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지난 1일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SBS 월화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촬영 스태프의 사인이 '내인성 뇌출혈'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제작진은 유가족에 애도를 표했다.

SBS 관계자는 3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고인의 사인이 '내인성 뇌출혈'로 나왔다고 밝혔다. 고인은 카메라 포커스풀러로 일하던 촬영 스태프로, 포커스풀러는 촬영감독이 카메라에 눈을 대고 촬영할 때 렌즈의 초점을 잡는 역할을 한다.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제작진은 4일 공식 홈페이지에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라는 글을 게재하고 고인의 유가족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제작진은 "SBS와 제작진은 지난 1일 고인의 사망 소식을 가족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며 "고인은 A팀 카메라 스태프로서,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에너지로 현장에 강력한 활력을 제공해 왔으며, 이 에너지는 좋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제작 현장은 현재 소중한 동료를 잃은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고 알렸다.

제작진은 "SBS드라마본부와 제작진은 유가족께 거듭 깊은 위로를 전한다"며 "고인과 함께 했던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를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 하고 제작환경 개선에도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을 약속 드린다"고 밝혔다.

고인의 사인과는 별개로 초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방송 제작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방송업의 경우 주 최대 근로시간이 68시간으로 변경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바뀐 게 없다"는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SBS본부의 7월 18일자 노보에 따르면 한 주에 100시간이 넘는 노동을 한 조합원이 있을 정도로 복수의 방송 현장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호소하고 있다. SBS 뿐만아니라 MBC, tvN 등 타 방송사에서도 이와 같은 현장 노동자들의 제보가 잇따르긴 마찬가지다. (▶관련기사 : 드라마 제작스탭의 절규, "염전 노예보다 못해")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3일 성명을 통해 "서른 살 청년 스태프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폭염 속 연속 5일 76시간의 장시간 촬영이 진행됐고, 마지막날 밤 1시 일을 마치고 웃으며 동료들과 헤어져 귀가한 후 그는 다시 촬영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했다"면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방송제작현장의 끔찍한 노동환경"이라고 강조했다.

드라마 촬영 현장 (사진=연합뉴스)

방송스태프지부는 성명에서 제보를 통해 입수한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팀의 단체카톡방 업무지시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단체카톡방 내용에는 촬영이 늦게 끝날 예정으로 귀가가 불투명해 사우나를 예약한다거나, 여벌옷을 챙겨와 달라는 지시 등이 있었다.

방송스태프지부는 "사우나에서 쪽잠을 자고, 귀가마저 불투명해 여벌옷을 챙겨 와야 하는 상황이 어쩌다 있는 예외적인 상황은 아니다"며 "드라마 제작 현실을 개선시킬 대책마련에 늑장을 부리고 있는 방송사와 제작사 그리고 정부의 안이함과 비인간적인 태도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지난 7월부터 주 최대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전환되고, 방송업도 특례업종에서 제외돼 주 최대 노동시간이 68시간으로 바꼈지만 방송 제작 현장은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나 방송 제작 스태프들의 상당수는 프리랜서, 비정규직으로 구성돼 있어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정부 방침에 따라 법 위반시 단속 및 처벌 적용기간이 6개월로 늘어나면서 신고마저도 별 소용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방송스태프지부는 "현장의 스태프들은 개인적으로 신고도 해보지만 노동청에서는 처벌유예기간이라며, 당신은 프리랜서라며 아무런 대응도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며 "노동자들의 절규를 방송사와 제작사도 관련기관도 외면하고 있는 동안 동료들은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죽을 만큼 일하면 결국 죽는다"고 호소했다.

방송스태프지부는 방송사와 제작사, 정부에 ▲68시간 노동시간 단축 시행 ▲계속되는 폭염의 피해가 없도록 생수 비치, 휴게시간 보장 등 안전한 현장 환경과 대비책 마련 ▲정부 차원의 대대적 근로감독 시행 및 방송계 불공정 관행 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고 이한빛 PD의 유지를 이어 방송 제작환경 개선을 위해 설립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도 2일 성명을 내어 "25일 14시간 30분, 26일 13시간 10분, 27일 14시간 30분, 28일 17시간 50분, 29일 14시간. 방송사가 밝힌 청년 노동자의 1주 노동시간은 75시간 20분"이라며 "'이렇게 촬영하다 죽을 것 같아요', '잠도 못자고 매일 촬영하고 있어요', '4시간 이상 재워 주세요', '아침밥 주세요', '염전노예가 된 기분입니다', '인권이라고는 전혀 없는 곳'... 이 이야기는 70년대 전태일 열사가 폭로한 청계천 시다 노동자들의 삶이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매일 보고 있는 드라마를 제작하는 스태프들의 하소연"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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