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견고한 신분의 벽. 반상의 법도를 어기면 강상죄로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양반과 노비가 사랑을 할 수는 없다. 조선을 살리겠다고 분연히 일어서 '불꽃처럼 살다가겠다'는 애신에게도 이 반상의 법도를 단숨에 뛰어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스터 션샤인;
붉은 바람개비와 스트레인저, 수많은 기대감들 속에서 이들의 운명은?

그 말을 꺼내기 전까지 두 사람의 운명은 희망으로 가득해 보였다. 혼사 이야기는 접어두더라도 함께 의병 활동을 하면서 사랑도 가꿀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꽁꽁 언 강바닥에서 유진은 자신의 과거와 신분을 이야기했다.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인이 되었던 유진의 삶. 처참하고 아프고 위대해 보이기까지 한 사랑은 하지만 거기까지다.

조선 최고 명문가 애기씨가 노비의 아들과 사랑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자신만이 아닌 집안을 생각해야 하는 애신에게 이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유진의 고백에 힘이 빠져 주저앉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자 일어서며 한 "신세졌소"라는 말은 참 차갑게 다가온다.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말이다. '객'이기에 가능한 경계의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애신에게도 반상의 법도는 넘어서기 힘든 벽처럼 다가온다. 조선을 위해서도 아니라 오직 애신을 위해 그녀가 하고자 하는 일을 도왔던 유진. 유진도 그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이기 때문이다. 예상은 했지만 그런 결과에 유쾌할 수 없는 것 역시 당연하다. 조선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굳힐 수밖에 없는 것 역시 애신 때문이다.

글로리 호텔에도 작지만 큰 변화가 일었다. 여급 귀단이 유진의 방을 뒤지다 쿠도 히나에게 걸리고 말았다. 자신을 속이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손님방을 뒤지는 행위를 묵과할 수 없어 내보내고 새로운 여급이 들어왔다. 유진에게 임금의 예치증서를 준 도미의 누이다.

사망한 미국인의 집 여종으로 있던 그녀를 구동매는 알아봤다. 애기보를 동생 조끼로 만들어주려 빨랫줄에 너는 모습을 보며 동매는 모든 상황을 조합했다. 이미 예치증서는 임금의 손으로 들어갔고, 그 연결되는 과정 속에 그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추측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에 와서 동매가 이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자신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자들이 점점 준다는 사실이다. 의병과 누군가를 도운 자들은 자신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다. 도미 누이 역시 동매에게 끌려가며 구원을 요청한 것은 다름 아닌 애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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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신은 동매에게 "이런 순간으로만 사는가?"라며 뺨을 때리고 "이런 순간도 살기 바라네"라고 분노했다. 애신이 동매를 목격한 모습은 같은 민족을 수탈하는 장면이 전부였다. 어린 아이를 끌고 가는 모습은 참을 수 없었다. 저잣거리에서 천하의 구동매가 뺨을 맞는 순간도 있을 수 있음을 알라는 애신의 분노에 동매는 행복하다.

제물포에서는 자신에게 죽으라 하더니, 이제는 자신에게 살라고 한다며 행복해 한다. 비록 뺨이지만 애신과 접촉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동매는 그렇게 자신의 사랑을 채워가는 남자일 뿐이었다. 단 한 번도 그리고 앞으로도 가질 수 없는 여인에 대한 동매의 짝사랑은 이제 의병으로 함께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할 시점이다.

애신은 아이를 구해준 후 그 아이가 누구를 위해 일을 해줬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는 말하지 않지만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격 연습을 하는 스승의 집에서 무릎을 꿇은 장 포수는 유진이 해준 많은 일들을 전해주었다. 의병일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것과는 너무 다르다.

장 포수에게 애신은 제자이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애기씨이기도 하다. 애신의 할아버지인 고 대감의 지원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고 대감의 두 아들 모두 의병으로 살다 사망했다. 그리고 그 둘째 아들의 딸이 바로 애신이다. 절대 함부로 할 수도 없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애신의 목숨은 지켜야 하는 것이 우선일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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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신이 유진을 좋아한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에 남아 있는 반상의 법도를 어길 수는 없다. 유진이 외부대신을 제거하고, 예치증서를 임금에게 돌려주는 등 혁혁한 공헌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조선을 위한 일이 아니라 애신 때문임을 장 포수는 잘 알고 있다.

정승만 열 명을 배출한 최고 명문가에 구휼에 앞장선 고 대감은 임금도 인정하고 백성들도 존경하는 존재다. 애신을 모든 사람들이 알아보고 존중해주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그 집안에 남겨진 마지막 핏줄은 애신이다. 아들과 며느리 모두 의병 활동을 하다 숨져 애신만은 다른 애기씨들처럼 편하게 살기를 원했던 할아버지는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이라도 지킬 수 있게 해 달라고 장 포수에게 맡겼던 것이다.

불꽃처럼 살다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애신이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강상죄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이 죄가 사라지는 날 두 사람의 사랑이 완성될 수도 있겠지만 그 여정이 결코 쉬울 리 없다. 애신이 남장을 하고 저격수가 된 사실을 유진과 동매는 알게 되었다

희성은 애신이 맞춘 옷을 자신의 몸에 맞춰 입고 거리를 거닐다 유진과 동매에 붙잡히고 말았다. 두 사람은 명확하게 알고 있는 그 사실, 희성도 이제는 명확해졌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의병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희성에게도 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는 의미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내를 좋아하고 있지만 그녀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준비가 그에게도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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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의 잦은 만남, 여전히 불편한 그들의 관계 속에도 애신은 존재한다. 그런 이 남자들의 모습을 보며 '바보, 등신, 쪼다'라고 읊조리는 쿠도 히나는 씁쓸할 뿐이다.

임금이 글로리 호텔을 찾아 유진에게 대한제국 무관학교 교관 자리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한다. 대한제국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일을 유진에게 청하는 임금과 나라가 아닌 한 사람을 위한 행동이라며 거절하는 그에게 조선은 그저 9살 어린 나이에 떠나며 각인된 상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붉은 바람개비(붉은 실이 운명을 의미하듯 김은숙 작가가 좋아하는 매개물)를 만드는 애신은 유진을 잊지 못한다. 결코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쉬이 잊을 수 없는 남자. 대업을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버릴 준비가 되었지만, 그 '러브'라는 것 앞에서 한없이 흔들리는 애신은 힘겹기만 하다. 애신이 몰래 가져다 놓은 뮤직박스. 그 서글픈 노래는 유진에게는 마지막 인사로 다가왔다.

유진이 가진 기대-내가 달라졌다는 기대. 조선이 달라졌다는 기대. 한 여인 앞에서 나란히 걷고 싶다는 기대- 온갖 기대를 품었지만 그 솔직한 진심에 조선을 떠나려 한다는 유진의 편지는 그래서 더 서글프다. 애증의 존재였던 조선에서 우연히 마주한 불꽃같은 여인. 그 지독한 추억만 남기고 떠나려는 유진에게 조선은 다시 서글픈 기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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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찾은 황은산. 맥주를 마시며 하룻밤 재워 달라는 유진에게 투박스럽게 이야기를 건네던 은산은 마지막 인사를 하는 유진에게 방을 내어준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운명을 바꿔준 인물 은산이 은혜를 모두 갚았다는 말에 소리 없이 오열하는 그는 어쩌면 그런 인간다움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종의 아들로 태어나 단 한 번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본 적 없던 유진에게 은산의 그 투박한 정은 단단한 마음까지 뒤흔들 정도였다. 학당에서 영어를 배우면서도 눈이 흩날리는 모습만 바라보는 애신은 좀처럼 유진을 잊지 못한다. 영어 단어들 속에서 미스터와 션샤인을 배운 애신은 '새드엔딩'을 떠올린다.

이방인인 스트레인저라는 단어까지 들으며 'S'에는 엄청 슬픈 단어들만 있다는 말에 '스노우, 선샤인, 스타' 등 좋은 단어들도 많다는 말에 애신이 선택할 수 있는 단어는 '선샤인'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신식 등이 켜지던 날 거사를 치른 후 만난 사내가 바로 유진이었기 때문이다.

낯선 이방인과 햇살, 전차가 지나가는 그 길에 멈춰서 유진을 생각하는 애신의 눈에는 눈물만 가득했다. 돌아가던 길에 그런 애신의 모습을 본 유진. 이들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그저 사랑하는 마음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지독한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에게 미래는 그저 '새드엔딩'만 존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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