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생 다함께', 전국학생행진 등 전국 대학생 단체 소속 회원들이 2009년 3월 세종로 정부청사 앞에서 '청년실업 해결! 1만인 선언, 1만인 행동' 기자회견을 가진 후 등록금 인하와 실업문제 해결 등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시 시작된 장마. 잠깐 비 그친 틈에 우산도 없이 나갔는데, 또 비가 쏟아진다. 이젠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숨고르길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한결이에요. 헤~ 오랜만이죠?”

학원에 3년을 꽉 채워 다녔던 그래서 정이 함빡 들어버린, 올해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제자다.

“쳇! 연락도 없더니만? 살아는 있었구만?” 짐짓 부풀어 오른 반가움은 숨긴 채 이러고 만다.

“에이 샘두우! 왜 그러세요오? 이렇게 전화도 드리잖아요오.” 애교 담뿍 담은 목소리다.

“그래 방학도 다 끝나가는데 뭐하느라 바빠서 이제야 전화를 했을까나?”

“헤헤, 제가 원래 쫌 바쁘잖아요.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얼마나 바쁜데요?”

“학생이니까 공부는 당연히 해야하는 거고, 대학생이니까 용돈 벌어 쓰는 게 상식이지, 바쁜 척 하기는~!”

“아니에요, 전 등록금이며 생활비 제가 다 벌어서 다녀요. 방학동안 광명시에서 아파트 짓고 있어요. H아파트. 제가 아파트를 짓는다니까요? 낼까지 해요.”

아차, 그랬었다. 그 아이는 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학교에서 알바를 하며 용돈을 벌어 쓰던 아이였다. 까만 얼굴에 늘 웃고 다녀 이만 하얗게 드러나던 성격 좋은 아이. 언제가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지금은 아버지와 살고 있으며, 어느 날 가출한 여동생이야길 하며 커다란 눈에서 눈물 뚝뚝 떨구었을 때 같이 울고 말았던 일들이 스쳐갔다.

여자 친구 사귈 시간도 없다는 그 아이는 곧 개강해서 지방에 있는 학교로 내려가는데, 자주 못 올라오지만 올라오면 연락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어두워졌다. 이제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한 건데, 온전히 홀로 올라야 하는데, 올라도 올라도 안착할 곳이 없으면 어쩌나.

지난 주 방영된 MBC 스페셜 ‘미니멈 청춘’이 생각났다. 구직자, 아르바이트생, 백수 등 대한민국 15세~39세 청년이면 누구든 가입할 수 있는 국내 최초 세대별 노조 ‘청년유니온’의 활동을 두 차례에 걸쳐 다룬 다큐멘터리. 최저임금을 받고 최소한의 삶을 사는 88만원 세대의 꿈과 갈등을 조명했다.

미니멈 청춘, ‘최소한’의 삶에선 ‘사랑’도 불가능하다 했다. 남자친구가 없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20대의 청춘은 이렇게 대답했다. “잠깐 사귄 적이 있는데, 휴대폰 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아, 나에겐 연애가 사치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헤어졌죠 뭐...” 아르바이트로 받는 최저임금에는 데이트비용이 있을 수 없었다. 1988년에 신경림 시인은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가난한 사랑 노래’를 썼는데,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등록금을 버느라 사랑할 시간이 없는, 옥탑방 월세를 내야해서 휴대폰 요금을 감당할 수 없는, 그 ‘이웃의 한 젊은이’들은 2010년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대학생 지식포털 캠퍼스몬과 함께 대학생 554명을 대상으로 이메일 설문조사를 한 결과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휴학했던 경험'이 있는 대학생은 4명 중 1명 수준인 26.9%였고, '등록금을 내기 위해 돈을 빌려본 경험'이 있는 대학생도 2명 중 1명 수준인 50.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등록금 천만 원 시대에 대학생 2명 중 1명은 빚을 지고, 대학을 졸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싼 등록금이 문제가 되자 정부에서도 학자금 대출 방안을 내놓고 최근 대출 금리를 인하한 바 있다.

▲ MBC뉴스 캡처
그런데 정부 보증의 학자금 대출마저도 불가능해진 대학생들이 생기게 됐다. 정부가 전국 345개 대학 중 하위 15%인 50개 부실 대학을 선정해 신입생들의 학자금 대출에 제한을 둘 방침이기 때문이다. 다음 주에 명단이 발표되는데, 이 대학들은 신입생 모집이 불리해질 것이다. 물론 교과부는 이를 대학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부실 운영은 대학의 잘못인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 몫이 됐다. 자취를 하며, 지방 대학에 다니는 어떤 대학생이 폭염 속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방학 내내 일했는데도 등록금이 부족해 대출을 받아야 한다면... 그런데 그 학교가 신용불량 50개 대학 중 하나라면... 그 학생이 계속 올라야할 사다리는 없어져버리고 만다.

반환점을 돈 MB정부의 청년 실업률은 최근 10년 만에 최악이라고 한다. 학자금 대출로 대학이라는 구간을 통과했다하더라도 그들에겐 ‘미니멈 청춘’이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청춘을 인생의 황금시대라 예찬했건만, 2010년을 살아가는 청춘에겐 시간당 최저임금 4110원에 종속된 미니멈 삶이 존재할 뿐인 것이다. 청춘! ‘靑’, ‘春’이 무색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