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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가 요술방망이인가다시 돌아온 금융산업발전론, 삼성과 같은 방향 보는 정부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8.08.08 08:11

중국인들은 정말 대단하다. 중국인들이 발전시킨 모바일결제가 한국의 산업정책에까지 영향을 끼친 모양이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 속에 답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 참석해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작년 말 중국을 방문했을 때 거리의 작은 가게까지 확산된 모바일결제, 핀테크 산업을 보고 아주 놀랐다”고 했다. 실제 당시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이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모바일결제를 경험하는 장면을 비중있게 보도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말 중국 베이징 조어대 인근 한 현지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대사관 직원으로부터 중국 모바일 결제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느낀 이 놀라움은 위기감과 직결됐던 것 같다. 과거 참여정부가 동북아금융허브론을 추진한 배경에는 샌드위치 위기론과 같은 현실인식이 있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은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이다. 2007년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 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다.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고생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게 한반도의 위치다”라고 말한 것이다.

당시 중국이 곧 산업 기술이란 측면에서 한국을 따라잡게 되리라는 예상이 많았다. 특히 삼성을 중심으로 반도체,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등 산업이 중국이나 인도, 동남아로 옮겨갈 거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그러니 금융 및 서비스산업을 키우고 선도하자는 게 다들 하는 얘기였다. 2005년 6월 진행된 국민경제자문회의 1차 금융허브회의 내용을 보면 중국 상하이의 추격 속도가 빠른 점을 감안해 금융허브 정책의 추진 속도를 높여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 3대 금융허브를 만들자는 논의 등을 한 것으로 나온다.

중국의 금융산업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전히 관치금융 중심이고 주식과 채권시장도 미성숙한 상태며 ‘시한폭탄’이라고까지 묘사되는 그림자금융 등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는 거다. 이런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중국의 체제 자체와 연동돼 있기 때문에 해소하기 힘든 한계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2001년 WTO 가입 이후 중국이 세계체제에 본격적으로 편입되고 장기적인 금융개혁에 돌입하면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참여정부 때만 해도 열심히 잘만 하면 따라잡힐 일이 없을 것 같았고 금융허브론의 그림대로 동시다발적 FTA체결이 추진됐다. 이런 분위기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려 했던 메가뱅크론과 산업은행 민영화는 사실상 참여정부 금융산업발전론의 확장판격이었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 때문에 스텝이 꼬이자 금융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묘사하는 사람들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제조업으로의 회귀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는 곧 첨단산업으로의 산업구조 고도화 논리로 이어졌다. 이게 ‘창조경제’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어느 정도 수습된 지금 핀테크는 금융을 위기에서 구원하는 신통한 요술방망이처럼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목격하고 경험한 게 이것이다. 첨단기술이 금융을 견인할 수 있다고 한다면, 중국이 금융산업에서 한국을 완전히 앞지르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느껴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판도라를 보고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게 됐다는 식의 주장이 사실과 맞지 않는 것처럼, 단지 중국 식당에서의 경험으로 핀테크의 세상에 새롭게 눈을 떴다고 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그렇다기보다는 애초의 계획을 앞당기는 어떤 기폭제가 된 것은 아닌지 헤아려볼만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후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 참석해 핀테크 기업 페이콕의 'QR'코드를 이용한 결제 기술을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노리는 김진표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던 국정기획자문위가 지난해 만든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는 국정과제의 3단계 이행계획이 서술돼있다. 내용을 옮겨보면 이렇다. 2017년 5월부터 2018까지는 혁신기로 적폐청산, 반부패 권력기관 개혁, 경제민주화 등을 이행하는 게 핵심이다. 시급한 민생과제는 정부차원에서 추진이 가능한 부분부터 추진하고 중장기 과제는 시범사업 등을 통해 본사업을 마련하는 걸로 돼있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는 도약기로서 일자리, 4차 산업혁명, 사회적 경제, 국민안전, 자치분권, 조세 재정개혁, 국방개혁 등 성과를 본격 창출하도록 돼있다. 2021년부터 2022년 5월까지는 안정기로서 개혁과 공약 이행을 완수하고 주요 정책을 입법 완료하는 게 목표이다.

이 로드맵에 비추어보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 정부의 정책적 변화가 이미 예정된 바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경우 구체적인 정책과제로 명시된 바는 없지만 현재 논의의 맥락상 도약기에서 수행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고려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제조업에서 위기를 체감하는 대기업들이 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물론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대주주 자격에 제한을 두고 대주주를 상대로 거래를 할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둔다고 하지만 시민단체 등은 소유 자체를 제한하지 않으면 어떤 장치든 대기업들이 피해갈 방법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산업과 함께 대기업들의 새로운 투자처로 늘 거론되는 게 의료 분야이다. 정부는 지난달 19일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시민단체 등은 이 방안에 포함된 의료기술지주회사 설립안에 대해 영리병원 허용과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의료기기 안전검증 절차 간소화 등 규제완화도 의료 참사를 예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복제약 제품 출시에 따른 오리지날 의약품 약가의 강제 인하 규정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이 문제의 본질을 보여준다. 이재용 부회장의 요구는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서 성과를 모색하고자 하는 삼성의 숙원을 언급한 것이면서 동시에 경영권 승계와 연관된 바이오로직스 상장 문제와도 간접적으로 연결고리를 가진다.

이런 상황이라면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 주 52시간 근무제의 사실상 유예,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시민단체 비판, 인도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이재용 부회장 면담 등이 의료 및 금융 분야의 규제완화와 하나의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최근 화제가 된 청와대가 삼성에 ‘구걸’하지 말라며 김동연 부총리를 타박했다는 한겨레의 보도는 본질이 아닐 수 있다.

구걸을 하든지 거래를 하든지 또는 그냥 애로사항을 청취하든지 뭐든지 간에 그것은 김동연 부총리가 아니라 책상물림(?) 개혁가들을 제치고 관료의 손을 들어 준 정권 차원의 문제이다. 좀 더 분명히 하자면 이 사태의 진원지는 어느 측근이나 세력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직원식당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관계자들과 오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우클릭 좀 했다는 이유로 ‘촛불정신’을 중요시 하는 개혁적 정부를 재벌과 존재적 한통속으로 묘사하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 이런 저런 사회경제적 맥락을 고려할 때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규제완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둑에서 수순이 중요한 것처럼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정치적 맥락을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게 또 정치이다.

앞서 국정과제 3단계 이행계획을 보면 도약기의 성과 창출은 ‘각계의 참여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루도록 돼있다. 적어도 산업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노동계와의 대화와 합의는 필수불가결하다. 산업구조의 변화가 노동유연성으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의 고용 및 처우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능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규제완화와 노동정책의 후퇴가 사회적 합의의 결과였다면 평가는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이 정부가 이미 지방선거 전에 없애버렸다.

좌파가 아닌 정부에 좌파가 되기를 요구하자는 게 아니다(물론 가끔은 그런 일도 있어야 한다). 정권이 스스로 설계한 정책 밑그림이 훼손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정권을 운영하다보면 밑그림이 훼손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스스로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것인가?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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