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시간마다 매번 충격적인 사건사고들을 쏟아내는 다이나믹 코리아지만 최근 정신없이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야말로 머리를 아프게 합니다. 군역 회피를 목적으로 고의로 발치 치료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MC몽은 2차 소환조사를 받아 예능 판도의 지뢰밭을 만들고 있고, 네티즌들의 학력 위조 의혹 제기로 몸살을 앓던 타블로는 입증을 위해 MBC 제작진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사안은 좀 더 경미하고 관심은 적었을지는 몰라도 1박2일의 오프로드 특집은 조작 의혹에 시달렸었고,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의 한 출연자는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일본 유명 가수의 것을 모방했다는 의심을 받았고, 소녀시대의 수영은 달라진 얼굴 사진을 근거로 성형 의혹에 시달렸습니다.

비단 연예계뿐만이 아닙니다. 일본에 진출해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내고 있는 야구선수 김태균과 결혼을 발표한 리포터 김석류는 프로그램 하차를 하며 속앓이를 했던 심정을 토로했고,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던 김연아와 브라이언 오셔 코치는 결별을 선언하며 이런 저런 이야깃거리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여성 최초의 히말라야 14좌 등정을 달성했다던 오은선은 산악연맹에 의해 의혹에 휩싸였던 문제의 칸첸중가 등정을 인정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죠. 또 빠진 것이 있나요? 이 모든 민감한 일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화제에 오른 굵직한 일들을 추린 것들이 아니라 한 달, 아니 고작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시간에 언론과 인터넷을 달군 최근의 일들입니다.

모두가 분야도 다르고 그 발단도, 전개 과정도, 결과도 다른 일들이죠. 하지만 그 일의 경과가 어찌 되었던 간에 문제가 발생하고 이에 대한 여러 평들이 엇물리면서 묘한 접점을 가지게 됩니다. 바로 의심이라는, 도무지 그 사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에서 문제가 시작되고 확산되고 복잡해진다는 점이죠. 어떤 이의 과거와 경험을, 공적과 성과를, 서로간의 관계를, 심지어 개인의 외모나 사랑까지도 신뢰하지 못하고 그것에 거침없고 매서운 화살과 돌팔매를 서슴지 않는 행위를 너무나 빈번하게, 이제는 당연하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린 의심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어떤 이는 이런 의심 바이러스의 근원지로 무분별한 의혹을 양산하는 왜곡된 인터넷 문화를 탓하기도 합니다. 별 것 아닌 것에도 집착하고 조그마한 꼬투리에 흥분하는 선동가들을 비판하기도 하구요. 확실한 근거도 없이, 그저 유행을 따라하듯 집단으로 특정인을 공격하거나 사실을 확대 왜곡해서 그/그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악행은 분명 존재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편승하고 동의하고 공격해서 철저하게 무너뜨린 다음 금세 또 다른 새로운 먹이감을 찾는 잔인한 행태는 확실히 근절되어야 할 잘못된 문화입니다.

하지만 단지 그런 삐뚤어진 몇몇 사람들, 그릇된 몇몇 예들에 의존하기엔 그런 의심들에 의해 시작되어 실제 잘못으로 드러난 여러 반대의 예들이 의심의 정당성을 옹호하게 합니다. 터무니없는 의혹처럼 보이던 것들이 실상 알고 보니 근거 있는 지적인 경우도 적지 않고, 그런 실망과 배신감들이 쌓이면서 무턱대고 의심하지 말라고 하기엔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지해야 할지 점점 모르게 되어 버렸습니다. 우린 너무나 불분명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어떤 사실에 대한 입증의 요구는 점점 더 커지게 되고 이전엔 믿고 넘어가던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의심부터 하는 버릇이 생겨났습니다.

왜 이렇게 꼬여 버렸을까요? 사람들이 전보다 악해졌기 때문에, 아니면 속이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특정한 누구에게 책임을 묻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실망과 절망을 안겨주는 이들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거든요. 하지만 확실한 것은 누군가를 믿을 수 있는 신뢰의 근거를 더 이상 다른 이에게 의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공공 기관도, 지식인들도, 상식이나 전통도 그 기준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어요. 천안함 사태나 검찰의 수사 발표에 대해 늘상 이어지는 의혹들처럼 국가의 공식 발표에 대한 신뢰는 점점 더 떨어지고 있고, 공정한 사회를 말하던 나랏님은 전혀 공정하지 않은 인물들이 직무수행에 문제가 없다며 공직 후보로 지명하는 세상이니까요. 눈앞에서 비리를 질타하던 위원님은 다음 달이면 자신의 비리혐의로 수갑을 차고 이런 모든 부정과 거짓을 말하는 이들이 잠깐의 후회 뒤에 떵떵거리며 잘만 살아가는 세상이거든요.

그러니 이제 믿을 수 있는 것은 내 자신의 눈으로 보고, 듣고, 느낀 것 외엔 없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직접적인 경험들도 믿을 수 없게 되고 있는지도 모르구요. 의심이 심해지고 비판의 강도가 점점 집요하고 강해지는 이유는 의심을 품은 이들이 그 의혹을 해결해 줄만한 어떤 신뢰할 만한 권위도 규칙도 합의도 찾지 못하고,(정의란 무엇인가의 히트는 이렇게 갈 길을 찾지 못한 이들의 갈망이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저마다 자기만의 근거를 내세우며 증명의 요구를 다양하고 복잡하게 제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제각각의 요구가 모두 만족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결코 해소되지 않을 또 다른 의혹을 불러올 뿐이죠. 의심은 의심을, 불신은 불신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회적 조정 능력이 상실되고 판단의 기준이 모호해졌다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으니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주장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죠. 지금은 이런 비난과 의심의 화살들이 보다 많은 영역이 노출되어 있는 공인들을 향해 있기에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마음 놓고 돌을 던질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과녁은 서서히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개인을 향해 맞춰질 위험이 너무나도 큽니다. 이미 XX녀, XX남처럼 그들이 저지른 실수와 잘못들이 공적인 통로를 통한 사실확인과 제제나 질책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수많은 개인들이 던진 그런 돌팔매질로 상처를 입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점점 더 늘어가고 있구요.

예능 프로그램과 출연자들에게 정치인들이나 공직 후보자들에게도 기대하기 힘든 진정성을 요구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다른 이들의 사랑과 이별에 그 진실함을 증명하라고 손가락질하며, 과거의 모든 언행과 경험에 대해 증빙 서류를 제출하라고 닦달하는 2010년의 대한민국. 어떤 이는 그냥 웃고 즐기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TV속 세상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처럼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제일 빠르고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 섬뜩한 경고를 그저 몇몇 이들의 철없는 행동으로 치부하고 넘어간다면 우린 멀지 않은 미래에 그 의심의 덫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가혹함을 겪게 될지도 몰라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정한 사회 이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에요. 이럴 때야말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불행하게도 과거야 어찌되었든 사과만 하면 결정적인 한방이 사라진다고 믿는, 일부에게만 너무도 너그러운 지금의 정부 하에서 이런 신뢰에 대한 갈망은 해소될 것 같지 않지만 말이죠.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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