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은 만취되어 동이의 사가를 찾았다. 그리고는 평소 궁궐에서도 잘 쓰지 않던 호칭인 숙원이라는 말로 동이를 불렀다. 인사불성의 상태에서도 자기 여자를 본래의 자리에 두고 싶은 강한 열망이 시킨 무의식의 의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가로 내쳐지고 며칠 안돼서 동이를 찾은 것은 물론 숙종의 의지는 아니었다. 암행 나와 아마도 동이와의 추억이 잠긴 주막집에서 돼지껍데기를 안주 삼아 말없이 술을 마셨을 것이다.
마음의 정도에 따라 같은 술도 취기가 달라진다는 것은 혼자 술을 마셔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들도 잃고, 사랑하는 여자를 스스로 내친 숙종의 상실감은 아마도 술 한 잔에도 충분히 취할 정도로 약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상선은 인사불성 된 숙종을 궁궐이 아닌 동이의 사가로 인도했다. 마치 김유신의 말이 천관녀의 집으로 인도했듯이.
김유신의 말이 그저 습관을 따라 천관녀의 집을 향했다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영특한 짐승은 영물이 된다고 주인의 마음을 안 행동이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일개 미물도 그렇게 주인의 마음을 좇아 행동하는데, 숙종이 저자에 나와 취한 이유를 상선이 모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상선은 숙종과 동이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랑의 메신저 아니었던가. 숙종을 데려와서는 동이에게 “마마, 어서 안으로”하고 대놓고 동침을 종용했다.
그렇게 상선의 등에 기대 숙종은 동이를 찾아 기적적으로 하룻밤을 보낸다. 새벽녘에 일어나 환궁하면서 숙종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는 나를 이곳으로 데려오지 말게” 했다. 다행히 김유신의 말처럼 목에 베이지 않았다. 마음으로야 상선이 고맙겠지만 숙종으로서도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기에 상선에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사랑은 반란보다 위험하고 또 달콤한 것이다.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 비단 여인의 미모만이 이유가 다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구상 많은 나라에서 지금 드라마 동이에서의 숙종처럼 사랑 때문에 차라리 왕이 아니기를 바라는 심정이 얼마나 많았던가 생각하게 된다.
끝내 꺾을 수 없었던 동이의 충정은 모든 사실을 한성부 서윤 장무열에게 털어놓게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아픔이 동이와 숙종에게 다가왔음은 아무도 짐작할 수도, 그래서도 안 될 끔찍한 일이었다. 갑작스런 홍역으로 인해 동이는 아들 영수를 가슴에 묻게 된다. 아들의 죽음은 동이를 더욱 강하게 했다. 아들을 잃은 어미가 편히 궁궐의 비단금침에 몸을 뉘이고 싶지 않은 심정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결국 완강하게 반대하던 숙종도 영수의 죽음을 계기로 뜻을 굽혀 동이를 사가로 내치게 된다. 다만 아무런 혜택은 없지만 숙원의 지위와 호칭은 유지케 한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이 이별한 며칠이 정말 그립고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또 자기 여자를 지켜주지 못한 남자로서의 자책감과 절망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컸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숙종을 취하게 했고 훗날 동이를 구원해줄 희망을 잉태케 했다.
동이 44화는 처음으로 예고편 없이 끝냈는데, 그것이 무고의 옥 사건 없이 다른 허구의 사건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의구심이 남는다. 다음 주면 가닥이 잡히겠지만 무고의 옥이 아니라면 어떤 사건으로 장희빈의 최후가 그려질지, 그것이 아니라 무고의 옥으로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그 디테일은 또 어떻게 그려질지 관심의 끈을 좀처럼 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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