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에서의 북미정상회담 이후 순조로울 듯 했던 북핵문제가 진척이 없는 상태로 지지부진한 국면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현지시각 2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분통을 터뜨리며 매일 상황 보고를 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불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북한과의 대화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다양한 방법을 통해 내보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초조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언론이 일제히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깎아내리는 와중에도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북미대화에 대한 긍정적 발언을 내놓은 것은 보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공개되지 않은 어떤 채널에서 모종의 대화가 진행되겠거니 한 것인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니 의구심이 커진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이달 초 3차 방북을 했을 때부터 북미대화에서 잡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합의한 미군의 유해 송환 논의에 북한이 제대로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북한이 내놓은 메시지는 미국이 신고와 검증을 핵심으로 하는 본인들 일정을 밀어붙여 협상에 진전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요구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체제 보장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남북미가 참여하는 종전선언은 체제 보장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북한이 요구하는 것도 결국 이것이라는 게 언론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런데 미국은 쉽게 종전선언을 해줄 수 없다는 분위기다. 추측하자면 여론이 워낙 좋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인 걸로 생각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이후 미국 내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가 사실상 또다시 북한에 속고 있고 질질 끌려가는 협상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일제히 내놓고 있는 상태다.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불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고 생색이나 좀 내는 걸로 끝나지 않겠느냐는 전망까지 나왔다. 이 경우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다는 분석도 빠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니 트럼프 행정부가 종전선언에 쉽게 응할 수가 없다. 비핵화와 관련한 북한의 최소한 성의 있는 조치가 있지 않은 상태에서 종전선언에 나서면 정치적 자랑거리에 눈이 멀어 북한에 양보를 거듭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더 어렵게 하는 건 ‘양보론’이 북핵문제에 대해서만 제기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비판적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사실상 갖고 놀다시피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끌려 다니기만 했다는 거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부정한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가 대선에 개입할 어떤 이유도 찾지 못했다”고 하면서 논란은 그야말로 일파만파다. 미국의 정보기관은 러시아가 자국 대선에 개입한 사실을 이미 확인했다는 입장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정보기관보다 푸틴 대통령의 말을 더 존중한 모양새가 돼버린 거다. “반역자”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일부 언론은 ‘러시아 스캔들’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는 근본적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러시아 여성이 총기소지자유를 주장하는 모임을 만들어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또 뉴욕타임스는 현지시간 21일 러시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캠프 출신 인사 중 하나를 포섭하려고 시도했다고 본 FBI 작성 문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러시아, 중국에 매번 양보하는 사람으로 비춰져서는 곤란하다고 느낄 것이다. 따라서 북한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은 상태일 수 있다. 문제는 북한에도 비슷한 문제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청진조선소를 방문해 새로 건조된 전투함을 살펴보고 시험항해를 했다고 조선중앙TV가 17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연일 ‘현지지도’라 불리는 경제시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신문은 현지지도 일정을 대서특필 하였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당 간부 등을 비판한 발언 역시 그대로 실려 있다. 주로 속도감 있게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호통이다. 당 조직지도부까지 언급해 예외도 없고 성역도 없다는 점을 더더욱 강조하는 국면이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지도가 당과 군에 대한 인적청산으로 이어질 것인지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인적청산’을 연상케 하는 행보를 연일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내부에 북미대화에 관한 일정한 이견이 있고 반대파를 처리하는 어떤 수순을 이어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최소한 9월까지는 북미대화의 성과가 나야 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북한의 인적구성 변화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서로 움직일 수 있는 폭이 적다면 제3자가 나서줘야 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권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위력을 발휘할 순간인 것이다. 문제는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다. 오히려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설 자리가 좁아지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20일 노동신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싱가포르 렉처’를 언급하면서 “미국 상전의 눈치만 살피며 근본적인 개선을 위한 아무런 실천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등의 ‘말폭탄’을 쏟아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의 합의를 양 정상이 지키지 않으면 국제사회가 심판할 수 있다고 말한 것에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석탄 반입 문제이다. 제3국 소속의 선박 두 척이 대북제재 결의를 위반하고 북한산 석탄 9천여톤을 국내에 밀반입하는 장면이 미국의 민간위성업체에 의해 촬영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 정부가 이를 사전에 알고도 용인했다고 하면 대북제재를 무력화 시킨 것 아니냐는 비판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대화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에도 강력한 대북제재를 유지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구멍’이 되면 양국의 신뢰는 금이 갈 수밖에 없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더 성실한 제재조치 이행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는 북한 입장에선 고립되는 시나리오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선제적 조치(?)를 취한 게 아닌가 한다.

어쨌든 우리 정부 입장에선 이렇든 저렇든 종전선언 등 중재로 방향을 잡고 접근할 수밖에 없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미국 방문도 백악관 내 강경파를 설득하려고 했든 절충안을 제시하려고 했든 이런 맥락에서 추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선원 주 상하이 총영사가 국정원장 특보로 기용됐다는 보도도 나온다. 나름 해결사가 투입되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북한은 대외선전용 매체 등을 통해 남한 정부가 종전선언 문제에 수수방관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까지 분위기가 험악한 상태지만 9월까지 성과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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