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정부가 '데이터를 가장 안전하게 잘 쓰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에 나서면서 비식별 조치가 이뤄진 가명·익명정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개인정보의 상업적 목적 이용에 따라 국민기본권이 침해받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며 야당 일부와 시민사회 반발이 일었다.

정부는 31일 경기 성남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데이터 경제활성화 규제혁신을 위한 행사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 산업의 원유가 바로 데이터"라며 "데이터의 적극적인 개방과 공유로 새로운 산업을 도약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은 "정보화 시대에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면서도 "다만 보호와 활용의 조화를 위해 개인정보의 개념을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규제혁신을 시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경기 성남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열린 관계부처 합동 '데이터 경제활성화 규제혁신을 위한 현장방문'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추가정보의 사용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게 조치한 정보를 '가명정보', 다른 정보를 사용하여도 더 이상 개인을 알아볼 수 없게 조치된 정보를 '익명정보'로 규정하고 이를 시장조사 등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안전하게 조치된 데이터 활용을 제고해 스마트 시티·핀테크 등에서 새로운 비지니스를 창출하고, 신산업 육성의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가 규정한 '가명정보'는 추가정보의 사용 시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있게 되는 셈인데 정부는 이같은 상황이 발생시 처리중지·삭제조치 의무화, 고의적 재식별시 형사처벌, 과징금 부과 등으로 엄격하게 조치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정부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상강화로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규제혁신 방안이 실행될 경우 상업적 이용에 따른 개인정보 유출로 국민기본권이 침해받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이날 행사 직후 논평을 내어 "지금의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개인정보보호 정책에 대한 명확한 원칙도 없이 '규제완화, 혁신성장'이라는 환상에 빠져 무리한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추 의원은 "지난 28일 개인정보보호 규제완화 정책에 대한 정의당의 지적에 여당은 '다른 정보와 결합해도 더 이상 특정 개인 또는 개인의 위치를 알아볼 수 없도록 하는 조치'에 한정한 복원 불가능한 정보에 대해 완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면서 "그러나 오늘 정부가 제시한 규제혁신안은 '추가정보의 사용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게 조치한 정보'를 '가명조사'로 규정하고 상업적 목적과 산업적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활용범위를 확대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22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7개 시민사회단체가 ‘개인정보 감독기구 통합없는 무분별한 규제완화 반대’ 기자회견을 개최한 모습 (추혜선 의원실 제공)

이어 추 의원은 "이처럼 정부와 여당은 현재 개인정보 규제완화의 범위에 대해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당은 '익명정보'의 활용을, 정부는 '가명정보'와 '익명정보'의 활용을 주장한 것으로 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혁신 범위에 대해 정부와 여당마저도 인식을 달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추 의원은 "현행 법제와 분산된 감독기구로는 정부가 내세우는 안전장치 역시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힘든 상황임에도,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됐던 개인정보 보호법제의 개선과 감독기구 일원화에 대해서는 언급조자 없었다"며 "여론을 의식한 듯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지만, 구체적인 개선방안은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 역시 이날 행사 직후 낸 논평에서 "문재인 정부는 개헌안에 정보기본권을 신설한다고 해놓고 정작 정보기본권의 근간을 뒤흔드는 데이터 자본의 논리에 굴복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참여연대는 "오늘 발표된 청와대 입장은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데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개인정보를 보호하겠다는 것"이라며 "청와대는 데이터 자본의 논리와 이익을 위해 복무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참여연대는 "청와대는 데이터를 '안전하게'활용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활용여부에 대한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은 이상 그것을 안전하게 활용하든 위험하게 활용하든 기본권은 이미 침해된 것"이라며 "데이터산업 활성화를 이유로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기업들이 개인정보를 축적하고 결합하여 유통시킨다면 국민의 정보기본권 침해는 회복불가능한 것이 된다"고 우려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