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소상공인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 '최저임금제도 개선 국민촉구대회'를 열었다. 소상공인 총궐기의 날로 정한 이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백여 업종, 지역별 소상공인 3만 여명(경찰 측 추산 1만 5000 명)은 최근 결정된 최저임금과 관련 소상공인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최저임금 차등 적용 등 생존권 위기에 내몰린 소상공인들의 입장을 강력하게 밝히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운 정부는 그에 맞춰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저임금의 인상은 낮은 알바 시급 등에 의존하여 근근이 영업을 해온 자영업자들에게 타격을 주게 되었다고 소상공인들은 주장한다. 결국 이들이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거리에 나서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올 한 해 폐업하는 자영업자는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전년보다 10% 뛰어 역대 최대치인 87.9%를 기록했다. 2년도 안 돼 폐업하는 사례가 늘고, 10곳 중 4곳이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자영업자의 폐업은 '최저임금' 때문만일까? 지난 8월 30일 방영한 <다큐 시선- 당신의 음식값, 만족하십니까>는 최저임금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소상공인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560만 자영업자들이 빠진 블랙홀

EBS 1TV <다큐 시선> ‘당신의 음식값, 만족하십니까?’ 편

족발집을 6년 째 운영하는 석희철 씨는 요즘 하루에도 열두 번 씩 가게를 접을까 고민한다. 그만이 아니다. 석씨 가게 주변에 2~30년 정도 자영업을 하던 분들도 입을 모아 '이런 경기는 없었다'라며 혀를 내두른다고 전한다. 작년부터 내리막길이던 가게 운영은 이제 반 토막이 났다. 두 솥 가득 끓여대던 족발은 이제 겨우 한 솥, 그마저도 최근엔 하루 2만 원치기 장사, 아니 그보다도 못할 때도 있다.

장사가 안 되니 인건비가 감당이 안 돼서 알바는 주말에만 쓴다. 불금, 불토가 없어진 지 오래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면 돈이 된다던 자영업의 장점은 이제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몸을 움직여 돈을 벌던 기쁨을 누린 지가 언젠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프랜차이즈는 좀 나을까? 피자 브랜드를 운영하는 최은자 씨와 함께 매장을 운영하던 남편은 매장을 아내에게 맡긴 채 다른 일을 찾아 나섰다. 대출까지 받아 운영비를 마련하는 상황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자영업자들을 블랙홀에 빠뜨린 원인은 무엇일까? 어느 한 가지 문제가 아니다. 물론 소상공인들을 거리로 내몬 최저임금제도 있다. 하지만, 나날이 치솟는 임대료, 올해와 같은 폭염에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채소값처럼 감당할 수 없는 식자재 구입비, 그리고 프랜차이즈의 경우 가맹비, 거기에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배달앱으로 인한 비용 등이 자영업자들의 이익을 쪼그라들게 한다.

<다큐 시선>은 우리가 음식값으로 지불하는 비용 속에 숨겨져 있는 '알 수 없는 비용', 그중에서도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배달앱 시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배달업의 화려한 부활, 배달앱

EBS 1TV <다큐 시선> ‘당신의 음식값, 만족하십니까?’ 편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배달을 시작한 건 구한말이다. 상상이 되는가. 거리에 해장국과 설렁탕이 배달되는 풍경이. 그 설렁탕 그릇을 대체한 건, 짜장면의 철가방이다. 하지만, 테이크아웃의 경제성이 등장하면서 배달은 주춤하는가 싶었다. 그랬는데, 최근 1인 가구의 확산과 배달앱의 활성화로 딜리버리, 즉 배달 산업이 다시금 활성화되고 있다.

어느덧 한 해 15조원에 육박한 배달앱 시장. 배달앱을 띄우고 화면에 클릭 한 번만 하면 내 집까지 먹고 싶은 걸 배달해 주는 이 ‘신기술’이 소비자에게는 편리함을, 자영업자들에겐 더 많은 이득을 줄 것이라 했다. 하지만, 그 신기술의 앱은 소비자에게는 편리함을 줬을지는 몰라도, 자영업자에게는 '비용의 파이' 그 지분을 더 쪼개버렸다.

앱에 자신의 가게를 올리는 데 필요한 수수료, 매달 나가는 회비, 거기에 요구되는 박리에, 배달로 인한 매출 감소는 자영업자들에게는 결국 '영업 이익의 감소‘라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배달로 인해 많이 팔게 되었는데 손해가 나다니. 거기엔 배달앱의 중간마진 과정이 고스란히 자영업자의 부담으로 얹혀지는 시스템의 문제가 있다.

EBS 1TV <다큐 시선> ‘당신의 음식값, 만족하십니까?’ 편

최근 배달앱 활성화와 함께 부흥된 배달 시장은 예전과는 질을 달리한다. 중국집마다 고용된 철가방은 옛일이 되었다. 더 이상 배달원을 각 업소가 고용할 수 없는 고비용 인건비 시장에서, 이제 배달은 배달 전문업체의 일이 되었다. 즉 신종직업군으로서 어플 노동자, 배달 라이더들이 등장한 것이다.

10년째 프랜차이즈 치킨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세창 씨가 프랜차이즈 업체에 내는 수수료가 15%이다. 인건비를 빼고 나면 마진이 거의 없다. 그런데 최근 배달앱이 활성화되면서 운영비용이 추가되었다. 예전처럼 전단지를 돌려서 직접 가게에 주문을 하던 시절이 지나간 것이다.

그런데 이 배달앱이 고약하다. 배달앱에 자신의 가게를 올리기 위해 경매비를 내고 입찰을 해야 한다. 인기지역의 경우 50만 원에 육박한다. 2011년에 본격화된 배달앱은 메이저 3사의 독과점 사업이 되었다. 그중 가장 잘나가는 1위 업체는 경쟁입찰 방식을 취하고, 나머지 업체들도 수수료를 받는다. 결국 돈 놓고 돈 먹기가 되는 현상. 영세 사업자에게 그 비용은 언감생심이 되고, 정작 정보를 통해 편리함을 얻고자 했던 소비자에게는 왜곡된 정보를 전하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소비자의 심리 상, 최초 로딩된 7개 업체 중 하나를 선택하기가 십상인 앱. 결국 더 많은 돈을 들여 홍보하거나, 이 시장에서도 방치되는 게 자영업자들의 숙명이 되었다.

변화된 산업구조, 뒤따르지 못하는 제도적 보호

EBS 1TV <다큐 시선> ‘당신의 음식값, 만족하십니까?’ 편

하지만, 너도 나도 배달앱을 켜는 세상에서 이 시장을 외면하는 건 쉽지 않다. 프랜차이즈 사업의 경우 계약 당시 설정된 마진율은 고정적이다. 그런데 배달앱 등 시장 상황이 변화하면서 운영비용이 추가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종진 한국 노동사회 연구원 부소장은 지난 30여 년 간 우리 사회의 산업구조가 IT 정보기술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산업구조의 중심이 서비스 산업으로 이동했다고 정리한다. 개인 사업자인 자영업자들이 산업구조의 중심이 되었는데, 여전히 2차 산업구조에 기반한 법제도는 근로기준법, 최저임금제, 산재 비용 등에서 이런 산업구조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최근의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짚었다. 즉, 자영업자들이 가장 활성화된 산업의 중심인데도 법적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된 산업구조 환경에서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영업자들만이 아니다. 바로 그들의 손발이 되어 배달을 하는 배달앱 노동자들 역시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하루 종일 진수성찬을 배달해주다 오후 다섯 시가 되어 첫 끼를 때우는 이용훈 씨. 그는 이제 4년차 배달 대행 라이더이다. 배달 대행업체 소속, 1.5km 미만의 배달지에는 건당 3000원에 배달을 대행해주는 노동자.

그의 배달은 위험과의 동행이다. 같은 지역에서 배달을 하는 30여 명의 배달원들, 그들은 콜이 오면 그걸 잡아서 배달을 하는 시스템으로 인해 주행 중에도 늘 스마트폰을 켜고 콜을 잡아야 하는 위험을 감수한다. 위험은 그것만이 아니다. 40분 이내 배달을 마쳐야 하는 배달앱의 '덕목'은 당연히 교통법규를 지킬 수 없게 만든다. '빠른 시간 안에 목표달성'이라는 대한민국의 신조가 가장 극적으로 실현되는 직종 배달 라이더. 그는 한 시간 안에 7개의 콜을 수행해 내며 28,000원을 번다.

평균 근속 6개월, 근로계약서는 없다. 1년에 두세 번 사고가 나는 게 일상화된 위험한 작업 환경을 감수하고 산재보험을 드는 배달 대행업체는 없다. 사고가 나면 업체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청약철회, 배달 사고가 날 경우 자영업자, 배달 대행업체로 나뉜 책임 소재는 종종 그 책임이 배달 라이더들에게 씌워진다.

EBS 1TV <다큐 시선> ‘당신의 음식값, 만족하십니까?’ 편

앱에 의한 배달은 통신판매법에 의거한다. 하지만 결제는 전자상거래 법에 속한다. 배달앱의 등장, 그 수족이 되는 배달 대행업체와 배달 라이더들, 그리고 그로 인해 운영비용의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플랫폼에 기댈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심화되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손실 증가는 이런 변화된 산업구조와 그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의 문제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미 수직화 된 산업구조로 독과점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배달앱 업체들에 대한 경제적 법적 장치가 미흡한 가운데, 기존 프랜차이즈 본사와의 불공정한 계약 관계에 놓인 자영업자들은 다시 한번 이 새로운 플랫폼 기반 사업에서 '을'이 되어 이익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안 그래도 저성장으로 인해 소비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이익의 파이는 원자재, 가맹점비, 배달앱, 카드수수료, 건물 임대료, 인건비 등으로 쪼개어지니 자영업자들이 망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자영업자만이 아니다. 한때는 청소년들의 주된 알바였던 배달 라이더가 이젠 30대 가장들의 일터가 되어간다. 새로운 산업구조에서 등장한 이 신종 노동자들은, 하지만 여전히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결국 산업은 변화하고 자본은 그에 맞춰 발 빠르게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데, 법과 제도는 그를 쫓아가지 못한 채 개인인 자영업자들과 배달 라이더들에게 책임을 온전히 지우고 있는 것이 바로 광화문 광장으로 나선 소상공인들의 뒷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저임금제를 어찌한다고 해서 폐업률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무인주문기, 중국에서 활성화된 스마트폰 결제 시스템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 환경에 맞는 제도적, 법적 환경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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