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서 꽤 전통이 있는 종목임에도 국내에는 크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근대 5종입니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이 직접 고안해 1912년 제5회 스톡홀름 올림픽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근대 5종은 '만능 스포츠맨'이라는 칭호를 들을 수 있는 종목으로도 잘 알려진 종목입니다. 하루에 육상, 수영, 승마, 사격, 펜싱 등을 모두 치러 골고루 잘 해낼 수 있는 기술과 체력, 정신력이 다른 어떤 종목보다도 요구되는 이 종목은 강인한 스포츠 선수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올림픽 종목으로 유럽에서 나름대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스포츠입니다.

▲ 근대5종대회 승마경기를 치르고 있는 정진화 ⓒ연합뉴스
바로 이 근대 5종에 최근 한국 선수들의 선전이 이어지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 2004년 이춘헌이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딴 이래 꾸준하게 성장세를 보인 한국 근대 5종은 최근 2년 사이에 청소년, 유소년 선수들이 세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밟아온 이 선수들이 지금처럼만 잘 자라기만 한다면 올림픽에서 또 다른 메달 효자종목으로도 각광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한국 근대 5종이 세계 대회에서 제대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지난 해부터였습니다. 대만 카오슝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대회에서 최강 러시아를 꺾고 사상 첫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개인, 계주, 혼성 등 모두 4개 종목에 걸쳐 우승을 차지해 그야말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후에도 한국 유소년팀이 금메달 2개를 따냈고, 올해 와서도 세계청소년대회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따내는 등 선전이 이어졌습니다. 최근 열린 청소년 올림픽에서도 김대범이 승마를 제외한 '근대 4종'에서 개인전 정상에 올라 청소년 대회마다 유럽 정상급 팀들을 비집고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뤄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생소한 종목 가운데 하나인 근대 5종이 갑자기 크게 성장을 거듭한 것은 '틈새'를 노린 것이 적중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독 유럽세가 강한 근대 5종이기는 하지만 기술보다는 정신력, 체력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종목이기에 한국 선수들에 잘 맞고, 이를 알아차리고 연맹 차원에서 꾸준하게 투자한 것이 하나둘씩 결실을 맺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시아 정상권 실력을 갖춘 만큼 조금만 더 노력하면 세계 정상도 가능하다고 생각한 연맹은 근대 5종 전문 선수를 꾸준하게 키워낸다면 충분히 목표를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200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선수 발굴 뿐 아니라 동시에 실력 향상에도 중점을 둬 기존 선수들과 체계적인 훈련을 하는데도 역점을 뒀습니다. 이렇게 장기적인 관점으로 꾸준하게 투자하고 육성하면서 제대로 된 씨를 하나둘씩 뿌려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젊은 선수들은 강한 자부심과 목표 의식을 갖고 기량 향상에 온 힘을 쏟으며, 이전 선배들보다도 빠른 발전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하나둘씩 성과를 내면서 근대 5종 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의 미래를 밝힐 선수들로 떠오르기까지 했습니다.

실력 좋은 선수들이 어느 특정 선수만이 아니라 다양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눈길을 끕니다. 지난해 세계청소년대회 우승 주역인 안지훈, 정진화, 황우진(이상 한국체대)을 비롯해 세계유소년선수권 2관왕의 박상구(전남체고), 그리고 이번 유스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김대범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선수들이 계속 해서 나왔습니다. 이제는 서로 라이벌 의식도 가지면서 동기 부여도 돼 전체적인 실력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고등학생, 대학생 부분에서 좋은 선수들이 나왔고, 아직 미약한 숫자이기는 해도 대학, 일반부(111명)보다 중등부(179명), 고등부(183명) 등록 숫자가 많은 것을 보면 앞으로도 꾸준하게 좋은 선수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 앞으로 더욱 기대감도 큽니다.

물론 약간의 운도 따랐습니다. 사격과 육상이 분리돼 있던 근대 5종이 지난 해부터 두 종목(사격, 육상)이 합쳐져 재탄생하면서 그에 따른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새로운 제도 변화를 염두에 두고 오래 전부터 그에 발맞춰 선수 육성, 발굴한 것이 주효했고 그것에 영향을 받아 선수들이 하나둘 성과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옛것에 익숙해져 있어 여전히 적응에 애를 먹고 있는 유럽에 비해 그야말로 위에서 날다시피 하면서 한국 근대 5종이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탁월한 선견지명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같은 수준이 계속 유지되고 그 덕에 선수층이 더욱 두터워져 더 경쟁력이 갖춰진다면 충분히 근대 5종에서 세계적인 선수도 나오고, 올림픽에서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에도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 잇단 선수 육성과 발굴로 우수한 선수들이 계속 해서 나오면서 한국 스포츠의 희망으로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근대 5종. 당장 런던올림픽에서 어떤 성과를 낼 지 기대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마라톤, 수영, 펜싱, 스피드 스케이팅처럼 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세계의 벽을 넘어서면서 '아마추어 스포츠의 모범'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기대해 보겠습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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