원회 야당 위원 4명 중 3명을 추천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민주평화당의 추천 위원이 위원회 구성을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최 의원은 이에 대해서도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의원들이) 진상 규명의원이 아니라 방해 의원이라면 묵과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김영필 국회고성연구원 전임교수 역시 위원회 발족에 대해 “굉장히 정치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여야 간 정쟁의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위원회가 발족되더라도 너무 늦어질 경우,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처럼 활동 기간의 문제를 두고 갈등이 빚어져 제대로 된 조사 기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도 가능성이 높은 경우다.

김 전임교수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위원회 활동을 야당과의 협치 지렛대로 쓸 수 있다. 여당 추천 위원들은 상황을 관리한다는 명목 하에 진상규명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위원회) 예상 활동 만료 기간은 2020년 9월이다. 그 사이 21대 총선이 있으니 광주•전남 지역에 대해 이 (위원회) 활동에 의한 결과가 충분히 영향을 줄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여당이 관심을 안 가졌다고 하면 곤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김 전임교수는 5.18 성폭력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후유증 지속 양상 및 국가폭력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며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는 적군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한 목소리를 낸 부분이 있지만, 5.18 성폭력은 한국 군인에 의한 것이라 정쟁을 유발할 부분이 있다”며 5.18 성폭력 진상규명의 정치적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이어 첫 번째 토론을 맡은 김희송 전남대 5.18 연구소 교수는 위원회 조사 활동 방향과 실질적 운영 방안에 대해 제시했다. 김 교수는 위원회 조사가 ‘군 자료 조사’와 ‘관계자 조사’ 투 트랙으로 움직여야 한다며 “군 자료는 군의 입장과 시각에서 작성돼 실효성이 떨어지지만 반대로 ‘부메랑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부메랑 효과란 자료 작성 의도와 달리 기록에 숨겨진 이면의 진실이 드러나는 결과로 되돌아오는 것으로, 변조 시점과 그 변조 목적까지도 밝혀질 수 있다.

관계자 조사에 대해서는 김 교수는 “제대로 질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18광주민주운동 때 성폭력 사건이 가시화되지 못했던 것은 당시 대면조사 때 성폭력 여부에 대해 묻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탓이 크기 때문이다. 또 김 교수는 가해자 및 관계자를 특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당시 성폭력은 대체적으로 군 작전을 수행한 주둔지와 이동 경로를 중심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둔지와 이동 경로를) 특정해 조사하면 쉬울 것”이라고 제안했다.

다음으로 안종철 현대사회연구소 소장은 성폭력을 명시한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별법 개정안으로 5.18 성폭력 진상규명뿐 아니라 기존 광주 유공자들에 대한 보상 체계의 허점 파악이나 관련 자료 요청이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민주평화당 최경환 의원 등이 제안한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은 대부분 특별법 제3조(진상규명의 범위) 1호에 대한 사항으로, 진상규명의 범위인 ‘사망•상해•실종•암매장 사건 및 그 밖의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성폭력’을 명시하는 것이 골자다.

안 소장은 “미용실을 함께 운영하는 여성 자매가 (계엄군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보상 여부 확인을 위해 광주시청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나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에 확인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며 “특별법이 발효되면 확인 가능할 것이고, 만약 이 자매가 보상받지 못했다면 광주시 보상 심사위원회의 커다란 잘못이다. 보상관련 법 개정 논의까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안 소장은 “1980년 광주에 특전사로 발령된 한 군인이 훈련병들에게 ‘광주 가서 여성 몇 명을…(성폭력 하자)’이라며 농담한 것을 들은 사람이 있다”며 “(이를 조사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특별법이 발효되어야만 조사될 수 있다”고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강조했다.

5.18 당시 유치장에 갇힌 이력이 있는 임태경 민족문제연구소 이사는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역사적 인식을 강조했다. 임 이사는 “1989년 청문회에서도 5.18 성범죄에 대한 증언이 나올 수 있었지만 시민단체나 국회 관계자들이 오히려 (반대 세력에게) 역공당할 수 있다고 하는 바람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5.18이 아니더라도 비정상적 사회에서는 어머니나 형제자매, 딸들이 (성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교복 입은 학생을 숲으로 데려가 집단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게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라며 “제대로 규명하지 않으면 똑같은 비극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어느 한 상황에 국한하지 않는 역사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김선미 여성학 박사는 5.18 성폭력 생존자들에 대한 특수성을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18 성폭력 생존자들이 지금까지 침묵한 것은 생존자들 연령대가 5~60대로, 혼인 앞둔 자녀나 남편 문제가 있는 점 등 여러 맥락이 얽혀 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성희롱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이 90년대 후반이다. 이분들이 이러한 일을 겪은 것은 훨씬 이전이라서 자신들이 겪은 행위들이 어떻게 표현하면 좋은 것인지, 이것이 과연 성폭력이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언어가 없던 세대였다”며 “위안부 문제도 1~2년으로 가능했던 문제였나. 길게 볼 필요가 있다. 개인 역량과 사건별로 20년 후 까지도 이분들 입장에서 신고 접수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결단과 용기에만 기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토론회 마지막 발언을 청하며 “지금 위안부 할머니들을 보면 오피니언 리더, 운동가로서의 모습이다. 말씀에도 힘이 있고 새로운 주장으로 영향력 끼치고 계시다”며 “5.18 생존자들도 지지해드리고 연대하며 분위기 조성을 해야 한다. 더 긴 시간을 두고 기다려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5.18 성폭력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라는 자우녕 영화감독은 “(다큐멘터리를) 1~2년 조사하고 몇 개월 제작하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오늘 토론회를 보고)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작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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