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공식 출범도 하기 전부터 각 분야의 정책 방침을 쏟아내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벌써부터 지나친 '속도 위반'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물론 기존 정책의 잘못된 부분은 고치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완해나가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정책과 공약의 실천 가능성이나 우선 순위를 따져 속도를 조절한다거나 급격한 '정책 뒤집기'의 후유증에 대한 고려 등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지 역시 제대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KBS·MBC, '이명박 교육정책' 둘러싼 우려 시각 전달

이와 관련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은 교육부 기능 축소와 대학 자율화를 뼈대로 하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다. 3일 지상파방송 메인뉴스도 이 내용을 다뤘지만 아주 기본적인 '논란' 보도에 그치거나 최소한의 균형 보도마저 하지 않는 등 문제를 드러냈다.

▲ 1월 3일 KBS <뉴스9>
KBS <뉴스9>는 이날 "차기 정부의 대입 자율화에 대해 대학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벌써부터 학생선발에 대한 다양한 구상을 내비치고 있다"며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3불로 묶여있던 본고사와 고교등급제의 도입이 시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고 보도했다.

KBS는 특히 "그동안 대학의 이익을 대변해온 대교협이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입시에서 대학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고등학교 교육이 대학 입시에 따라 크게 좌우되고 있는 만큼 대학은 학생선발의 자율권과 함께 공교육 정상화라는 사회적 책임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MBC <뉴스데스크>도 "대학의 자율이라는 미명하에 고교 서열, 대학 서열, 학벌사회에 따른 계층 분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참교육학부모회 관계자의 인터뷰와 함께 "대교협이 개별 대학의 입시 비리까지 감당하기에는 벅찰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입시가 완전 자율화될 경우 입시 비리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보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MBC는 "우수 학생을 뽑으려는 대학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대입 제도를 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며 "일부 대학이 반발해 본고사를 치러도 협의체인 대교협이 막거나 제재할 법적 근거도 없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 1월 3일 MBC < 뉴스데스크>
이처럼 KBS와 MBC가 대학입시를 학교자율에 맡기겠다는 차기 정부의 교육정책과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논란과 우려를 정리하는 '기본적인' 보도를 한 반면 SBS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이명박 교육정책'에 대한 진단과 분석은 커녕 최소한의 논란으로도 다루지 않아 균형마저 상실했다.

SBS는 "대학입시 업무를 처리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며 '쌍수' 들어 환영하고 있는 대학교육협의회쪽의 자신감과 환영 입장을 별도의 리포트로 내보냈지만 이를 우려하는 다른 입장이나 반대 여론은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SBS는 올해 고3 학생들은 당장 어떻게 되는지, 수능등급제와 3불정책이 달라진다면 어느 수준으로 달라질지, 어느 시점부터 적용될지를 전망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대학입시 업무가 '학교 자율'로 맡겨질 경우 대교협 차기 회장인 서강대 손병두 총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언론이 들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들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당장 무엇이 어떻게 바뀌게 되는 것인지 혼란스럽고 궁금할 수 있다.

SBS, '논란'과 '우려'는 없고 "잘 할 수 있다"는 대교협 자신감 부각

그런데 SBS 보도는 딱 거기까지만 의미가 있다. 너무 앞서 갔거나 순서를 건너 뛰었다. 차기 정부가 제시한 정책을 바탕으로 예고되는 변화 상황만 따라갈 뿐 과연 그 정책의 내용과 방향이 타당하고 바람직한지를 점검하는 과정이 빠져있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 합의'를 유도하는 공론장의 기능은 무색해진다.

▲ 1월 3일 SBS <8뉴스>
현재 교총과 전교조 등 관련 단체들을 비롯해 일부 대학 총장들까지도 '준비 안된' 대학 자율화를 시기상조로 보고 우려하면서 별다른 '제어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대학에 입시 권한만 강화하는 것은 문제라고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 교육의 공공성 확보라는 대의를 잃지 않아야 하고, 대학에 자율을 부여한다고 해도 책임을 강조하는 정책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반대와 우려, 문제점은 SBS 보도에서 찾아볼 수 없다.

청와대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인수위의 교육정책이 교육부 기능의 많은 부분을 대학에 이양하는 쪽으로 정해지자 '3불 정책의 폐지' '상당히 급격한 변화' 등으로 규정하며 '신중하고 진지한 접근'을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신년인사회에서 '교육 쓰나미'가 올지 모른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교육정책이 흔들리면 우리 사회에 미칠 여파는 상당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각계의 우려와 비판, 대통령 발언이 갖는 의미와 행간을 언론이 보다 면밀하게 짚어줄 필요가 있다.

한겨레는 4일 <인수위 '속도위반' 지나치다>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2일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맨처음 업무보고를 받은 뒤 '인수위는 교육부가 보고한 기능개편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대입관련 업무를 대학협의체인 대학교육협의회 등으로 이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스스로 대학입시 관련 업무를 떼어내 '대학 협의체'로 넘기는 방안을 업무보고에 포함시킨 것이다.

공무원들의 이런 '정책 부정'은 인수위가 지난해 12월28일 각 부처에 내려보낸 7개 항의 '업무보고 작성지침'에서 '당선인 공약 실천계획'(연도별 로드맵)을 보고하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각 부처가 이 당선자의 선거공약에 맞추어 업무 추진방향을 끼워맞추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교육부에서는 대입 업무 이양 방안을 두고 내부 반론이 계속 제기돼 토론을 거듭했지만, 업무보고를 몇 시간 앞둔 2일 오전 보고 내용을 보강하라는 인수위의 주문을 받고, 보고서에 '이양' 방안을 집어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간부는 '사회적 논란이 큰 대입을 '올해 바꾼다, 3년 뒤 바꾼다'고 구체적 일정을 잡긴 어려울 것'이라며, '인수위가 '연도별 로드맵'까지 요구한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한 나라의 교육정책이 또다시 충분한 검토와 판단없이 졸속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그렇지만 방송 3사 메인뉴스에서는 인수위와 교육부 사이에 이뤄진 이같은 뒷배경이나 과정의 문제점은 충분히 지적되지 않았다.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인데도 SBS처럼 당선자와 인수위의 입장만을 전달하는 역할에 그치면서 반대와 우려 목소리를 외면하고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면 이명박 당선자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거나 줄을 선다는 의심만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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