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미디어스

Updated 2018.10.15 월 18:07
상단여백
HOME 미디어비평 톺아보기
‘신과함께-인과 연’, 장중한 서사의 각도를 돌린 쿠키 영상, 아버지의 이름으로?[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8.08.04 23:57

*이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천 년을 두고 이어온 인연, 아니 악연의 대서사였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등장한 쿠키 영상이, 지금까지 보아온 영화에 대한 재해석을 요구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익숙하다. 그렇다면 지난 1편은 '어머니의 이름으로?', 그렇다. <신과 함께> 1편에 이은 2편이 '무람없이' 우리의 정서에 깃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들 두 편의 영화가 연이어 말하고자 하는 전통적 의식과 정서에 힘입은 바 크다. 그리고 이는 <신과 함께>가 동양권에서 공감대를 얻으며 인기를 끌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웅장한 한 편의 <전설의 고향>을 보고 나온 듯하다. 이렇게 말하면 조롱이라고?, 아니다. 한반도 전 지역에 걸쳐 전해지는 설화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전설의 고향>은 1977년 이래 1989년까지 장장 12년 동안 이어진 스테디셀러였다. 그리고 사라진 듯했던 이 시리즈는 1996년부터 해마다 여름이면 찾아오는 반가운 납량특집이 되었다. 올 여름도 어디 <전설의 고향>같은 드라마 안 하나 기다리는 시청자들이 있을 것이다. 한 시리즈가 이렇게 꾸준히 끈질기게 사랑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시리즈의 저력이 입증된다. 

웅장한 전설의 고향?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 스틸 이미지

<전설의 고향>하면 귀신이 연상되지만, 사실 여기서 방점이 찍혀야 하는 건 귀신이 아니라 ‘죽음’이다. <전설의 고향> 속 많은 이야기들이 귀신의 등장을 불사할 만큼 죽음의 경계조차 허무는 '인연'에 대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흔히 중생(衆生)이라고 한다. 물론 폭넓게는 인간을 포함한 뭇 생명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들 중생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자유의지가 없다니? 서양의 근대 철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당연히 반발할 말이지만, 불교에서의 '인간'은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천상, 성문, 연각, 보살, 부처의 10가지, 다시 분류하면 33가지, 거기서 다시 세밀하게 분류되면 3000가지의 세계 중에 '하치'에 속하는 세계이다. 이들은 아직 삶에 초연하지 못하고 자신의 업력, 이른바 업보에 휘둘려 '고해'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 고해는 대부분 탄생, 즉 어미와 아비와의 인연으로부터 시작된다. 물론 <신과 함께-인과 연>에서 보여지듯이 그 인연은 거슬러 전생의 업보로 이어지기도 한다. 

<신과 함께-죄와 벌>은 저승 세계의 귀인이 된 형 김자홍(차태현 분)의 저승 재판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김자홍은 어쩌면 떡밥에 불과했다. 그의 재판이 진행되는 곳곳마다 등장하는 악귀인 동생 수홍(김동욱 분)의 억울한 죽음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다. 결국 자홍도 수홍도 불쌍한 중생이 될 수밖에 없는, 이들 형제와 가난한 어미의 슬픈 사연으로 귀결된다. 말 못하는 장애를 가진, 그래서 두 아이를 거두기엔 역부족이었던 어미가 없었다면 가족을 부양하며 자신을 희생하며 살았던 자홍의 삶도, 여덟 번의 재수 끝에 사시 1차를 패스했으나 결국 군 의문사한 수홍의 죽음도 그리 서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의 희생정신도, 군의문사란 억울한 죽음도 모성과 그 모성을 거스르지 못한, 아니 않는 형제의 '효'라는 전통적 관계의 블랙홀 속으로 흡수해 버린다. 

그리하여 결국 김자홍이라는 인물의 구구절절한 삶도, 김수홍이라는 인물의 선량함도 어머니의 눈물 앞에 곡하는 '신파'의 정서로 휘몰아친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때론 귀신으로, 때론 억울한 죽음으로 저승조차 가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돌다 인간 세상의 일이 된 <전설의 고향> 속 서사 구조와 세계관,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고유의 전설, 민담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전승한다. 즉,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친숙하고 이물감 없는 정서로 이것들이 받아들여진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들의 업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 스틸 이미지

그렇다면 2편 <신과 함께-인과 연>은 어떨까? 눈물로 흥건한 신파로 귀결됐던 1편과 달리, 2편의 서사는 장중하다. 환생을 소망했던 세 명의 저승 차사, 이제 그들은 한 명만 더 환생을 시키면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자신들의 환생'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유독 세 명 중 강림(하정우 분)은 자신의 차사직까지 걸며 1편에서 악귀였던 김수홍의 환생에 적극적이다. 

영화는 1편과 마찬가지로 저승에서의 재판 과정과, 그 과정에 기반이 되는 현생의 서사가 엇물리면서 이어진다. 아마도 이번에도 천만을 넘을 것이 예상되는 <신과 함께> 시리즈의 성공적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지점이라면 바로 이 엇물리는 '저승'과 '현생'의 이물감 없는 절묘한 콜라보이다. 

강림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김수홍의 재판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과정과, 성주신의 훼방을 '거'하고 허춘삼 노인의 목숨을 거두고자 현생으로 간 해원맥(주지훈 분)과 덕춘(김향기 분)의 고전을 면치 못하는 해프닝이 이어진다. 그런 가운데 허춘삼 노인의 생명을 성주신이 원하는 시기까지 연장시키는 대신 해원맥과 덕춘은 자신들의 잃어버린 기억을 '딜'을 통해 한 줄기 씩 흘러나오는 과거와, 저승 재판 과정에서 영리한 수홍의 유도 심문을 통해 삐져나오는 강림의 탄식어린 상흔은 관객들로 하여금 '하나의 비극'을 꿰어 맞추기에 충분했다. 

영화 속 주지훈이 분한 해원맥의 비극적 서사는 관객들의 마음을 빼앗지만, 과연 해원맥의 비극에 강림의 인간적인 정서가 드리워져 있지 않다면 그토록 극적일 수 있었을까? 그렇게 영화는 두 남자의 운명을 씨실과 날실로 드라마틱하게 직조한다.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 스틸 이미지

천년 전 악연으로 이어진 것이 분명한 이들이 과연 어느 곳 어느 장소에서 악연으로 조우하여 그 인연의 끝을 다하게 할 것인가란 조바심이, 관객을 롤러코스터와 같은 저승 재판의 속도감과 함께 몰아친다. 그리고 당연하게 예상했던 비극, 하지만 예상했음에도 여전히 그 세 사람의 물고 물리는 악연은 처절했다. 

하지만 영화는 영리했다. <전설의 고향> 속 비극으로 마무리 되었던 그 악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업보'의 결자해지로 향한다. 전설과 민담 그리고 그것을 관통했던 불교적 세계관의 고갱이는 바로 '결자해지'에 있다.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자신을 얽어매었던 '인'과 '연'의 사슬을 스스로 풀어내야만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승격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을 해결하지 못한 귀신은 구천을 떠돌 수밖에 없듯이, 천년 전의 악연의 사슬을 풀어내지 못한 세 차사는 천년 동안 환생의 업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영화는 설득해낸다. 

오랜 시간 인간과 인간의 터전을 지켜보아왔던 성주신은 정의한다. 인간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나쁜 상황이 있을 뿐이라고. 이 현대적인 해석이 고스란히 업의 결자해지로 돌아온다. 그래서, 서로의 악연은 이해로, 그리고 강림의 죄는 49번 째 환생의 사슬을 풀어냄으로써 스스로 풀어낸다. 영화는 우리 장례의식에 있어 49일간의 이승에서의 돌아봄을 세 저승 차사의 49명의 '환생 업무'로 기막히게 치환해냄은 물론, 서로의 악연을 넘어선 인간의 생명 살상에 대한 대가로서의 '그들이 지난 천 년간의 저승 차사직'을 이해시켜낸다. 제 아무리 나쁜 상황이라도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는 전래의 '인간중심주의'에의 환기이다. 

아버지의 업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 스틸 이미지

그런데, 그렇게 장대하게 마무리된 영화는 '쿠키 영상'을 통해 이 장구한 서사의 각도를 튼다. 이 모든 천년의 서사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새롭게 각인되는 것이다. 1편의 <죄와 벌>이 결국 어머니의 눈물 앞에서 용해되었듯이, 2편의 세 차사의 천년에 얽힌 연원과 악연의 끝에서 만난 건 아버지이다. 결국, <신과 함께> 두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많은 인과 연의 근원이 '가족'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아버지는 달랐다. 1편의 어머니를 상징하는 것은 '눈물'이었다. 아들들은 어머니의 '눈물'에 그들의 삶을 던졌다. 반면, 2편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아버지의 아들로 거듭나기 위해 자신들을 던진다. 그래서 비겁했고 비열했으며, 심지어 누군가의 목숨을 거두는 데 거침이 없었다, 가부장의 세계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역사의 속살을 그렇게 영화는 드러낸다. 어머니의 눈물이 화해와 평화로 귀결되었다면, 아버지의 존재는 갈등과 경쟁을 부추겼다.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세계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 세계는 관통하는, 아니 그 용서할 길 없는 피비린내 나는 피의 세계의 가능성은 '또 하나의 어머니' 덕춘이 연다.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계는 만나고 엇갈리며, 결국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리고 어머니의 '희생'으로 해소된다.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 스틸 이미지

그 방식은 눈물로 바다를 이룬 1편의 어머니의 세계와는 다르다. 천년의 시간을 들여, 아들이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업보를 풀어내기를 기다려주고, 기꺼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아버지의 방식은 한편에서 보면, 마치 벼랑 아래로 사자 새끼를 내던져버리는 아비 사자와 같은 서늘함이 있다. 천년을 내내 기억을 잃지 않고 고통스러워하며 49번째의 환생을 향해 묵묵히 걸어왔을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는 그날, 천년 전 자신의 부대를 잃지 않기 위해 기꺼이 큰아들을 전쟁터의 선봉에 세우지 않았던 그 아비와 그리 다르지 않다. 아비의 세계, 아비의 업 그리고 아이러니한 아비의 사랑이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톺아보기 http://5252-jh.tistory.com

meditator  5252-jh@hanmail.net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ditator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2길 22 가든빌딩 608호 (우) 07238  |  대표전화 : 02-734-9500  |  팩스 : 02-734-2299
등록번호 : 서울 아 00441  |  등록일 : 2007년 10월 1일  |  발행인 : 안현우  |  편집인 : 안현우  |  개인정보책임자 : 윤희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희상 팀장
Copyright © 2011-2018 미디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mediaus.co.kr

ND소프트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