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도우리 객원기자] <깊이에의 강요>는 독일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대표작이다. 소설은 한 평론가가 여성 화가의 전시회를 다녀온 뒤 "그녀의 그림에는 깊이가 없다"는 혹평에서 시작된다. 그 화가는 평론가의 비평에 사로잡혀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다 결국 자살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의 자살 후 같은 평론가가 “그녀의 그림에는 삶을 깊이 파헤치고자 하는 깊이에의 강요가 있다"라는 호평했다는 점이다. 그녀의 죽음이 자신이 무심히 남긴 비평 때문임을 모른 채.

지난 15일 법원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의 요지는 안희정 전 지사가 그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 씨에 대해 ‘위계는 있었으나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주된 근거로 김지은 씨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도 명시적으로 반항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결국 이번 판결은 김지은 씨의 ‘피해자답지 못함’을 문제 삼은 것이다.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번 안희정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지은 씨가 피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안희정에 대한 존경을 나타낸 점, 지난 2월 마지막 피해를 당할 당시 미투 운동을 상세히 인지한 상태였음에도 안희정에게 그에 관해 언급하거나 자리를 벗어나는 등 회피와 저항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얼어붙은 해리 상태에 빠졌다고 보기도 어렵다”면서 “피해자는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을 갖춘 사람으로 보이고 개인적 취약성 때문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행사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아니함”이라고 판시했다.

안희정 전 지사 1심 무죄판결 선고 직후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연합뉴스)

결국 올바른 피해자다움이란 이번 판결을 뒤집어 보면 알 수 있다. ‘피해가 일어나는 동안에는 최대한 격렬히 저항하고, 피해가 끝난 뒤에는 곧바로 신고한다. 피해 이후에는 가해자가 두렵고 동료들에게 피해 사실을 티내고 싶지 않더라도 가해자에게 무조건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피해 신고 과정에서는 자존감이 강해 보이는 단호한 모습 대신 심리적으로 얼어붙은 해리 상태에 빠져야 한다. 평소에는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을 갖춰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런데도 소송 과정에서는 신뢰할만한 진술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상태’다. 모순 그 자체다.

왜 성폭력 피해자에게 이런 피해자다움을 요구할까? 성폭력 처벌의 보호법익이 여전히 1995년 형법 개정 전 ‘정조에 관한 죄’일 때처럼 ‘정조’인 탓이다. 그래서 피해자다움에의 요구는 사회적으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보다 여성 개인이 ‘정조’를 단속하고 지키게 하려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는 정조의 상실이며, 정조의 주인은 남성이기 때문이다. 은장도로 자결하던 문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래야만 성 상납 강요를 견디다 못해 자살한 고 장자연 씨처럼, ‘여성으로서의 명예’를 지킬 수 있다. 대신 피해 복구와 처벌을 요구하는 법적 주체, 무엇보다 인격적 주체가 될 기회는 잃는다.

피해자가 강간 피해자로 인정받으려면 피해 당시 적극적으로 저항했음을 입증해야 하는 ‘예스 민스 예스 룰(Yes means yes rule)'도 마찬가지다. 성폭력 때 격렬한 저항은 대체로 가해자의 분노를 유발해 피해자를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 특히 여성은 신체조건상 남성에게 대등한 수준의 저항이 거의 불가능하다. 강간 위협 시 ‘순순히 가만히 있던’ 피해자가 많은 이유다. 만약 위력이 있었다면 피해 이후에도 곧바로 신고하지 않고 ‘순순히 평소처럼 대하던’ 피해자가 많은 이유기도 하다. 결국 피해자다움 중 ‘적극적 저항’에의 요구는 여성의 안위 자체보다 정조를 보호하라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 현재 정조 개념으로서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성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동의할 권리만 허용할 뿐, 거부할 권리는 사실상 빠져 있는 것이다.

법원은 착각해서는 안 된다. 성폭력 사건 판결은 피해자가 피해자다움에 얼마나 부합했는지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다. 대신 가해자가 얼마나 상대의 동의를 구했는지, 위력이 행사되지 않도록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따져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안희정 지사는 김지은 씨와의 성관계가 합의가 아니었다며 사과하고 도지사직에서 물러났다가 합의였다며 진술을 번복하고, 증거로 채택된 휴대폰 제출을 거부했다. 그런데도 공개된 재판문에는 가해자 안 지사에 대한 추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더 이상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피해자다움에의 강요’를 받지 않아야 한다. 대신 가해 남성들이 ‘가해자다움에 대한 강요’를 받아야 한다. 적극적으로 상대의 동의를 구했는지, 위력을 충분히 차단했는지 입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부터 남성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성적 행동을 단속해야 한다. 조신하게 정조를 지켜야 하는 쪽은 남성이다. 무엇보다 사법부는 ‘정의로움에 대한 강요’를 받아야 한다. 특히 오히려 피해자를 추궁하며 입법부의 문제로 호도한 이번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판결에는 ‘깊이’가 없었다. 얄팍한 판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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