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김경수 경남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수사 중반에 들어선 드루킹 특검이 본격적인 매크로 댓글조작 수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특검의 김 지사 수사는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검이 드루킹 김동원 씨로부터 제출받은 USB에서 김 지사와의 메신저 대화 내용이 발견되는 등 정황상 의혹은 증폭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증거는 아직까지 부족하기 때문이다.

▲허익범 특별검사. (연합뉴스)

탄로난 거짓말…특검, 김경수 피의자 전환

특검은 드루킹 김동원 씨와 김경수 지사가 긴밀한 관계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황을 포착했다. 특검은 지난 18일 김 씨가 제출한 USB에서 김 지사와 김 씨가 보안메신저 '시그널'을 통해 주고받은 메시지 캡처본을 입수했다.

지난해 1월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김경수 지사는 김동원 씨에게 "재벌개혁 방안에 대한 자료를 러프하게라도 받아볼 수 있을까요? 다음주 10일에 발표 예정이신데 가능하면 그 전에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은 포함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목차라도 무방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김 씨는 "논의과정이 필요한 보고서라서 20일쯤 완성할 생각으로 미뤄두고 있어서 준비된 게 없습니다만 목차만이라도 지금 작성해서 내일 들고 가겠습니다. 미흡하면 주말에라도 작업해서 추가로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앞서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김경수 지사는 김동원 씨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냈으며 자신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경찰 조사 당시에도 김 지사는 "그동안 여러차례 신속하게 수사해줄 것을 요구해왔다"며 "다소 늦긴 했지만 오늘이라도 조사가 이뤄져 다행"이라고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특검이 입수한 시그널 메시지에서 김 지사와 김 씨가 대화를 나눈 내역이 드러나면서 김 지사의 거짓말이 탄로 났다.

이 밖에도 특검은 김경수 지사와 김동원 씨는 국회 앞 식당에서 만날 약속을 잡는 등 수시로 메시지를 주고받은 정황을 포착했다. 특검은 이러한 메시지를 근거로 김 지사와 김 씨가 공모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 (연합뉴스)

특검, 김경수에 업무방해 공모 혐의 적용…입증 가능할까

특검은 김경수 지사가 김동원 씨와 댓글조작을 공모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만으로 특검이 김경수 지사에게 업무방해죄 공범의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드루킹 일당이 벌인 댓글조작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네이버에 게재된 언론사의 기사에 댓글을 다는 네티즌들의 의사표현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포털의 서비스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형법 제314조 1항은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댓글조작은 매크로를 통한 위계에 해당한다. 314조 2항은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괴하거나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정보처리에 장애를 발생하게 하여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검은 김경수 지사를 드루킹 일당의 매크로 댓글조작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하고 서울중앙지법에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김 지사가 지난 2016년 10월 경 드루킹 일당의 경기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를 찾아 댓글조작 시스템 '킹크랩' 시연회를 참관했다는 일관된 진술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5월 18일 김동원 씨가 조선일보에 보낸 옥중편지에는 김경수 지사가 대선 전 매크로 사용을 허락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편지에서 김 씨는 "김경수 의원은 그때 카니발을 타고 제 사무실에 와서 2층의 강의장에서 제 브리핑을 받은 후 모바일 매크로가 작동되는 것도 직접 확인했다"며 "그때 제가 '모든 책임은 제가 지고 문제가 생기면 감옥에 가겠다. 다만 의원님의 허락이나 적어도 동의가 없다면 저희도 이것을 할 수는 없다. 그러니 고개를 끄덕여서라도 허락해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동원 씨는 "김경수 의원이 고개를 끄덕여 저는 '그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며 "김 의원은 프로토 타입의 기계를 보여준 데 대하여 '뭘 이런 걸 보여주고 그러느냐. 그냥 알아서 하지'라고 말했고, 저는 문을 나서는 김 의원에게 '그럼 못 보신 걸로 하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김경수 지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 참관을 했다는 것만으로는 김 지사가 댓글조작을 지시했다는 직접적 증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 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하라고 했다'는 등의 주장을 입증하는 것도 사실상 어렵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박상융 특검보는 "아직 좀더 조사할 부분이 (있다.) 준비를 위해 조사할 사항이, 준비할 사항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드루킹 김동원 씨. (연합뉴스)

야당, 최순실과 엮어보지만…정황상 의혹과 법적 해석은 다른 문제

김경수 지사와 김동원 씨가 주고받은 시그널 메시지가 일부 공개되자 야당은 김 지사를 향해 총공세에 나섰다. 특히 김 지사가 김 씨에게 재벌개혁 방안에 대한 조언을 구한 것을 문제삼았다. 야당은 이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불을 당긴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을 연결짓고 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드루킹 일당과 문재인 대선캠프가 완벽한 '원팀(One Team)'이었음이 특검 수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며 "김경수 지사가 재벌개혁 방안에 관해 조언을 요청했고, 드루킹은 작성하여 자료를 전달했으며, 며칠 뒤 문재인 당시 후보에 의한 '재벌적폐 청산,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이란 제목의 연설로 이어졌다고 한다"고 전했다.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또한 드루킹이 전달한 재벌개혁방안에 개성공단에 대기업의 투자를 활성화 시키겠다는 '개성공단 2000만 평 개발 정책'도 포함됐다고 한다"며 "사실이라면 드루킹의 제안이 김경수 지사를 거쳐 당시 문재인 후보 연설 및 공약에 반영된 것과 최순실과 정호성,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이어진 국정농단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바른미래당은 "드루킹은 김경수의 최순실"이라고 공세에 나섰다. 바른미래당 김철근 대변인은 "드루킹과 김경수 지사는 재벌개혁과 같은 중요한 대선공약을 논의할 정도의 관계였으며,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반영되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정도면 드루킹이 김경수 지사의 비선실세, 김경수의 최순실 급이었다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야당의 주장대로 김동원 씨와 최순실 씨의 행태는 유사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황상 드러나는 의혹과 법적 해석은 다른 문제다. 아직 근거가 부족하단 얘기다. 최 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됐던 '실세'였던 반면, 김 씨는 문재인 대통령과 직접적 연관성이 밝혀진 바 없고, 김 지사와의 관계 역시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또한 박 전 대통령이 당시 대통령이란 공직자 신분이었던 반면, 문 대통령은 당시 후보 신분으로 자연인이었다.

이민석 법률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관련 내용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최순실 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과는 사안이 다르다"며 "대통령 후보일 때 외부에서 조언을 받은 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통령 후보의 참모가 아는 사람에게 물어 의견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민석 사무총장은 특검의 영장이 기각된 것에 대해서는 "업무방해죄가 되려면 적어도 김경수 지사가 매크로 댓글조작을 하라는 지시를 내린 정도는 돼야 한다"며 "매크로 시연을 봤다고는 하는데, 이건 말만 갖고는 증명하기 어려운 문제다. 현재까지 언론에 밝혀진 정도의 내용으로는 증거가 약하다. 특검의 수사 진행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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