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아쉬움을 동시에 맛본 하루였습니다. '마린 보이' 박태환(단국대)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서 열린 2010 팬퍼시픽 수영선수권에서 남자 자유형 200m에서는 베이징올림픽 이후 가장 좋은 기록으로 2위에 올라 어느 정도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자유형 1500m에서는 역대 최악 수준인 15분 13초 91의 기록으로 전체 8위에 그쳤습니다.

하루에 치른 경기에서 이처럼 극과 극의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각 언론,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큼은 지난해 '로마 쇼크' 충격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 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사실 변명의 여지는 있습니다. 하루에 200과 1500을 뛴다는 것은 분명히 무리가 있었습니다. 페이스 조절을 비롯해서 영법, 호흡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중거리인 200m와 장거리인 1500m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200m를 뛰고 1시간 뒤에 1500m를 뛴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실제 1500m 경기에서 비교적 초반부터 처지고 어려운 경기를 펼쳤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였습니다.

▲ 박태환 선수ⓒ연합뉴스

그러나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가진 마지막 실전 점검이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그동안의 훈련 성과를 점검하는 차원에서 최고 전력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흐트러짐 없는 경기를 펼쳤어야 했던 박태환이었습니다. 하지만 1500m에서 훈련 성과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고 단순히 정상급 선수들과 모처럼 경기를 펼쳤다는 것에 대해서만 만족감을 표하는 정도로 마쳐야 했습니다.

장기적인 플랜으로 1500m를 관리해야 하는 가운데서 이제는 어려워진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너무 한쪽에만 치우치다가 모든 토끼를 놓쳤던 아픔을 맛봤던 지난해 로마 세계선수권 부진이 또 한 번 재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나타내면서 '선택과 집중'의 시기가 찾아왔다는 지적도 해볼 수 있었습니다. 1500m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지만 뭔가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잘 할 수 있는 종목에 좀 더 올인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1500m에 대한 집념이 강하고, 지구력을 요하는 1500m를 꾸준히 하다보면 주 종목인 400m를 더 잘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베이징올림픽 영광을 누린지 2년이 지난 지금 '남자 자유형의 진정한 제왕'으로 거듭나고 싶어 하는 박태환은 스스로를 극복해 나가려는 노력을 좀 더 키워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지난해 나타난 부진 때문이 아니라도 부진, 슬럼프를 극복하고 한걸음 한걸음 더 나아가는 박태환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스스로의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지난해 실패를 예전의 성공으로 되돌리기 위해 2006년에서 2008년을 넘어가는 3년의 시간동안 보였던 노력보다 더 많은 땀방울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박태환이 됐습니다.

그래도 지난해와 올해 박태환은 분명히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바로 수영을 즐길 줄 아는 자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예상외의 부진에 당혹감을 느꼈던 박태환은 이번 대회에서 200m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만큼은 만족감을 표시하면서 '앞으로 더 잘 하면 될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갖기도 했습니다. 이런 심리적인 안정감, 그리고 자신감을 찾으면서 경기력, 자세도 예전보다 좋아진 점이 있었습니다. 현재 아시안게임을 목표로 몸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는 것은 자신감을 점점 키워가고 경기력을 향상시키려 하는 박태환에게 큰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려를 낳게 한 1500m 역시 최종적으로 결과가 잘 나올 때 분명하게 컨디션이 좋다고 말하는 박태환의 영원한 스승 노민상 수영대표팀 감독이 "기대감을 가져도 좋다"고 말한 만큼 이번 한 경기에 너무 집착하는 것보다는 아시안게임 나아가 런던올림픽까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아직 주 종목 자유형 400m가 남은 가운데서 2경기를 치른 가운데 아쉬움이 있기는 했지만 희망이 있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다가오는 게 사실입니다.

박태환은 어제 경기를 가진 뒤 인터뷰에서 중국 에이스 장린과의 기록 격차가 벌어진 것에 대해 "장린을 의식하지 않는다.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분명히 박태환이 자신감을 찾았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김연아를 빗대는 것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세계챔피언 김연아의 라이벌이 본인 스스로이듯이 박태환 역시 라이벌은 다른 선수들이 아닌 본인 스스로일 것입니다. 챔피언은 남이 도와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나간다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 진리를 가슴 속에 새겨두면서 아쉬움, 약점을 보완하고 성과, 장점을 더욱 극대화하는 자세로 남은 기간 동안 훈련에 더욱 집중하고 노력한다면 다시 세계 정상에 오르며 포효하는 박태환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일단 남은 자유형 400m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희망적인 마무리로 이번 팬퍼시픽을 마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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