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앞 촛불 같은 시대. 열강들의 다툼의 장이 되어버린 조선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운명이었던 이들의 삶은 제각각이었다. 조국을 버리고 자신의 탐욕에 빠진 사람들과 열강과 맞서 싸우려는 민초들, 그리고 수수방관하거나 자포자기한 사람들까지 그때 조선은 그랬다.

적 혹은 동지;
애신 둘러싼 세 남자와 의병들, 그들의 조선 구하기는 이제 시작이다

좁고 작은 다리 위에서 유진은 애신에게 '러브'를 함께하겠냐고 물었다. 애신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혁명가가 되고 싶었던 애신에게 '러브'는 그 혁명과 유사한 무엇이란 추측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미군이 된 조선인 유진이 같은 편이 된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그 '러브'라는 것의 시작은 통성명과 악수로 이어졌다. 서로를 알고 자신이 상대를 해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에 애신은 즐거웠다. 일본, 미국, 러시아에 맞서 조선을 구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그리고 능력 있는 이들의 연대가 절실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조선 전체를 팔아 치워버릴 궁리를 하고 있는 이완익의 등장은 당연하게 긴장감을 극대화시킬 수밖에 없다. 조선의 왕도 우습게 보는 이완익에게 중요한 것은 조선과 일본이 아니다. 오직 자신의 탐욕을 얼마나 채워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 외에는 없다.

자신의 딸마저 나이든 돈 많은 일본인에게 팔아넘길 정도의 이완익에게 중요한 것은 돈과 권력이었다. 그런 아버지에 맞서기 위해 일본인 성과 이름을 버리지 않고 일본인처럼 살아가는 쿠도 히나. 그런 그녀를 찾은 이완익과 대립각을 세우는 딸 쿠도 히나 사이에 구동매가 있었다.

일본 정부에 의해 이완익을 보호하는 임무를 받은 구동매. 하지만 자신에게 백정의 아들이라는 발언을 한 이완익에게 분노하게 나오는 구동매는 그런 남자다. 백정의 아들로 태어난 그에게 출신성분을 따지는 자는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완익이 좋아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돈을 받고 일하는 구동매에게 친일파이자 나라를 팔아먹기에 여념이 없는 매국노를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

일 공사관 하야시 공사는 미군과 대립을 조장했던 자들을 나무라는 자리에서 츠다를 옹호한다. 지금 세상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 츠다처럼 미친 자가 필요하다는 하야시의 선택은 당시 조선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죽은 동료의 품에 있던 임금을 꺼내 최고급 술집인 화월루를 찾은 츠다의 눈에 미녀 게이샤가 들어왔다.

화월루 최고의 게이샤를 품고 싶었던 츠다는 그녀에게 말을 걸며 조선인이 아닌지 의심하며 덫을 놓았다. 다른 일본 게이샤들은 알고 있는 하지만 그녀만 알지 못하는 콩에 대한 언급은 츠다를 분노하게 했다. 폭행을 하며 거리로 나선 츠다에게는 공적을 올리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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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해 조선인 게이샤를 폭행하고 이를 말리는 조선인을 총으로 쏴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지만 누구 하나 나서 막을 수 있는 이 없다. 이런 상황에 등장한 이가 애신이었다. 유진에게 왜 자신에게 '러브'를 하자고 했냐며 따지는 중 총소리를 듣게 된 애신은 츠다와 그에게 당하는 게이샤가 바로 의병대원인 소아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구해야 하오. 어느 날엔가 내가 될 테니까"

총을 들고 나서는 애신을 막으며 조선인 한 명 살린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런 유진에게 지금 막지 않으면 다음은 자신의 차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중요하게 다가온다. 애신이 왜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사격을 배우고 저격수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이자, 조선이 망하길 바랐던 유진이 오히려 조선을 구하는 길을 선택하는 이유가 될 테니 말이다.

애신을 구하기 위해 그녀의 총을 빼앗아 일본군 츠다를 궁지로 몰아넣은 유신. 저잣거리에서 일본군이 누군지 모를 이에게 총에 맞아 사망했다면 의병군에 대한 수색과 조선에 대한 일본의 압박은 더욱 거세졌을 것이다. 하지만 미군이 만취한 일본군의 총에 맞았다면 상황은 전혀 다르다. 유진이 애신을 구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학당에서 영어 공부를 하다 '러브'가 무슨 뜻인지 뒤늦게 알게 된 애신은 분노와 함께 묘한 감정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감정. 집안끼리 만들어진 혼사. 정혼자는 있지만 10년 만에 겨우 얼굴 한 번 본 것이 전부다. 희고 약하게 생긴 이 남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애신이 택한 삶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애신이 유진에게 끌린 이유는 희성과는 정반대 지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조선을 구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이 사랑으로 확장되어가고 있음을 애신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희성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오직 유진만 생각하는 애신에게는 함께 의병군으로 활약할 동지가 절실했다.

동매는 분노했다. 처음에는 그토록 찾던 '러청은행 예치증서'가 유진 방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찾은 것은 서신이었다. 그리고 그 서신이 동매를 진정 분노하게 만들었다. 조선을 살리고 죽일 수도 있는 10만 엔짜리 예치증서보다 애신이 쓴 서신이 유신의 방에 있었다는 사실이 동매를 걷잡을 수 없게 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잔인하게 빼앗기고 도망치던 동매. 어린 애기 씨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분노를 쏟아냈던 동매는 그게 사랑이었다. 그렇게 잊지 못하고 애신 곁을 서성이던 그는 그녀의 글씨체를 알고 있었다. 애신 아씨가 유진에게 서신을 보냈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애신이 보낸 서신을 읽을 줄 모르는 유진은 난망했다. 영어와 일본어는 능숙하지만 조선어는 알지 못한다. 국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읽는 동매를 보며 당황하는 것은 너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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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 호텔에서 세 남자가 다시 만났다. 유진과 희성, 동매. 실없이 웃기만 하던 희성이 정색을 하고 유진과 동매에게 경고를 한다. 애신이 자신의 정혼자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며 접근하지 말라는 희성의 선전포고.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지만 새치기를 당한 느낌이라는 동매. 과연 이들은 어떻게 될까?

'러브'라는 것과 내가 만약 뭔가를 한다면 조선을 망하게 하는 것이라는 유진의 말. 이를 종합해 유진이 자신을 망하게 만들려고 '러브'를 하자고 했다고 생각한 애신. 그렇게 총을 겨눈 애신에게 유진은 '복수의 시작이거나 질투의 끝자락'이라는 말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미스터 션샤인>를 관통하는 또 다른 주제이기도 하니 말이다.

유신은 애신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자신을 위해 희생한 유진 생각에 정신없는 애신이 경계하던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면, 유신은 버리고 싶은 조국을 구하기 위해 조금씩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러청은행 예치증서'를 추노꾼 출신 전당포 주인 형제들에게 맡긴 것은 그가 어떤 선택을 하려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동매는 애신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희성 역시 스스로 룸펜을 자처하며 망가지는 길을 택했지만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불합리한 현실을 바로잡고자 하는 그 마음은 애신을 통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저격수 애신을 목격한 동매, 자신의 옷을 해준다고 했지만 그 옷을 입고 저격수 활동을 한 애신을 확인하는 순간 희성이 어떻게 변할지 충분히 알 수 있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장면은 세 남자가 모인 자리에서 정혼자 애신을 구하기 위해 분노하던 희성의 말 속에 있었다. 도공이지만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의병군의 대장 역할을 하는 은산. 역적이 되고 싶어 나라를 구한다는 장 포수의 역설 속에 당시 조선이 존재했다. 왕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선인이기 때문에 조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던진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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