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를 사상 첫 원정 16강으로 이끈 뒤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허정무 감독. 월드컵 직후 모 여성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월드컵 끝나고 뭐 할 거냐’는 질문에 스스로 축구와 관련한 해외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힘들었던 심신도 달래고 현대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고픈 욕구를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허 감독 부인인 최미나 씨는 "그 양반(허 감독)은 조금이라도 축구와 떨어져 있으면 안절부절 못 하는 사람"이라면서 빠른 시간 안에 일을 찾아 뭔가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30년 부부 생활을 하면서 남편의 마음을 훤히 꿰뚫고 있었던 건가요.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 감독에서 물러난 뒤 2달 만에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에 부임하면서 K-리그 현장에 복귀했습니다. 지금까지 김정남, 이회택, 김호, 차범근 감독 등 월드컵 때 나섰던 감독들이 모두 K-리그 감독으로 복귀한 바 있었듯이 허 감독 역시 비교적 빠른 시일에 새 자리를 잡으면서 새로운 축구 지도자 인생을 펼쳐나가게 됐습니다.

▲ (인천=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 허정무 인천 유나이티드 신임 감독이 26일 오전 인천 문학경기장 2층 인천시설관리공단 대회의실에서 선수단과 처음으로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10.8.26

허정무 감독이 K-리그 팀을 맡은 것은 개인적으로 인천이 네 번째 팀입니다. 지난 1993년부터 3년간 포항 아톰즈(현 포항 스틸러스)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지도자 인생을 시작한 허정무 감독은 1996년 갓 창단된 전남 드래곤스를 맡아 FA컵 우승, K-리그, 컵대회 준우승을 이끌며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대표팀 감독, 코치, TV 해설자 등을 맡은 뒤 한동안 K-리그에서 떠났던 허 감독은 2005년에 다시 전남을 맡아 3년간 팀을 이끌면서 FA컵 우승을 다시 한 번 차지하는 등 맡는 팀마다 주로 컵대회, FA컵 등 단기전에서 좋은 성과를 냈던 감독으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안정 속의 점진적 혁신을 추구하는 허정무 감독의 지도자 인생은 2010년에 비로소 정점에 달했습니다. 지난 2008년 12월 대표팀 감독에 다시 취임한 뒤 6월 남아공월드컵 본선을 통해 국내 감독으로 첫 16강을 이끌어내 축구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며 '유쾌한 도전'을 '유쾌하게' 마치는데 성공했습니다.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았어도 맡는 팀마다 나름대로 뭔가 목표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허정무 감독의 지도자 성과는 나름대로 국내 감독 가운데서는 인정할 만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허정무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올림픽 대표팀을 맡았던 지난 1999년, 2000년에 설기현, 박지성, 이영표를 대표팀의 주축으로 발탁시켜 훗날 한국 축구의 대표적인 주역으로 거듭나게 한 출발점을 놓은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 대표팀을 맡으면서도 다양한 인재들을 실험한 끝에 어린 기성용, 이청용, 이승렬, 김보경을 과감하게 대표팀에 발탁시켜 이 중 기성용, 이청용을 팀의 중심축으로 활용하는 모험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했을 때 옳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뚝심'이 대단해 온갖 실패 속에서도 마침내 결실을 보고야 마는 스타일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선수를 발굴하고 재능을 발휘하게 하는 능력은 충분히 평가를 받을 만 했습니다. 인천을 맡아서도 허 감독은 무명이나 다름없는 선수들이 많은 인천의 원석들을 보석으로 다듬는 데 나름대로 큰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성과와 장점을 가진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허정무 감독은 대표팀 감독을 하면서 온갖 비판, 비난을 받으면서 월드컵 16강에 오르고도 팬들로부터는 크게 환영받지 못한 감독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 1차전이었던 그리스전에서 기분 좋은 1승을 거뒀을 때 정도만 허 감독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을 뿐 이어 열린 아르헨티나전에서 1-4로 졌을 때 뭇매를 맞은 데 이어 이후 나이지리아,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도 선전을 펼치고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자 오히려 비판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뚜렷한 근거도 없는 '인맥 축구 논란'부터 시작해 전술적인 문제, 주전-비주전 기량 차와 관련한 팀 운영 문제 등 다양한 부분들이 지금도 가끔씩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성공한 감독'보다는 그저 '운 좋은 감독', '선수 덕에 성과 거둔 감독'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인식이 많았습니다. 월드컵 강팀이 아닌 나라가 기분 좋게 16강에 오른 뒤 16강에서도 좋은 경기를 펼쳤음에도 이렇게 비판받는 지도자는 아마 거의 손에 꼽힐 텐데 조금은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물론 분명하게 잘 못 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2년간 팀을 이끌어 목표를 이뤄냈다는 점은 분명히 좋게 평가받을 수 있는데도 허 감독은 팬들에게 그런 좋은 시선을 확실하게 얻지 못했습니다.

이미 월드컵에서 목표를 이뤄낸 감독인 만큼 앞으로 축구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큰 부담 없이 새로운 도전을 펼치고 즐길 허정무 감독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허정무 감독은 인천을 맡으면서 팀 운영 외에도 유소년 축구 같은 구단 차원의 장기 프로젝트, 시민 구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 보완해야 하는 부분 등을 조언하는 역할도 할 것으로 보여 기존 감독과는 다소 다른 감독 모델을 보여줄 것으로 보여집니다. 축구 감독이 이렇게 많은 일을 소화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어쨌든 허정무 감독의 새로운 변신은 분명히 주목할 만하고, 기대되는 측면도 많습니다. 그동안 보여 졌던 성과들이 인천 감독을 통해 또 한 번 새롭게 꽃피면서 이전까지 있었던 편견 어린 시선도 완전히 거두고 국내 감독 가운데 성공한 지도자로 재평가 받을 수 있는 허정무 감독이 될 것인지 앞으로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물론 그런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 새로운 도전을 눈앞에 둔 허정무 감독의 강한 다짐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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