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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무죄 판결, 미투운동이 필요한 이유[기자수첩] 사회적 통념 변하면 재판 결과 달라질 수 있어
전혁수 기자 | 승인 2018.08.16 11:30

[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지난 3월 JTBC 뉴스룸에서 김지은 전 충남도 정무비서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김 전 정무비서는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차분하게 성폭행 사실을 설명했다. 안 전 지사가 4차례에 걸쳐 성폭력을 가했으며, 미투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던 지난 2월에도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했다. 안 전 지사는 성관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국민들은 당시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됐던 유명 정치인의 성폭행 혐의에 대해 실망과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시간은 안 전 지사의 편이었다. 안 전 지사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던 여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꽃뱀론'으로 변질돼 갔다. 여자가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김 전 비서가 안 전 지사에게 꼬리를 쳤을 것이다, 불륜을 왜 성폭행이라고 하느냐는 식의 2차 피해를 야기하는 비하 발언이 인터넷 공간의 다수 여론이 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여론에 김 전 비서가 심리적 압박으로 병원치료를 받는 일까지 발생했다.

▲14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무죄 판결을 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피고인이 유력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며,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권을 가진 것을 위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도 "간음·추행 때 위력행사 정황이 없고, 공소사실 모두 범죄증명을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번 법원의 판결을 법적으로 틀렸다고는 볼 수 없다. 대법원 판례는 성범죄를 인정할 때 '협의'를 중심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항거 불가능하거나 현저한 정도가 돼야 성폭행이 인정된다. 성관계를 가졌을 때의 이익과 갖지 않았을 때의 이익 구도도 따진다. 과거 여성 비서는 사장과 어떤 관계일까 등의 질문을 던지는 식의 왜곡된 이익 구조 인식에 따른 사회통념의 결과물이다. 이번 무죄 판결은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의 결과로 볼 여지가 있다.

현재 한국의 사법체계에서는 위력에 의한 성폭행에 대한 처벌 자체가 사실상 어렵다. 미국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미국의 경우 성관계 중 여성이 거부 의사를 밝힌 사실이 밝혀지면 성폭행이 성립된다. 그러나 한국의 판례는 달랐다. 다분히 남성중심적 사고가 들어간 결과다. 사회문화적 환경이 지나치게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민석 법률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만약 이번 사건이 미국처럼 배심 재판으로 진행되거나, 국민참여재판 정도로만 진행됐더라도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며 "대법원 판례로 봤을 때 법원의 판결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번 판결이 제대로 된 판결인지는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 사무총장은 "사회가 변하면 판례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안 전 지사의 무죄 판결이 미투운동의 정당성 약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미투운동은 애초에 가해자의 법적 처벌을 하자는 운동이 아니었다. 사회에 만연한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하고, 남성 중심적 사회통념을 극복하자는 게 미투운동의 진정한 취지다.

이번 판결은 남성 중심적 사회문화를 극복하지 못한 판결의 답습이라고 볼 여지가 많다. 미투의 가해자로 지목된 일부 남성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의 사회적 사실과 법리에서 인정하는 사실은 다를 수 있다. 미투운동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사회적 인식이 달라진다면 향후 재판의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 이번 판결이 미투운동의 정당성을 깎는 요인이 아닌 기폭제가 돼야 하는 이유다.

전혁수 기자  wjsgurt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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