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성용 ⓒ연합뉴스
한마디로 '언빌리버블(Unbelievable)'했습니다. 기성용(셀틱)이 지난 22일 밤(한국 시각), 스코티쉬 프리미어리그 2라운드 세인트 미렌 전에서 통쾌한 오른발 중거리포로 스코틀랜드 진출 8개월 만에 데뷔골을 작렬시키며 홈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이날 후반 26분에 바람 카얄을 대신해 교체 투입됐던 기성용은 아크 정면에서 동료 패트릭 맥코트의 패스를 받아 한 번 볼을 건드린 뒤 오른발로 시원하게 슈팅을 날렸고, 이는 곧바로 골문 오른쪽 상단을 가르며 골로 연결됐습니다. 이 골로 팀은 승리에 완전히 쐐기를 박았고 리그 개막 후 2연승을 달리며 우승을 향한 순조로운 출발을 이어나갔습니다.

데뷔골을 넣고 그것도 자신의 전매특허인 오른발 중거리포로 팀의 승리를 결정짓는 골이어서 그 의미가 남달랐지만 기성용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습니다. '좀 웃었으면 어땠을까' 할 법도 하겠지만 그만큼 기성용이 마음고생을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닐 레넌 감독도 두 손 높이 치켜들어 박수를 쳤을 만큼 인상적인 골이었고, 어떻게 보면 이 골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주전 입지를 조금이라도 다져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속으로는 어느 정도 후련하게 생각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실 기성용이 셀틱에 진출했을 때 반응은 대단히 긍정적이었습니다. 수비적인 측면에서 다소 약점이 있다 할지라도 오히려 기성용의 공격적인 성향이 확실한 강점으로 부각되면서 스코틀랜드 리그에 잘 맞아 떨어질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셀틱의 영웅으로 주목받던 일본 미드필더 나카무라 슌스케를 뛰어넘는 선수가 될 것으로 기대되면서 첫 해부터 무서운 활약을 보여줄 것으로도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됐는지 기성용의 활약은 예상보다 더뎠습니다. 아니 활약이 더뎠다기보다는 이렇다 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데뷔전에서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 슈팅을 날리는 등 좋은 활약으로 '최우수 선수'에 선정됐지만 이 경기에서 당한 발목 부상 이후 기성용에게는 이렇다 할 출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감독은 "월드컵을 위해 일부러 쉬게 해주는 것이다. 월드컵 이후 새 시즌에는 꼭 많은 기회를 줄 것"이라면서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만, 나름대로 큰 기대를 걸고 스코틀랜드 무대에 뛰어들어 몸에 아무 문제없이 기다리고 있던 기성용 입장에서는 당연히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결장 기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대표팀 내에서도 '기량 저하 우려'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걱정도 나타났습니다. 본인은 멀쩡한데 주변에서 그런 여건도 만들어주지 않으니 당연히 답답함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월드컵 본선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전매 특허인 프리킥 능력을 앞세워 2도움을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했습니다. 이정수의 2골을 도운 날카로운 측면 프리킥은 한국의 월드컵 16강을 이끈 주요 무기로 떠올랐고 그만큼 기성용의 가치는 높아졌습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지만 약속했던 대로 레넌 감독은 기성용에게 서서히 기회를 줬고 프리 시즌에 주장 완장을 채우게 하면서 팀에 대한 책임감, 소속감을 갖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기성용은 주어진 기회를 적절하게 살려내면서 마침내 세인트 미렌 전에서 통쾌한 중거리골로 포문을 열면서 셀틱에서 느꼈던 그동안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날리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아직도 주전에 들기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이번 중거리포와 같은 꾸준한 활약이 계속 해서 이어진다면 기성용이라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셀틱의 새로운 간판으로 내세울 가능성은 여전히 충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 시즌 단 2라운드 만에 나온 기성용의 골은 상당히 의미 있었고, 앞으로 9개월 동안 이어질 시즌 대장정에서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골이었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그동안의 아쉬움을 훌훌 털고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 골이었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그는 새로운 동료 차두리의 가세에 든든함을 느끼면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차두리 '형'의 든든함을 바탕으로 심리적으로 더욱 편안한 가운데서 자신의 강점을 더욱 마음껏 발휘하는 기성용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래서 골을 넣은 뒤 무표정한 모습을 보였던 기성용이 아닌 FC 서울 시절 독특했던 캥거루 세레머니를 펼치는 기성용을 스코틀랜드 무대에서 더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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