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활약이 눈부시다. 연일 민감한 정책에 대한 입장을 공세적으로 내놓는가 하면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또다시 20년 집권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의 앞으로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해찬 대표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건 두 가지 점에서 확인된다. 첫째는 국정운영의 차원에서 여당의 위상이 높아진 듯 보인다는 거다. 지난 1일 당정청 전원회의라는 기묘한 형식의 모임이 열린 게 대표적이다. 보수언론은 ‘전원회의’라는 단어에서 ‘종북’을 보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대통령, 국무총리, 청와대 참모진, 각 부처 장관이 여당 대표와 소속 국회의원들과 청와대에서 한 자리에 모인 건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이 자리는 문재인 정부는 더불어민주당 정부라는 점에서 일체감을 가져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기존 노선을 유지 관철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는 차원에서 마련된 걸로 보인다.

실제 이 자리에서 공유된 메시지가 이해찬 대표의 4일 교섭단체대표연설에 그대로 반영됐다. 이해찬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다섯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소득주도성장 등 경제정책 노선을 유지해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민생연석회의 등을 통한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겠다는 것이며 셋째는 공수처 설치 및 국민권익위 강화를 통해 적폐청산과 불공정해소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넷째는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촉진이고 다섯째는 개성공단 정상화를 포함한 한반도평화 경제론이다. 이는 당정청 전원회의에서 언급된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연설의 스케일이 크다보니 교섭단체대표연설이 아니라 마치 대통령의 국정연설 같았다는 평가도 있는데 ‘약한 대표’라는 캐릭터였다면 이런 평가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청와대 대리인이나 거수기라는 표현이 나왔을법 한데 이해찬 대표 체제는 그렇게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이해찬 대표이기 때문에 당정청 전원회의와 국정연설에 준하는 교섭단체대표연설이 가능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거수기가 아니라 상왕론이 나올 판국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4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의원들과 악수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이해찬 대표가 정책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예사롭지 않은 두 번째 측면이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달 30일 당정협의에서 “3주택 이상이나 초고가 주택의 경우 종부세 강화를 정부에서 강력하게 검토해 달라”고 한데 이어 3일에는 “정부가 공급 대책을 이른 시일 내에 제시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최근 부동산 가격 급등 해결을 위해서는 보유세 강화와 공급 확대라는 방향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 틀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 대책은 참여정부 시기 종부세 트라우마와 부동산 경기 확대에 대한 거부감에 기초하고 있었는데 이해찬 대표의 발언은 이 틀을 깨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의 재정개혁특위가 내놓은 보유세 강화안은 전문가들로부터 미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는 이 안에서 조차 후퇴할 수 있다는 신호를 분명히 줬다. 최근의 서울 부동산 가격 급등의 배경에는 이 정부가 보유세 대폭 인상 등의 강력한 카드를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이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임대사업자 등록 유도를 위해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를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형식적으로 보자면 물론 과세를 위해 임대사업자 등록을 유도하는 것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는 과거 정부도 추진해왔던 것이다. 이 정부가 임대사업자 등록을 유도하는 것에 보다 적극적인 것은 민간임대주택 시장을 통한 수요 충족 논리 때문이다. 민간임대시장에서 전월세 상한제를 작동시키는 게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공급확대보다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해찬 대표의 앞서 발언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임대사업자 등록 혜택 축소 예고는 이 흐름과 상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후 언론이 개발제한구역 해제와 거래세 인하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당정갈등의 기류를 읽거나 메시지 혼란 등을 비판하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한겨레는 5일 사설에서 정책 혼란의 양상을 비판하면서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컨트롤 타워’가 없는 탓이 크다. 국토부 장관이 책임을 맡고 관련 부처와 청와대, 민주당까지 참여하는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강력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상황이 혼란스러워 보이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더 볼 필요가 있다. 이해찬 대표와 김현미 장관의 발언을 관료들이 주워 담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확인돼야 할 것은 임대사업자 등록 활성화가 이미 충분한 상황이 이른 것인지, 민간임대주택 시장 관리 시스템의 정비가 완료되었는지 등이다. 만일 이 과제가 달성된 것이라고 본다면 보완적 차원에서의 공급확대와 거래세 인하(물론 어느 세목에 어느 정도 인상폭을 적용할 것인지는 신중히 따져야 할 것이다) 조치가 뒤따르는 게 ‘이상한 일’인 것만은 아니다.

이후 상황을 봐야겠지만 적어도 애초 정권이 그린 그림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전제라면 이해찬 대표의 행보로 청와대가 얻는 것은 일종의 ‘방패효과’일 것이다. 부동산 대책은 보통 백약이 무효이고 정부로서는 욕을 안 먹는 방법이 없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앞서와 같은 상황이면 민감한 정책으로 인한 리스크를 이해찬 대표가 분산해서 짊어질 수 있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 이해찬 대표의 행보가 ‘컨트롤타워 실종’의 한 현상이라면 리스크 분산이 아니라 단지 리더십이 분리되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암울한 상황이 아니라 어쨌든 이해찬이라는 ‘방패’를 쓰겠다는 것이라면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최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국세청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상당분을 독점하고 있는 현실이 분명히 확인된다. 이런 현상은 특히 금융소득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이해찬 대표는 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보유세 강화를 말하고 있지만 고소득층을 시작으로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증세 논의 프로세스에 돌입할 필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의 재정개혁특위는 애초 금융소득 과세 강화를 추진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릴 수 있다는 등의 우려를 내세우며 사실상 이를 거부한 바 있다. 물론 부동산 가격과의 연관성을 신중하게 따질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급한 것은 어쨌든 우리 사회가 증세의 필요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해찬 체제가 이 과제를 감당할 필요가 있지 않은지 깊이 고민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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