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장이 교체된 것에 의문이 없지 않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의 억지는 말 그대로 도를 넘었다. 참여정부 때 유진룡 문체부 차관 사례가 등장하는가 하면 이 문제를 연산군의 폭정에 빗대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리스 문제에 이르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통계청장 문제를 그리스에 갖다 붙인 것 중에는 중앙일보의 글도 있다. 28일자 지면에 실린 배명복 논설위원의 글은 믿을 수 없는 중국의 통계와 통계 조작으로 국가신인도가 떨어져 국가 부도에 이른 그리스의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사례를 함께 다루는 것은 중앙일보의 이 글이 처음은 아니다. 때만 되면 반복되는 레파토리다.

중국은 그렇다 치고 그리스에 대해 말해보자. 그리스 사례의 문제는 정확히 말해 분식회계다. 2001년 유로존 가입 전후부터 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축소 발표해오고 있다는 의혹이 있었고 특히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집권한 신민당 정부는 재정위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이러한 행위를 지속한 걸로 의심을 받았다. 결국 2009년 10월 사회당(PASOK) 정부는 재정적자 규모가 목표치의 3배 이상을 초과한다고 발표해 그간의 분식회계 의혹을 시인했다.

우리나라의 체계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2010년 6월 작성돼 한국경제연구원(전경련 계열의 민간연구소이다) 홈페이지에 실린 옥동석 교수(박근혜 정권 인수위 출신이다)칼럼을 인용하자면 그리스 정부의 분식회계 사례는 크게 세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세입세출 계상의 문제, 둘째는 거래분류의 문제, 셋째는 재정범위의 문제이다. 이 글은 “우리나라에서는 세입세출이 정확하게 계상되지 않고 누락되는, ‘세입세출 계상의 문제’를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고 하고 있다. 숫자 자체를 조작하는 건 불가능 하다는 얘기다.

다만 뒤의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선 우리도 자유롭지 않은데, 예를 들면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지원이 적정하게 구분되지 않거나 금융성 기금과 공공기관들의 재정활동이 중요 재정지표에서 배제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은, 물론 고약한 경우를 가정하자면 끝도 없지만, 어쨌든 이미 존재하는 숫자를 어떻게 분류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앞의 문제에 비하자면 심각성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볼 수 있다.

강신욱 신임 통계청장이 28일 오후 정부대전청사에서 취임식을 마치고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여간 그리스의 이런 사례를 최근의 논란과 결부시킬 수 있을까? 청와대는 아니라고 하지만 통계청장의 교체는 가계동향조사의 표본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 표본수를 늘리면서 고령층 저소득층 가구가 과대표집돼 저소득층 가구의 소득 감소가 더 커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걸 의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표본구성에 대한 이런 비판은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다. 표본이 과대표집 됐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표본이 늘어날수록 통계의 정확도는 올라갈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수집된 표본을 예를 들어 가중치 부여 등의 과정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서 발생한다.

통계청은 표본규모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조사항목의 전국 단위 대표성을 확보했고 2010년 인구총조사 기반을 2015년 인구총조사 기반으로 교체하면서 생긴 모집단 변화 역시도 반영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기존통계와의 시계열 유지를 위해 표본그룹을 중첩시켜 연동하는 방법으로 표본을 추출했다고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통계청의 이런 조치가 맞지 않거나 불충분하다고 보는 모양이다. 2분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인 지난 9일 한겨레가 지면에 실은 전문가들의 대담 기사에서도 이런 기류가 읽힌다.

이 대담에는 이번에 신임 통계청장으로 임명된 강신욱 당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참여했다. 강신욱 청장은 “이번 표본은 가중치를 적용해봐도 센서스(5년마다 실시되는 인구주택총조사)에 나타난 인구 구성에 비해 고령층이나 1인 가구가 과다했다”면서도 “데이터 문제인지, 경기 변화를 반영한 건지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신욱 청장의 당시 인식은 노동연구원과 보건사회연구원이 공동으로 작성한 ‘2018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검토’ 보고서에 잘 나와 있다. 이에 대해 통계청은 비판을 감안해 조건을 달리해 분석할 경우 수준의 차이는 있어도 추세 자체의 변화는 크지 않다고 해명했었다.

종합해보면 이 논쟁은 중단 예정이었던 가계동향조사가 다시 재개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문제를 보완하면서 나타난 현상을 둘러싼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표본의 질적 변화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통계청이 “각별한 주의를 요함”이란 전제를 달고 굳이 전년도 동분기와의 비교를 유의미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은 그게 이 조사의 존재 의의이기 때문이다. 잘 하려다 보니 생긴 문제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걸 그리스 정부의 분식회계에 빗대는 건 무리한 일이 아닐까?

물론 글의 서두에서 밝혔듯 통계청장 교체가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그리스 얘기를 더 해보자. 당시 분식회계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새롭게 통계청장에 임명된 인물은 반대로 부채 규모를 지나치게 키웠다는 이유로 지난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 배경에는 채무위기의 책임을 면하려는 신민당과 구제금융 및 긴축정책 문제에서 정치적 성과를 내려는 집권 시리자 정부의 의도가 작용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전임 또는 신임 통계청장이 사법의 심판을 받게 될 거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리스라고 무조건 인민재판을 했을 리도 없으니 아마도 논쟁적 대목이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한다.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통계청장 자리 자체가 정파적 논란의 대상이 될 경우 출구가 없어질 수 있다는 거다.

통계청장 임면은 인사권자의 고유권한이다. 언제나 문제는 이유다. 기존 통계청의 문제는 이러 저러한 것이었고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적임자로 신임 통계청장을 선택했다는 명확한 이유가 설명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는 과거 정부와 마찬가지로 집권 2기를 맞아 차관급 인사를 했다거나 조직에 활력이 필요해서 그랬다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정작 전임 청장은 여기 저기 나타나서 윗선의 지시니 정치적 도구니 한다. 신임 통계청장은 물론 능력있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앉게 됐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런 상황은 최근 보수세력의 총공세 속에서 청와대의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이 반영된 게 아닌가 한다. 문제에 대한 대응은 신속해야 하지만 난잡해선 안 된다. 청와대는 각종 통계 자료를 근거로 오히려 소득주도성장이 필요한 이유를 더 보여준다고 설명해왔다. 그게 맞다. 하지만 이번 인사는 그런 설명을 빈말로 보이게 한다. 뻔히 보이는 함정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갈 필요는 없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