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인 블로거 '디제'님은 프로야구 LG트윈스 팬임을 밝혀둡니다.

불펜 에이스 이동현이 7회말 무너지며 역전을 허용해 7:4로 벌어졌을 때, 4강의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 있는 기아를 상대로 목표 의식을 상실한 LG의 재역전을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8회초 3안타와 1볼넷, 상대 실책을 묶어 대거 4득점으로 8:7로 재역전해 승리했습니다.

오늘 승리의 수훈은 작은 이병규입니다. 1회초 무사 만루 기회에서 조인성과 이진영이 범타로 물러나며 자칫 무득점으로 이닝이 종료될 수 있었지만, 작은 이병규의 적시타로 선취 득점에 성공했습니다. 작은 이병규는 앞타자 이진영이 삼진 당한 변화구를 노려 쳐 초구에 2타점 적시타를 뽑아냈는데, 어제 두산전 4회초 솔로 홈런에 이어 다시 초구 공략이 적중했습니다.

작은 이병규는 7:4로 역전된 8회초 오늘 경기 세 번째 안타인 좌전 안타로 대역전극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만일 선두 타자 작은 이병규가 범타로 물러났다면, 어제 경기의 후유증으로 기아 윤석민의 등판이 어려웠다 해도 8회초 대량 득점과 역전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병규 ⓒ연합뉴스
초구, 2구 등 빠른 카운트에 승부하는 LG 타자들의 공격 성향과 달리 작은 이병규는 길게 카운트를 끌어가는 것이 장점이지만, 한편으로는 상대 배터리가 이를 이용해 초구와 2구에 스트라이트를 잡은 후, 스탠딩 삼진을 당하는 일도 잦았는데, 최근 작은 이병규는 이를 역이용해 초구를 과감히 공략해 좋은 타구를 만들어내며 드디어 시즌 타율 3할에 올라섰습니다. 포지션 라이벌인 빅5중에서 작은 이병규보다 타율이 좋은 선수는 이진영 밖에 없으며, 적은 타석 수에도 불구하고 홈런은 11개로 빅5중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한 이택근과 동일하니, 작은 이병규는 올 시즌 투수와 야수를 통틀어 피 말리는 포지션 경쟁을 뚫고 성장한 LG의 최대 수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성훈이 살아났습니다. 넥센과의 주말 3연전에서 결장한 후, 오랜만의 선발 출장이었던 어제 두산전에서 빗맞은 행운의 안타로 타격감을 되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정성훈은 4타수 3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는데, 안타보다 더욱 소중했던 것은 8회초 무사 2루에서 침착하게 볼넷으로 출루하며 대량 득점의 발판을 마련한 것입니다.

달아오른 기아타선을 상대로 2이닝을 퍼펙트로 틀어막으며 경기를 마무리하고 승리를 챙긴 김광수도 훌륭했습니다. 최근 이동현의 구위가 저하되고 오카모토가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중간과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등판하면서도 오히려 구속과 구위가 절정에 달해 불펜 에이스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모습입니다. 김광수는 최근 5경기에서 6.2이닝 무실점 호투로 1승 2세이브를 챙겼는데, 작년 시즌 선발 투수로 매우 불안했었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입니다.

선발로 등판해 개인 최다 이닝(5.1이닝)과 최다 탈삼진(10개)를 기록한 박현준은 만족과 아쉬움을 동시에 남겼습니다. 무려 10개의 탈삼진으로 상대 타자들을 압도했지만, 5개의 피안타 중 4개를 2개씩 연속으로 허용하며 3실점한 것이 선발승 요건을 날린 원인이었습니다. 그것도 홈런과 2루타 등 장타에서 비롯된 실점이라는 사실을 복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2회말 김상현을 상대로 초구에 몸쪽 공이 김상현의 머리 쪽으로 향하자 김상현보다 박현준이 더욱 놀라며 볼카운트가 0-3로 몰린 끝에 1-3에서 우월 2점 홈런을 허용했는데, 원정 경기이며 상대 타자가 선배라는 점에서 당황한 것이겠지만, 타자가 맞은 것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머리를 향해 던진 것도 아니니 뻔뻔스럽게 자기 페이스대로 투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박현준 본인이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키는 선발 보직에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으니, 내년 시즌을 바라보고 투구수를 늘리며 확실한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합니다.

우려스러운 것은 역시 이동현의 부진입니다. 4:3으로 앞선 7회말 등판한 이동현은 4타자를 상대로 2개의 안타와 자신의 실책으로 2실점(비자책)했습니다. 1사 1, 3루에서 이동현을 마운드에 올린 것은 이현곤을 삼진이나 병살타, 혹은 내야 뜬공으로 압도하며 동점을 허용하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이동현은 이현곤에게 큼지막한 우익수 희생 플라이로 동점을 허용했고, 이용규에게는 13구 승부 끝에 실책으로 출루시키며 역전의 화근을 제공했습니다. 만일 이동현의 구위가 정상이었다면 이현곤의 타구가 그처럼 멀리 나가지 않았을 것이며, 이용규에게도 7개의 파울 타구로 커트를 당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다리 부상을 입은 지난 주 토요일 넥센전을 전후로 이동현의 구위와 구속이 상당히 저하되었는데, 부진의 원인이 피로든 부상이든 간에, 2군으로 내려 휴식을 부여하는 것이 내년 시즌을 위해 바람직할 것입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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