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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시선] ‘행복의 온도’를 결정하는 확실한 처방, 소확행에 담긴 행복론[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8.08.03 16:01

2018년을 상징할 단어들이 여러 개 있겠지만 그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소확행' 아닐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등장에는 더는 성장이나 발전 중심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 대한민국 사회가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대기업 중심의 일자리 정책에 치중했지만 여전히 취업자 중 대기업에 다니는 비율은 3%에 불과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영역 파괴로 양극화만 가속시켰다. 그래서일까? 최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청년층의 비율이 13.2%에 달했다. 작년 동월에 비해 3만 명이나 증가한 추세다. 특히 시간제(아르바이트) 등 1년 이하의 일자리를 선택한 청년들이 작년에 비해 0.2% 증가했다. 이른바 프리터족(free arbeiter)과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 증가 추세임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런 새로운 직업적 선택에 맞물려 등장한 신조어가 '소확행'이다. <다큐 시선>은 이 신조어에 걸맞게 삶의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는 젊은이들을 만난다. 

농촌의 개미 부인, 송주희

EBS 1TV <다큐 시선> ‘행복의 온도’ 편

강원도 화천군 오음리 병풍산이 둘러쳐진 길을 바쁘게 자전거로 달려가는 여성이 있다. 송임수 씨네 막내딸 송주희(30) 씨,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도 여전히 평생 농사꾼 부모님 앞에서는 '베짱이'가 되고 마는 이제 5년차 농사꾼. 하지만 병풍산을 마주하고 늦을까 조바심을 내며 달려가는 이 시간이 그녀는 행복하다.

도시에서 그녀도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던 공시 도전 10년차, 자존감은 바닥을 내리쳤었다. 자신감이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던 자신을 발견하고 그녀는 귀향했다. 그리고 5년, 이젠 그녀를 개미 부인이라 부르는 베짱이 남편도 있다. 단조로운 농사일의 활력을 찾고자 춘천으로 기타를 배우러 가서 그곳 학원에서 만난 인디가수 김윤철(31)씨. 그는 낮에는 아내와 함께 애플 수박을 키우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밤 시간을 이용해 음악을 만드는 자신을 '파머 송 라이터'라 부른다. 

평생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으시던 어머니는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다 땀을 식혀주는 한 줄기 바람을 '우리 엄마가 나 힘들까봐 보내주는 바람'이라며 시원해 하셨다. 이제 어머니의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는 부부. 하루하루 달라지는 작물로 인해 '노력한 만큼'의 의미를 깨닫는 삶, 그리고 여전히 인디 가수로, 동네 노인분들의 한글 강사로 웃음 강사로 분주한 나날들. 그들은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하다. 

‘반농반X의 삶’ 표지 (저자 시오미 나오키, 역자 노경아, 더숲)

지난 2000년 일본의 시오미 나오키 씨는 다니던 통신회사를 그만두고 21세기의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반농반X' 연구소를 만든 이후 책 <반농반X의 삶>를 펴냈다. 지역에 내려가 반은 농사를 짓고 반은 하고 싶은 일은 하는 삶. 그가 주장하는 '반농'은 기본적인 먹거리의 자급자족으로 소비로부터 자유로워짐은 물론, 지역을 근거로 사람들과 연계되기 때문에 자신의 역할이 대도시 경쟁 시스템에 비해 한결 부각되기 쉽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동네꼬마였던 송주희 씨가 이제 마을회관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모아놓고 선생님이 되고, 여전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드는 김윤철 씨는 2018년의 트렌드 '소확행'을 넘어 시오미 나오키가 주장하는 바, 21세기의 새로운 대안적 생활 방식의 실현이다. 그리고 이런 21세기형 생활 방식이 도시로 오면 '텃밭 공동체'의 형태가 된다. 

도심의 초보 농부 이아름 씨 

EBS 1TV <다큐 시선> ‘행복의 온도’ 편

고양시 덕양구의 텃밭 공동체, 그곳에 이 더운 여름볕을 마다하지 않고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 농부 이상린 씨 (51), 기자 이아름 씨(32), 자신이 키운 먹거리로 요리를 하겠다는 '팜투 테이블'의 요리사 로이든 킴과 푸른 눈의 그의 아내 에밀리. SNS을 통해 의기투합한 이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이 농장에 모여 고정적인 노동을 하고 수확물을 함께 나눈다. 

그중 이아름 씨는 아직은 서툴고 그래서 늘 다른 성원들에게 신세를 지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는 위축되지 않는다. 이 공동체에서는 그런 그녀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 10년차, 하지만 경쟁논리로 돌아가는 직장 생활은 하면 할수록 그녀에게 고립감을 주었다. 직장을 그만두든가, 아니면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 다른 모색이 필요하던 그때, 이아름 씨는 '텃밭 공동체'를 만났다. 

자신이, 그리고 이웃이 키운 작물을 가져와서 만든 한 끼니의 식사. 그저 가지고 호박이고 갖가지 풀들이지만,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채소의 맛을 이제 그녀는 음미할 수 있다. 텃밭 공동체 일을 하며 직장을 그만두는 대신 새로운 일도 찾았다. '도심에서 먹거리가 해결된다면 좀 더 여유롭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시작된 이 공동체의 참여가 이제 그녀에게 먹거리의 해결 이상, 그와 관련된 직업으로의 이직까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제 '직장에서의 고독'에 시달리던 이아름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행복하고 여유로운 도시 농부가 있다. 

힘들어도 지치지 않으면 그게 행복

EBS 1TV <다큐 시선> ‘행복의 온도’ 편

행복지수 전 세계 57위, 선택지수 139위.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한국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 대신 '인생의 한 방'을 위해 자신을 던져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사회적 장벽에 봉착한 젊은이들은 이제 인생의 한 방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라는 '확실한 처방'을 스스로 찾아냈다. 그중에 36세의 여행 드로잉 작가 김현길 씨도 있다. 

모두가 바쁘게 걸어가는 도심, 그 가운데 배낭을 메고 여유롭게 걷는 이가 있다. 마을버스를 타고 서울에서는 이제 몇 남지 않은 옛 도심 북정마을을 찾은 그는 화첩을 꺼내고 샤프로 밑 선을 그리고 채색을 하느라 한나절을 보낸다. 재개발되지 않은 낡은 도심, 하지만 그의 화첩 속 도심은 푸른 하늘빛과 그 아래 오래된 집들이 '자세히 보아야만 드러나는 작고 하찮은 것들'의 위안이라는 김현길 씨의 표현 딱 그대로 스며져온다. 

블로그의 취미로 시작하여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책을 출간하고, 이제 드라마의 삽화 작가로도 이름을 날린 그가 처음부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남들처럼 살기를 원하던 부모님의 뜻대로 소프트웨어를 전공했고, 전자회사를 4년이나 다녔다. 하지만 더는 그 삶을 계속할 수 없을 때 그는 용기를 냈다. 사람들이 걷지 않은 제주의 길을 걸으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막막함'에 대한 위로를 얻었다. 알려지지 않은 제주 동네 풍경을 그림으로 담아내며,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운 작은 것들의 가치를 그려가고자 다짐을 했다. 그는 말한다. 힘들어서 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힘들어도 지치지 않을 때 사람은 행복할 수 있다고. 행복의 온도를 결정하는 건 내 자신이라고. 

EBS 1TV <다큐 시선> ‘행복의 온도’ 편

개인적 성장의 삶이 봉쇄된 사회, 그 속에서 등장한 신조어 소확행은 '한 방을 위해 살아온' 한국인의 삶의 방식에 대한 반응이자 대안이며, 문화적 감수성이 뛰어난 젊은 세대의 선택이라 전문가들은 정의 내린다. 프리터와 니트족이 더는 남의 나라 상황이 아닌 현실에서 '소유 가치' 대신 '이용 가치'의 확인, '규모의 이익'에서 '작은 것'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행복론의 등장을 <다큐 시선-행복의 온도>는 증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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