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각은 할 때가 됐다. 시기의 문제에 있어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견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내용이다. 전반적으로 안전한 선택이라는 느낌인데, 이해가 되는 면도 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언론이 보는 이번 개각의 포인트는 논란이 있던 자리에 정치인과 관료 출신 인사들을 채워 넣었다는 것이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여성가족부 장관에 정치인 출신들이,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장자원부에는 관료 출신들이 내정됐다. 전체 숫자로 볼 때 정치인 출신은 18개 부처 중 8명, 관료 출신은 국방부 외교부 장관까지 합쳐 6명으로 늘었다. 정치인과 관료를 다 같은 색깔로 보긴 어렵겠지만 어쨌든 명확하게 일관된 흐름이 눈에 띄는 건 사실이다.

이런 인사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기존의 시선으로 보면 정치인과 관료의 약진은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실무적 적절성이고 둘째는 인사청문회 국면에 대한 고려이다. 특히 정치인 카드는 개인 비리로 인한 낙마가 치명적 상처가 될 수 있는 현 정권에선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선택지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모험을 하기 보다는 안전한 선택을 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일부 언론은 ‘실사구시 내각’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일자리 창출을 주제로 17개 시도지사와 함께 한 '제1차 민선7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기 마련이다. 먼저 정치인 입각의 증가는 대통령 중심제와 3권분립이라는 제도적 원리로 비춰봤을 때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 물론 장관은 정무적 판단을 중시해야 하는 자리지만 그것은 자기가 속한 세력이나 하다못해 지역구를 챙겨야 하는 정치인의 이해관계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예를 들자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놓고 혼란을 빚었던 사례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관료의 약진은 예정된 것이면서 동시에 양가적인 것이다. 인사와 이슈 관리를 통해 임기 말까지 개혁 이슈를 밀어 붙이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정권 초반에 중용된 학자나 시민단체 출신들은 중반에 접어들면서 퇴조하고 그 자리를 관료가 채우는 현상이 처음은 아니다.

관료 출신 장관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실무에 밝고 조직 장악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정부 내에서 나오는 잡음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사례처럼 장관 본인의 ‘설화’로 인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조직적 문제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관료 출신 장관은 이런 상황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선택지다.

반대로 단점은 ‘개혁’에 어울리는 인사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관료들이 개혁을 싫어하거나 기득권 세력과 결탁돼있다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직업 관료들은 기성의 해법에 익숙하고 새로운 시도와 모험에 책임지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어떤 장관이 소신이 강한 학자나 시민단체 출신에서 관료 출신으로 바뀌었다면 그 부처가 추진하는 일은 더 이상 개혁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 장관 내정자들의 성향은 그런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탈원전 등 에너지 정책 문제에 무게를 실었다면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는 이른바 ‘혁신성장’이라 불리는 산업정책 측면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수층과 중도층에서 논란이 많은 사안으로부터 벗어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래픽] 새 장·차관급 내정자 프로필(연합뉴스)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이르면 이런 신호가 더욱 명확하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여러 논란이 있긴 했지만 적어도 노동계 출신이다. 그런데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전형적인 고용정책 전문 관료로 노사관계 또는 노정관계라는 차원에선 후퇴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당장 노동계는 이재갑 후보자가 보수정권 시절의 퇴행적 노동정책을 주도했다는 의구심을 표현하고 있다.

언론은 이재갑 후보자 내정의 의미에 대해 최근의 고용 참사 논란과 ‘조직 재건’이라는 측면을 고려한 인선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서 조직 재건이란 지난 정권의 위법 행위에 관여한 고위관료들이 법적 책임을 지게 되면서 생긴 조직 내의 여러 부정적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조선일보의 경우 ‘삼성노조 와해 관련 논란’을 예로 들고 있다. 즉 ‘적폐청산’을 하려다 보니, 쌓인 ‘적폐’가 너무 많아서 아예 조직이 붕괴될 지경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그래서 조직을 추스릴 관료 출신 장관 인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이런 선택은 결과적으로 정치적 냉소주의에 기댄 ‘아마추어 프레임’을 강화할 것이라는 점에서도 우려된다. ‘아마추어 프레임’이란 보수세력이 주로 제기하는 것으로서 대개 이런 형식이다. 개혁적 성향의 정부가 현실을 잘 모르고 이상에 치우친 정책만 밀어 붙이다 보니 정책 혼선이 벌어지고 오히려 없는 사람들만 피해를 보게 되었으니 원래의 해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프레임에 대한 문재인 정권의 답변은 오히려 개혁이 충분치 않아 벌어진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예상할 수 있는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모범답안이다. 그런데 실제 사람을 쓰는 문제에 있어서는 리스크 관리에 치중하면서 개혁으로부터의 후퇴를 우려하게 하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통계청장 교체 논란도 본질적으로는 이와 무관치 않다. 이런 행보는 결과적으로 ‘아마추어 프레임’에 근거가 없는 게 아니라는 인식의 일반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인선에서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있는 대목은 최초의 여성 부총리 탄생과 성정치적 문제에서 비교적 진일보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걸로 알려진 진선미 의원의 입각이다. 물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내정된 유은혜 의원의 경우 전문성과 정체성 양쪽에서 동시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약점이 있지만 여성 부총리라는 상징성과 내각 내 여성 비율의 제고라는 명분을 무시할 일은 아니다.

남은 일은 이렇게 입각한 여성들이 실제로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새로 장관이 된 여성들이 잘한다고 해서 달성할 수 있는 과제는 아니다. 정권 차원에서 중단 없는 개혁의 노선을 유지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특히 사회부총리의 업무 영역인 교육이나 여성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후퇴니 뭐니 하는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마지막까지 성과를 포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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