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산업은 미래 가장 유망한 산업이다. 아니 현재도 하나의 산업으로 의료는 중요하게 취급 되고 있다. '병원은 공공재다'라는 주장과 달리, 의료는 돈을 벌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산업으로 주목 받는 의료 산업에 대해 직접 언급을 하기 시작한 <라이프>는 흥미롭다.

기억나세요? 다시 왔어요;
의구심 품기 시작한 구승효, 예진우의 모든 것을 아는 이 원장의 실체?

본사 구조팀이 들어와 병원의 모든 것을 점검하기 시작한 상국대학병원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돈을 버는 구조로 체질 변화를 가져가려는 재벌사의 행태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오직 의료를 돈벌이로 여기면 치료마저 돈의 크기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생보사를 가진 재벌기업이 병원까지 소유하게 된다면 환자의 모든 기록은 공유하기 쉽다. 그저 드라마에서나 나올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보험사는 자산이 존재할 수 없는 곳이다. 자신들의 돈이 아닌 가입자의 돈으로 움직이는 곳이 바로 보험사이기 때문이다.

JTBC 월화특별기획드라마 <라이프(Life)>

환자의 은밀한 치료 내용이 생보사로 건너가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되는 현실. 그런 잔인함이 <라이프>에서는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재벌사에서 강성 노조 전문가로 혁혁한 공헌을 세운 구승효가 병원으로 옮겨왔다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명확하다. 화정그룹 회장이 미래 먹거리라며 상국대학병원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는 발언 속에 왜 병원 이야기에 재벌이 등장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상국대병원 확장을 위해 필요한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승효의 능력은 탁월하다. 상대를 빠르게 파악하고 그들이 느끼는 불안과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건드린다. 감성적으로 다가가 상대방을 무너트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승효는 타고난 승부사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아픔인 서산개척단 이야기가 언급되는 부분도 좋았다. 마구잡이로 잡아 들여 개척단이란 이름으로 공동생활을 하게 하며 강제 노동을 시키고 버린 국가. 그 국가 범죄에 대한 언급 역시 <라이프>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의사를 대변하는 입장인 예진우와 주경문의 역할은 <라이프>에서 중요한 가치로 다가온다. 수많은 의사들 중 두 사람이 중요한 이유는 의사 집단을 바꾸려 노력하는 동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JTBC 월화특별기획드라마 <라이프(Life)>

두 사람의 공통점은 사망한 이 원장과 가까운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고인이 된 그는 주경문을 상국대병원에 불러 흉부외과 센터장을 맡겼다. 대부분이 상국대 의대 출신인 병원에서 지방 의대를 나온 주 의사가 센터장이 되자 반발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오직 환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주경문과 같은 인물이 부조리한 병원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라고 봤을 것이다.

'전공의 법'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전공의들을 보호하려 하지만 실제 병원에서는 이런 상황이 지켜지지 않는다. 센터장은 여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고 모든 일들은 전공의 몫인 형태. 그게 바뀌지 않으면 문제는 계속 발생하게 된다. 병원은 돈을 아끼려 인력 충원에 미온적이고, 의사 집단은 의대를 늘리는 것에도 반대한다.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의사가 늘어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직하게 의사로서 역할에 충실한 주경문은 동료 의사들에게 농락을 당한다. 파업을 앞두고 모인 자리에서 주 교수에게 온갖 잡무를 떠넘기고 술이나 마시는 그들이 내세우는 파업의 이유는 그래서 허망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럴 듯한 이유와 명분은 존재하지만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들만의 세계. 그 안에 <라이프>는 깊숙하게 들어서고 있다.

파업을 빌미로 상국대병원 전체를 새롭게 바꾸려는 구 사장에게는 호재다. 파업은 노동자들의 마지막 선택이지만 사업자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마무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한다. 자신들은 노동자들과 다르다며 비교조차 불허 하는 의사 집단의 파업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환자를 앞세워 자신들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의사 집단의 행태는 현실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파업을 공식 천명하며 상국대병원은 기로에 서게 되었다.

JTBC 월화특별기획드라마 <라이프(Life)>

4회에서 핵심은 구승효와 예진우 두 사람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졌다. 재벌 계열사 사장으로 병원 사장이 된 구승효는 돈에 집착하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재벌가가 손해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구 사장의 행동이 용납되고 옹호 받을 수는 없다.

구승효의 다른 모습이 드러난 것은 암 센터에서 숨긴 자료 때문이다. 그들이 급하게 지운 자료 속에는 의료 사고 문건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들은 의료상 착오라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분명한 살인이다. 그리고 그 살인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감추기에 급급한 그들의 행태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하며 대응하는 이 센터장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고 분노를 표출하는 구승효의 모습은 압권이었다. 과도한 노동이 만든 필연적 결과라며 병원이 문제라고 물타기를 하는 센터장에게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어려운 공격을 하는 구 사장은 무서운 존재다.

투약 오류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내부에서 이를 은폐하고 묻기에 바쁜 것이 실제 병원의 모습이라는 후배 먹깨비 우창의 발언에도 잘 드러났다. 환자들은 어쩔 수 없는 병으로 사망했다고 믿지만, 의사들은 그렇게 환자를 살인하고 있다는 사실. 이를 고백하고 사죄하면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겠지만 그들은 그저 은폐할 뿐이다.

JTBC 월화특별기획드라마 <라이프(Life)>

예진우가 후배 앞에서 과거 자신의 잘못을 토로하는 모습은 이와 큰 대비를 이룬다. 자신의 오만함과 무지함이 환자를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고백. 절대 쉽지 않지만 의사도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는 진우의 발언은 너무 당연하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비슷한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환자 기억나세요? 다시 왔어요" 간호사가 던진 그 말이 진우를 변하게 만들었다. 오만과 교만을 버리고 더 낮은 자세로 환자만 바라보는 의사로 말이다.

고인이 된 이 원장과 진우의 관계는 진우 아버지와 동생 사고 후부터 이어져왔다. 지금도 멀쩡한 동생 선우가 따라다닌다. 그 일은 아버지와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한 직후부터 있어왔던 트라우마다. 아버지를 잃고 동생은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마치 자신이 잘못이라도 한 듯 막중한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낸 어린 진우는 그렇게 멀쩡한 선우와 함께하게 되었다.

누구보다 이 원장을 잘 아는 진우는 혼란스럽다. 3억이 넘는 돈 그리고 암 센터장의 발언. 이 모든 것은 오랜 시간 진우가 봐왔던 이 원장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 강직해서 부러질 것이 두려울 정도였던 이 원장이 부정하고 부당한 인물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

그 의문이 결국 진실을 풀어내는 도구가 된다. 진우가 가지는 이 의문은 결국 이 원장이 왜 사망할 수밖에 없는지 진실을 찾는 계기가 될 것이다. 화정그룹 회장의 의료 서비스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달라지기 시작한 승효. 그의 변화는 결국 <라이프>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진우는 오직 하나의 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 전혀 다른 길을 가던 승효가 있었다. 그런 승효가 노선을 변경해 진우와 같은 길을 걷게 된다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냉정하기만 했던 승효의 다른 모습이 등장하며 그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승효가 주도적으로 <라이프>를 이끌 수밖에 없음을 4회는 잘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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