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뚝딱이 아빠'김종석 씨. 2007 EBS 캐릭터 인기대상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황지희
현재 20대 후반에서 30대에게 왕영은은 언제까지나 '뽀미언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것도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그 시절, MBC <뽀뽀뽀>는 어린이들의 하루를 가장 빛나게 해주던 시간이었다. 우리들의 첫번째 선생님이었기에 '뽀미언니'를 잊을 수 없다.

요즘 어린이들에게 그 '뽀미언니'와 같은 존재가 바로 EBS <딩동댕 유치원>의 '뚝딱이 아빠'다. 글을 깨친 아이들이 "뚝딱이 아빠 사랑해요"라고 적어 생애 최초의 팬레터를 보내고 있고, 가끔은 "뚝딱이 아빠와도 결혼할 수 있나요? 저와 결혼해주세요"라고 적힌 편지를 보내기도 한단다. '뚝딱이 아빠'는 어린이들에게 선생님이자 스타이고, 진짜 아빠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지난 3일 이제 15년째 어린이 프로그램을 지켜오고 있는 '뚝딱이 아빠' 김종석 씨를 <미디어스>가 만났다.

김종석씨는 2007 EBS 캐릭터 인기대상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수상소감에서 그는 "어린이들이 넘버원이 아니라 개성있는 어린이로 자랐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뻔한 수상소감 같지만 어른들이 쉽게 뱉는 말은 사실 아니다. 가장 뻔한 수상소감은 "우리 어린이들,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가 아니겠는가. 범상치 않은 수상소감에 더욱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만나서 축하인사를 하니 "캐릭터 인기대상에서 상을 받았으니, 저는 사람이 아닌거죠. 캐릭터인거죠"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농담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뚝딱이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엄격한 자리관리의지가 숨어있었다. 아래는 '뚝딱이 아빠' 김종석 씨와 나눈 1문1답이다.

- 수상소감에서 '개성있는 어린이'를 강조한 이유가 무엇인가?

"과거에는 죽기살기로 1등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1등이 아니면 존재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경쟁의 의미가 달라졌다. 모두 1등을 위해 달려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국가적 낭비이고, 한 개인에게 상처만 줄 뿐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개인을 특화시키는 교육이 중요해졌다. 1등을 하라고 가르치는게 아니라, 네가 잘하는게 무엇이냐고 묻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아이들이 자라서 살꺼리가 많아진다."

- 의미는 좋지만, 실제 부모들이 그렇게 가르치기 쉽지 않다.

"부모들이 귀가 두꺼워져야 한다. 아이들을 키울 때 귀가 얇으면 아이를 망치기 쉽다. 무엇보다 부모들은 내가 왜 이런 교육을 아이에게 시키는지 자꾸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혹시 나의 자존심 때문에 애들을 학원에 보내고, 해외유학을 보내는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남들과 대화할때 '내 자녀들은 어디 어디에 다녀'이런말 자랑스럽게 하고 싶어서 교육시키는 것은 아닌지를 알아야 한다."

- 그렇게 변하고 있는 교육관이 어린이 프로그램에도 적용되고 있는가?

"물론이다. 예전에 내가 '뿡뿡이 아빠'를 할때는 '우리 친구 최고. 1등했어요'라는 말을 자주했다. 그게 칭찬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주 독특한 생각이에요. 선생님도 못한 생각을 우리 친구가 했네요'라고 말한다. 만약 엉뚱한 의견을 냈다고 해도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네요. 새로운 생각 아주 멋있어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나만의 결론이 아니라 어린이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해온 EBS 어린이 프로그램들의 현 방향이다."

"어린이 프로그램은 시청률 발표에서 제외해야"

- 어린이 프로그램의 산증인이다. 방송사에 할말도 많을 것 같은데.

"EBS는 어린이 전문 PD나 작가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맡고 있어 노하우가 축적된다. 시청률도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프로그램자체에 몰입해서 방송을 제작할 수 있다. 하지만 타 방송사 어린이 프로그램 제작과정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어린이들이 보기 힘든 시간에 편성되어 있는데다가, 프로그램이 일관성없이 제작되고 있는 상황이라 악순환이 반복된다. 타방송사에도 어린이프로그램만 전문적으로 제작하고 싶은 방송인들이 있다. 그들이 자유롭게 그 프로그램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우선적으로 어린이 프로그램은 시청률 발표에서 제외해야 한다. 조만간 한국PD연합회를 만날 예정인데, 그때도 건의해볼 생각이다."

- '뚝딱이 아빠'의 탄생과정이 궁금하다.

"처음에는 <딩동댕 유치원>의 '땡이아저씨'였다. 당시에 석사과정으로 광고를 공부하면서 브랜드 가치에 관심을 가졌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우리나라만의 캐릭터가 없는게 안타깝게 여겨졌다. 그때 EBS제작진들과 이런 문제를 놓고 브레인스토밍을 했다. 그 과정에서 '뚝딱이'라는 언어를 만들어냈다. 도깨비를 귀엽게 만든 현재의 캐릭터도 만들었다. '뚝딱이' 혼자만 있으면 안되니까 '뚝딱이 아빠'를 만들어줬고, 나중에는 '뚝딱이 엄마'도 생겼다. 현재 '뚝딱이'는 아시아에서도 매우 인기 높은 캐릭터가 됐다. 그 전에는 외국 캐릭터 밖에 없었다."

- 요즘 유명 연예인들이 어린이 학습지 광고를 많이 한다. 입장이 무엇인가.

"아마 그 분들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내 생각에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역발상이 필요하다. 요즘 어린이들이 책을 너무 안 읽는 경향이 있다. (학습지라도) 아이들이 손에 책을 쥐는 습관을 가지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성인프로그램에 나가지 않는다"

- 일반 연예인들보다 자기관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다.

"간단하다. 7살된 '뚝딱이'를 키우는 삼십대 중반의 아빠로 산다. 어린이들이 '뚝딱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뚝딱이'가 재봉틀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개한다면 아이들의 환상을 깨는 꼴이 된다. 그건 좋은 친구를 잃게 만드는 행위다. 나도 마찬가지다. '뚝딱이 아빠'로 살면서는 성인프로그램에 전혀 나가지 않고 있다. 아주 가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정도다. 요즘도 가족을 공개해달라는 프로그램들의 연락이 매해 오는데 거절하고 있다. 내 모습이 공개되면 어린이들이 실망할 것 같다. EBS와의 약속이기도 하다."

실제로 김종석 씨는 주요 사이트 인물검색 정보에도 나이와 가족에 대한 사항을 일체 밝히고 있지 않았다. 인터뷰에도 가족들을 매우 소중히 여겨서, 현재도 한 동네에 모여살고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만 비췄다.

- '뚝딱이 아빠'이후의 인물이 없다. 후진양성을 하고 있나?

"현재로는 없다. 매우 힘들다. 첫째 어린이 프로그램은 아무리 해도 빛이 안난다. 아무리 해도 돈이 안된다. 아무리해도 알아주지 않는다. 화려한 삶을 기대하고 온 신인 방송인들이 이런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이해는 된다. 설득을 해봤지만 어렵더라. 사명감이 없으면 오래 하기 힘든 분야다."

- 방송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뭐가 있나?

"어린이와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친밀감을 형성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것을 방송사가 지켜봐줘야 하나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가 그동안 매우 많았다고 자랑하는 경우가 있던데, 내가 보기엔 불쌍해 보인다. 어린이들은 프로그램 진행자가 바뀌면 친구를 잃는 느낌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새 인물에 대한 긴장감이나 불안감도 느낌다. 진짜 훌륭한 어린이 프로그램 제작진은 아무것도 안바꾸는 사람들이라도 생각한다. 큰 틀을 그대로 두면서 내용을 바꿔가는게 중요하다."

"내가 아이들의 아빠 역할을 대신 해줬구나"

- 가장 보람있는 순간은?

"공개방송에 나갔을때 어린이들이 마구 달려와서 인사하고 좋아한다. 유명가수 누가 나와도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럴때 좋다. 캐릭터들은 아이들에게 스타같은 존재다. 또 내가 아이들의 아빠 역할을 대신 해줬구나, 하는 느낌이 들때 행복하다."

- 공부에 욕심이 많은 것 같다. 학위가 몇개나 된다.

"취미다. 골프를 안치는 대신 공부한다. 광고학과 아동학을 공부했고, 이제는 국문학 박사과정에 도전할 예정이다."

김종석 씨는 배우는 일 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일에도 바쁘다. 현재 서정대학 유아교육과 조교수로도 활동중이다.

- 수상소감에서 어릴때 보고 자란 방송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본인은 어떤 프로그램이 영향을 미쳤나?

"TV보다는 서커스와 <저하늘에 슬픔이>라는 영화가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다. 서커스에서 두 사람이 코믹하게 연기하는 걸 유심히 봤다. 그 장면이 너무 좋아서 나중에 <뽀뽀뽀>를 할때 판토마임으로 그때 느낌을 살려 연기하기도 했다."

잘 놀아주는 아빠가 좋은 아빠

- 재능방송에서 <행복 프로젝트 좋은 아빠 만들기>도 진행중이다. 좋은 아빠란 무엇인가?

"아빠가 자신이 입은 양복이 멋지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똑같이 입히지는 않는다. 좋은 아빠는 아이와 눈높이는 맞출줄 아는 아빠다. 위에서 내려다 보지 말고 같이 바라봐야 한다. 같이 잘 놀아주는 아빠가 좋은 아빠다. 재능방송도 그런 고민에서 시작했다. 아이들과 같이 노는 것도 배워야 한다.좋은 엄마에 대한 교육은 많지만 좋은 아빠가 되는 교육은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엉터리 아빠들이 너무 많다. 아이들이 놀아야할 시점에 놀아주는 아빠가 중요하다."

마침 인터뷰 현장을 찾았던 <좋은 아빠 만들기> 담당 PD는 원래는 제목을 <노는 아빠 만들기>하려고 했으나, 소재의 다양성을 위해 바꾸게 됐다는 일화도 들려줬다.

- 동요학교도 운영한다고 들었다.

"이제 3년째인데 잘 안된다. 돈만 많이 들어간다(웃음). 아이들이 와서 동요도 배우고, 직접 동요를 작사작곡하는 학교다.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아마도 동요의 필요성을 잘 모르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상징적으로도 중요한 공간이라 계속 운영할 계획이다."

- 어린이들이 작사를? 주로 어떤 가사를 쓰나?

"엄마, 아빠, 동생 얘기 주로 한다. 읽어보면 매우 재미있다."

- 아까 애들에게 캐릭터들이 스타라고 했는데, 극성팬도 있나?

"애들이 편지를 보낸다. 이메일이 아니라 직접 쓴 편지를 방송사로 보내곤 한다. 매우 귀엽다. '뚝딱이 아빠 사랑해요'도 있고, '뚝딱이 아빠랑 결혼하고 싶어요'도 있다.(웃음)"

- 일반 코미디를 다시 해볼 생각은 없나?

"어떤 분야나 전문성이 있다고 본다. 이제 코미디언으로의 감각은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욕심이 없다. 나의 전문성은 어린이 프로그램에 있다. 이처럼 세상을 전문가와 아마추어로 나누는 시대가 왔다고 본다. 과거처럼 나이나, 세대별로 세상을 나누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

- '뚝딱이 아빠'의 꿈은 무엇인가?

"어린이에게 더욱 더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고, 그 속에서 성장하고 싶다. 나이가 더 들면 '뚝딱이 아빠'가 아니라 '이야기 할아버지'로 남아 아이들 곁을 지키고 싶다."

마지막으로, 어린이 프로그램에 관해 언론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다소 엉뚱한 답을 했다.

"나도 주변에 언론인 친구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이 자식들에게 너무 소홀 한 것 같다. 자만하지 말고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야한다. 아이들을 키우는데도 기술이 필요한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자유롭게 키우는 것과 방임은 또 다른 문제다. 워낙 유해환경이 많은 상황이라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때다."

김종석 씨는 이렇게 '뚝딱이 아빠'와 '방송인 김종석'사이를 오가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어떤 답변에나 '어린이'를 가장 우선에 뒀다. 실제 생활에서도 '뚝딱이 아빠'처럼 밝고 경쾌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유지했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전화를 할때도 밝은 목소리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옷 입고 나가면 좋겠죠"라고 말했고, 인터뷰 당일에도 무거운 옷가지를 직접 들고와 그 자리에서 갈아입고 사진촬영에 응했다.

'뚝딱이 아빠'로도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는 모든 어른들이 '뚝딱이 아빠'가 되어 주길 간절하게 바라는 듯했다.

김종석 씨에 대해 좀더 궁금하다면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http://www.cbs.co.kr/radio/pgm/?pgm=923)에서 그가 출연했던 방송을 다시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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