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근한 인상이 돋보이고 마치 모 유명 치킨 마스코트와 닮았다 해서 '000 할아버지'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포르투갈 출신 넬로 빙가다 감독. 화려하지는 않지만 강한 팀 정신을 앞세워 부임 첫 해 만에 인상적인 성적을 남기고 있는 빙가다 감독이 FC 서울을 이끌고 의미 있는 컵대회 우승을 일궈내면서 활짝 웃었습니다.

서울은 25일 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와의 포스코컵 2010 결승전에서 데얀, 정조국, 이승렬 등 주축 공격수들이 각각 한 골씩 넣은 것에 힘입어 3-0으로 완파하고 4년 만에 이 대회 정상에 올랐습니다. 리그 우승은 아니었지만 서울 선수들은 우승 한풀이에 성공하면서 활짝 웃었고 빙가다 감독 역시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고 모처럼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우승을 만끽했습니다.

'우승 프리미엄'이 없는 컵대회라고 하지만 서울의 우승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넬로 빙가다 감독 체제가 빠르게 자리 잡히면서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는 것이 무서울 정도입니다. 이 기세라면 내년까지 계약 기간인 빙가다 감독이 목표한대로 아시아 정상에 도전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25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포스코컵 전북 현대와 FC 서울의 결승전. 우승을 차지한 서울 선수들이 빙가다 감독을 헹가래하고 있다. ⓒ연합뉴스
빙가다의 강한 팀 정신 주문...서울을 확 바꿨다

빙가다 감독이 부임하면서 가장 강조한 것은 바로 '팀 정신'과 '하나된 마음'이었습니다. 축구가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11명 선수 모두가 잘 해야 하는 경기인 것을 강조하면서 나 하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잘 해야 한다는 것을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빙가다 감독이었습니다. 실제로 블로거가 몇차례 빙가다 감독 기자회견장에서 만났을 때도 다른 감독들에 비해 유독 팀 정신을 강조하는 것을 자주 봐왔는데요. 이는 나름대로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서울은 스타급 선수들을 잇달아 배출하고도 이상하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마지막 정규리그 우승이 2000년이었고, 그것도 서울로 연고 이전하기 전인 안양 시절 거뒀던 것이었습니다. 유망한 선수가 잇달아 나오고, 창의적인 경기를 펼치는 몇 안 되는 팀임에도 우승에는 항상 실패했던 팀이 바로 서울이었습니다. 그나마 2년 전 세뇰 귀네슈 감독이 팀을 정상급으로 이끌어내면서 준우승을 차지했던 것이 최고 성적이었을 뿐 이듬해에는 팀을 조율할 수 있는 베테랑들이 대거 제외된 탓에 위기 때 효과적으로 잘 대처하지 못하면서 무관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좋은 선수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박주영, 기성용, 이청용 등 현재는 해외파인 선수들이 모두 서울 출신이었고 김동진, 곽태휘, 이을용, 김병지 등도 서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나름대로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또 국가대표 출신들이 유독 많은 팀 가운데 하나가 바로 FC서울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수 개인의 역량이 이상하게도 유기적인 조직력, 팀 플레이로 이어지지 못했고 결정적인 시기, 순간마다 경기를 놓치는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우승 도전에 연이어 실패했습니다.

이렇게 팀 자체가 실력이 있음에도 우승에 대한 한을 갖고 있는 가운데서 부임한 넬로 빙가다 감독 입장에서는 '팀 플레이, 팀 정신을 갖고 있는 것만이 살 길'이라면서 체질 개선을 꾀했고 그에 걸맞게 새로운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팀 자체를 쇄신하는 노력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서울의 행보에 '이렇게 바꾸고도 우승은 못 할 것'이라면서 비아냥거렸고, 한국 축구에 대한 경험이나 인연이 그다지 없었던 빙가다 감독의 첫 해가 힘들게 넘어갈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은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며 변화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조직적인 축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선수 개인의 역량이 한데 모여 이전보다 더 강력한 색깔을 갖춘 축구를 구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단적으로 지난 4월 4일, 홈에서 열린 수원과의 라이벌 매치에서 3-1로 깔끔한 승리를 거두면서 '빙가다식 축구'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골을 잘 넣지 못했던 공격수들이 골을 제때에 잘 넣어주기 시작했고, 중앙에서 볼이 제대로 돌아갔으며, 수비진 역시 탄탄함을 유지하면서 리그에서도 수차례 수위에 올랐습니다. 지난해 결정적인 순간에 잦은 '실수'를 범하면서 패배 의식에 사로잡혔던 선수들은 자신감이 넘쳐흘렀고, 새롭게 영입된 선수들 역시 팀 색깔에 완전히 녹아들면서 좋은 경기력을 잇달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정규리그 챔피언 전북 현대를 상대로 완벽한 경기를 펼치며 컵대회 우승컵을 거머쥐었습니다. 선수들의 플레이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고, 젊고 패기 있는 팀 색깔만큼이나 화끈한 공격력과 탄탄한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전북을 압도하는 경기를 펼쳤습니다. 빙가다 감독 체제 이후 앞세웠던 강한 팀 정신이 선수들을 거듭나게 했고, 결국 우승과 인연이 없던 '무관의 제왕'이 드디어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이었습니다.

조용한 혁명, 아시아 정상도 넘본다

서울이 컵대회 우승으로 모든 것을 끝낸 것은 아닙니다. 당장 이번 주, 최대 라이벌인 수원 삼성과의 리그 원정 경기에서 올해 전경기 싹쓸이(정규리그 5라운드 3-1 승, 컵대회 4강전 4-2 승)에 도전하고 나아가 10년 만에 리그 정상에도 도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빙가다 감독이 성과 내고 싶어 했던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도 다시 도전해 아시아 최고 팀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할 것입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내실 있는 팀 정비로 한 단계 성장한데 성공한 서울이 앞으로도 계속 좋은 성적을 내면서 명문구단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지 꾸준하게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현재 분위기만 잘 이어간다면 충분히 우승도 가능할 것으로 보여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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