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함과 젠더 감수성에 대한 언급이 빠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아는 와이프>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성과 한지민이라는 절대 강자를 앞세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내가 가지기는 싫고 남 주기는 실은 이기적인 남자의 편협한 사정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편협한 시각이 만든 기묘한 풍경;
작가는 왜 지성에게 가혹한 시련을 안기고 있는 것일까?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주혁의 욕망은 현실로 다가왔다. 지하철에서 우연하게 만난 남자가 준 특별한 연도의 500원 동전은 그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만드는 역할을 해주었다. 상상만 했던 삶을 살게 된 남자는 행복할까? 남자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차주혁은 서우진과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다. 지독하게 사랑해서 결혼한 것도 아니다. 과외를 하다 갑작스럽게 우진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렇게 정인지 책임감인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결혼까지 했다.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

주혁은 은행원이지만 혼자 벌어 살기는 어렵다. 아내인 우진은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따로 일을 해야만 했다. 독박 육아까지 책임지는 우진으로서는 삶 자체가 고통일 수밖에 없었다. 삶이 피폐해지면 부부는 싸운다. 힘겨운 상황을 극복하려 하기보다 피하려 하고, 그렇게 멀어진 관계는 회복 불능에 빠지고는 한다.

히스테리만 늘어가는 아내가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한 남편 주혁은 현실 도피를 선택했다. 그렇게 주어진 기묘한 삶. 문제의 동전을 넣고 톨게이트를 지나자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얻게 되었다. 첫사랑이었던 재벌가 외동딸 이혜원의 남편이 된 주혁은 우진과 살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삶과 마주했다.

모든 것을 다 갖춘 듯한 삶이다. 아름답기만 한 혜원은 마치 광고에서 보는 듯한 모습으로 매일 아침을 깨운다. 재벌 사위가 되자 은행에서 대우도 달라졌다. 그렇게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던 주혁의 삶이 다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운명처럼 다가온 우진이었다.

완벽해 보였던 주혁의 두 번째 삶은 아내였던 우진이 같은 은행에서 함께하며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벽해 보이던 혜원과의 생활에도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넘치는 돈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는 혜원의 이기적인 행동이 주혁은 불편하다.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

시부모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간만에 찾아온 시부모를 모습에서 주혁은 실망했다. 그 차이가 결정적인 문제는 아니었겠지만, 시부모와 며느리의 갈등이라는 요소를 꺼내 들어 주혁의 변화를 언급하는 방식은 진부함을 넘어선 듯 보인다.

여전히 고리타분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캐릭터 구축은 씁쓸하다. 주혁이 혜원을 막연한 동경에서 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시점을 이것으로 특정할 수는 없지만 이들 관계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기점은 분명하다.

시부모와 며느리 관계 설정의 클리셰는 그나마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양희승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른 삶을 살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내의 면모를 제대로 확인하게 되고 진짜 사랑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식의 주제라고 포장하는 것도 문제다.

돌고 돌아 진정한 사랑은 결국 ‘아는 와이프’였던 우진이었다는 설정. 남자의 욕망과 로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상상만 했던 첫사랑 혜원과 결혼 생활을 하고, 그것도 부족해 바뀌기 전 아내였던 우진의 새로운 모습에 반해 어쩔 줄 모르는 주혁의 모습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기이할 뿐이다.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

처음부터 잘못 뀐 단추는 아무리 되돌리려 해도 처음처럼 될 수는 없다. 현실 그 자체였던 결혼 생활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우진의 본모습을 본 후 다시 사랑이라는 감정을 일깨웠다는 식의 이야기 전개는 최악이다.

자신의 친구가 주혁이 바꾼 세상에서 미혼인 우진을 사랑하자 이를 방해하는 모습은 서글프기까지 했다. 남의 연인이 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그 욕망의 찌꺼기는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자신은 다른 여자와 살고 있으며 이제는 '아는 와이프'가 된 우진의 삶을 방해하는 것은 그저 탐욕일 뿐이다.

기묘한 공감 속에서 낯설지 않은 주혁에게 마음이 가는 우진. 그리고 치매에 걸린 우진의 어머니는 기억이 변하지 않았다. 주혁을 여전히 '차서방'이라 부르는 그녀의 행동이 결국 변화로 이끄는 이유가 된다. 새로운 사랑을 찾거나 이어가지 못하고 변해버린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우진이라는 캐릭터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우진은 왜 그녀만의 멋진 삶을 살지 못하고 주혁을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을까? 재벌가 외동딸로 태어나 자신을 위해주는 머슴 같은 남편을 원하고 그렇게 착실한 주혁을 남편으로 장식한 채 사는 혜원이라는 캐릭터도 납득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기적이며 시기심이 많고 그저 주어진 부에 취해 살아가며, 자신의 배경과 돈을 보고 접근하는 어린 남자에게 혹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혜원이라는 캐릭터는 최악일 수밖에 없다. 주체적인 삶을 살지도 못하고 그저 수동적으로 이용만 당하는 듯한 캐릭터는 참 서글프다.

tvN 수목드라마 <아는 와이프>

<아는 와이프>는 남성 중심의 사고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성중심 사회의 가치를 자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캐릭터들 사이에서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남자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여념이 없는 이야기, 다시 돌아가 조강지처와 아이들과 행복하게 사는 남자의 운명에서 해피엔딩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젠더 감수성이 중요한 화두가 된 대한민국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서 전근대적인 설정의 드라마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속 남성은 이런 속물들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작가는 왜 지성에게 이런 불편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왜 한지민이 중심에 선 삶을 그리려 하지 않았을까? 남성의 욕망을 충족해줄 수는 있지만 여성의 로망은 거부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지성의 삶이 바뀌었듯 한지민 역시 멋진 남자를 만나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그리는 것이 그나마 공평한 설정 아니었을까? 그저 지성의 사랑을 갈구하는 듯한 캐릭터는 씁쓸하기만 하다.

지성이 다시 돌아가 현실에 힘겨워하는 아내를 진정 사랑하고 그렇게 이들이 처음 사랑했을 때처럼 다시 행복한 부부가 된다는 식의 스토리가 먹히는 시대는 아니다. <아는 와이프>는 우리 사회에 대한 미러링일까? 남성중심의 시각적 폭력이 가득한 예쁜 로맨스 드라마의 허상을 지적하고 싶은 작가의 깊은 뜻이 담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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