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이런 광경도 본다. 국회에서 국방부 장관과 기무사 소속 간부가 난타전을 벌인 것이다. 여진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나섰다. 본질은 계엄령 문건의 진실이며, 기무사 개혁의 필요성은 더 커졌고, 송영무 장관을 포함해 기무사 문건 보고 경위의 잘잘못은 이후에 따져보겠다는 거다.

언론은 송영무 장관 경질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전까지 청와대가 국방개혁 의지에 지지를 표명하는 방식으로 송영무 장관에게 힘을 실어줬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그냥 두고볼 수는 없게 됐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보나 송영무 장관의 교체 필요성은 지금으로서는 좀 더 커진 것 같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그보다는 기무사를 향한 경고에 더 무게가 실렸다고 생각된다.

송영무 장관과 기무사의 대립 구도는 그야말로 요지경이다. 국회 국방위원회에 기무사령관을 포함해 기무사 소속 간부들이 줄줄이 나와 국방부 장관이 계엄령 문건을 소홀히 다뤘고 법적문제도 없다고 했다는 말을 늘어놓은 것은 이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단지 “대장까지 지낸 장관”과 “36년 군인의 명예”의 충돌로만 볼 수는 없는 광경이다.

기무사는 국방부 장관 직속 부대지만 군통수권자인 대통령과 독대해 보고를 해온 특수한 맥락 속에 놓인 집단이다. 문제의 본질은 이 대목이다. 기무사가 국방부 장관을 우회해 청와대와 직접 ‘거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국회에서의 이 기이한 장면은 연출될 이유가 없다.

상관이 설사 그랬더라도 아니라고 하면 또 아닌 게 되는 것이 군 조직의 특성이다. 그럼에도 기무사가 이런 극단적 돌출행동을 보인 이유는 그야말로 조직의 운명이 벼랑 끝에 놓였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죽게 생겼으니 혼자만 죽지는 않겠다는 식이다. 말 그대로 너 죽고 나 죽자 이다.

송영무 국방장관(오른쪽)과 이석구 국군기무사령관(왼쪽)이 24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무사 앞에 놓인 조직적 위기란 무엇인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위법적인 일에 수시로 개입하였다는 사실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기무사는 자신의 권한과 존재의의를 망각하고 자체적인 여론조작팀을 만들어 인터넷 공간의 논의에 개입하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비롯한 민간인 사찰에 서슴없이 나섰다.

이제 정권이 바뀌었으므로 반드시 이런 사실들은 조직의 존립을 논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실제로 이 대목에 관한 논의는 사실상 기무사를 해체하는 수순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오랜 기간 정치 공작의 전문성을 갈고 닦아 온 기무사가 이 사실을 예상하지 않았을리 없다. 올해 초 기무사의 ‘퍼포먼스’를 보면 이미 상당한 위기감이 이 시기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 1월 25일 기무사령관을 필두로 전국의 모든 기무부대는 각 지역의 충혼탑 등 군 기념물 앞에서 정치적 중립을 다짐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하이라이트는 ‘세심(洗心)의식’이었다. 기무사령관을 비롯한 장성들이 서울 청계산에서 떠왔다는 물에 손을 씻고 흰 장갑을 끼웠다. 이날 수은주는 영하 15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정치개입이라는 과거의 악행을 반성하고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취지라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하지만 그간의 악행이 손 한 번 씻는 걸로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다. 위수령이니 계엄령이니 하는 문건 정국은 이 때문에 시작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국회 국방위에서 ‘하극상’ 논란의 장본인인 민병삼 대령이 작성했다는 보고서를 보면 이런 정황이 드러난다.

국회가 확인한 문제의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돼있다. “위수령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법조계에 문의해 보니 최악의 사태를 대비한 계획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한다. 장관 생각도 마찬가지다. 다만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 검토하기 바란다”, “위수령 검토 문건 중 수방사 문건이 수류탄급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면, 기무사 검토 문건은 폭탄급인데 기무사에서 이철희 의원에게 왜 주었는지 모르겠다. 기무부대 요원들이 BH나 국회를 대상으로 장관 지휘권 밖에서 활동하는 것이 많은데 용인할 수 없다. 그래서 기무사를 개혁해야 한다.”

기무사가 이 보고서를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한 것은, 손도 씻고 이제 착하게 살기로 한 자신들이 알아서 계엄령 문건을 찾아내 국방부 장관에게 가져다 줬는데도 무슨 이유에선지 미적대다가 이제와서 기무사 개혁을 외치며 자신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음해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보면 핵심은 “위수령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란 발언이다. 그런데 국방부는 이게 거짓이라고 한다.

이 쟁점은 최소한 진실공방일 수밖에 없고 마침 국방부 감찰단이 민병삼 대령의 PC를 조사했다고도 하니 잠시 뒤로 미뤄놓자. 애초 문제의 본질인 기무사 개혁 문제에 포인트를 맞추면 눈길이 가는 것은 오히려 “이철희 의원에게 왜 (계엄령 등 관련 문건을) 주었는지 모르겠다”는 뒷부분이다. 이철희 의원 측은 공식절차를 거쳐서 국방부를 통해 받았다고 하지만, 송영무 장관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이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무사가 “손 씻었다”를 증명하기 위해 국방부 장관과 별도 협의 없이 정치권을 대상으로 계엄령 문건을 ‘자진납세’하며 살 길을 모색한 걸로 본다는 것 아닌가?

기무사가 송영무 장관을 제치고 청와대와 정치권에 손을 벌렸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 이 상황은 기무사가 송영무 장관하고는 말이 안 통한다는 판단을 했다고 볼 때만 합리적 이해가 가능하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실제 송영무 장관은 “현역 시절 기무사의 폐해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다. 기무사가 허위의 사실로 나를 깎아내리는 보고서를 쓴 적도 있다”고 해왔다고 한다. 조선일보 역시 “평소 기무사를 싫어하던 송 장관이 기무사를 개혁하려 했고 그로 인해 쌓인 기무사 측 반감이 계엄 문건 논란을 계기로 폭발했다는 분석도 있다”고 했다.

송영무 장관이 계엄령 문건에 대해 불철저한 문제의식을 가졌을 수도 있고, 지방선거 기간 동안 정치 개입 논란을 의식했거나 기무사 개혁 여론을 더 키우기 위해 나름대로 ‘머리’를 썼을 수도 있다. 어쨌든 송영무 장관의 행위가 모두 적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걸 따지는 것보다 우선인 것은 대통령의 말대로 기무사를 개혁하는 것이다.

국방부 장관은 군 출신이더라도 형식상 예편하게 돼있다. 군을 문민이 통제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군 조직인 기무사가 대통령과 독대하고 청와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군의 동향을 직보하며 자기 권력을 강화하는 전형은 없어져야 한다. 나아가서 국방부 장관을 교체해야 한다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예 군 경력이 없는 인물까지 후보군에 올려놓고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국회에서 상관을 대놓고 헐뜯는 군에 그만큼의 충격이 필요한 것 같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