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친구에게 혼났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음악 타령이냐? 국보위 입법위원이 인수위원장 되고, MBC 민영화가 발등에 불이고, 환경 대재앙 대운하를 밀어붙이겠다는데 한가롭게 음악 얘기나 하고 있을 때냐? 이제 세상하고 담 쌓고 지내겠다는 거냐?" 친구 질책이 백번 맞다는 거 인정한다.

대선 결과 보고나서 신문은 물론 TV 보기도 싫어진 게 사실이다. 내가 보기에 이번 대선은 "투명한 일류국가냐, 부패한 삼류국가냐?"를 선택하는 게 본질이었는데, 현실에서는 대다수 국민이 기존 정부 싫다고 반대편 후보에게 우루루 몰려간 꼴이 됐다. 10년전 IMF 구제금융 이후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면서 우리 문화도 급속히 자본을 닮아 갔다.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풍조가 확산됐고, 눈앞의 이해관계가 없으면 무관심과 무감각이 당연시됐고,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찾기 어려워졌다. 이번 대선은 이미 황폐해진 땅에서 썩은 꽃이 피어난 것과 같다.

나도 안다. 지금 심각한 위기라는 걸.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부패가 확산되고 무례함, 무감각, 무관심이 암처럼 번지는 걸 방치하면 안 된다는 걸. 이 병이 장기화하지 않도록, 더 이상의 타락을 막고 우리 사회가 상식과 이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는 걸. 그러나 세상과 이웃을 우리가 잘 몰랐을 뿐 바뀐 게 별로 없다는 것, 여전히 인간이 살아 있고 대화와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따라서 희망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또한 믿는다.

▲ Mozart (1756~1791).
중대한 현안에 대해서도 함께 얘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음악 얘기도 하고 싶다. 그래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 우리가 변함없이 넉넉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은근슬쩍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 한 선배와 점심을 먹었다. 몹시 바쁜 식당 아주머니들은 접시와 수저를 손님 앞에 집어던지다시피 했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손님들이 별로 없었다. 몹시 시끄러운 속에서 간신히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차도를 역주행하더니 인도로 뛰어들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이삿짐 내리는 고공 크레인 밑을 조마조마 지나 회사로 돌아오는 길.


나 : "정말 개념 없는 일이 왜 이렇게 많은지..."
선배 : "그 대척점에 있는 게 바로 모차르트 아니냐?"
나 : !!


그 선배는 모차르트의 현악5중주곡 G단조 K.516을 좋아한다고 얘기한 일이 있었다. 이 곡에 대해 적어 두었던 메모가 생각나서 그날 오후 선배에게 메일을 보냈다. 일부를 인용한다.

"죽음과 운명을 받아들이는 의연한 태도를 모차르트 음악에서 배울 수 있다고 한다면 건방진 얘기일까? 현악5중주곡 G단조의 1악장을 생각해 봐. 모차르트가 말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음악은 삶에 지친 한 인간의 독백으로 시작해. '난 피곤해, 난 슬퍼...' 잠시 후 탄식 소리가 되풀이 되지. '삶이란 건 언제나 슬펐어. 삶에서 다른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겠어?' 모차르트는 칭얼대거나 고함치는 대신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생각에 잠긴 채 노래하지."

"이어지는 독백. '하지만 삶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나는 가장 고통스런 순간에도 언제나 삶을 사랑했어.' 그리고 문득 찾아오는 깨달음! '그래, 나는 하느님과 화해했어, 그래서 나는 삶을 긍정할 수 있었어!' 재현부로 돌아오면 삶을 긍정하는 대목마저 단조로 나오지. 여기서 모차르트는 침착하게 말하고 있어. '그래도 여전히 슬퍼. 하지만 나는 변함없이 삶을 사랑해.'"

"이런 변화는 종교적 깨달음처럼 갑자기 다가온 게 아니라 모차르트 음악이 삶의 일부가 되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찾아온 인식이야. 모차르트의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야.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을 생각해 봐. 그는 아름다웠던 이 세상을 사랑한다고 조용히 말하고 있어. 이 세상과 헤어져야 하는 기막힌 현실을 그냥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는 거야."

"체념한 운명주의자처럼 노예의 삶을 살라는 건 아니야. 세상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열심히 사랑하며 열심히 살라고, 때로는 불합리한 권력에 저항하는 것도 사랑의 한 방법이라고 모차르트는 말하지. 모차르트는 자유 없이 살 수 없었던 사람이야. 그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데에 자유의 출발점이 있다고 생각했어."

잘 알려진 G단조의 두 교향곡 -누구나 멜로디를 기억하고 있을 40번 K.550, 그리고 영화 <아마데우스>로 유명해진 25번 K.183 - 과 같은 '비극적' 조성인 이 현악 5중주곡은 특히 하늘과 같았던 아버지의 죽음과 직접 연결된다는 점에서 모차르트의 음악 가운데 '전기적 사실'로 설명이 가능한 몇 안 되는 곡 중 하나이다. 1787년 4월, 임종을 앞둔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모차르트가 보낸 편지를 보자.

"하긴, 죽음이란 것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의 마지막 목적지이고, 저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좋은, 참된 벗인 죽음과 이미 친숙해졌기 때문에 죽는다는 생각이 두렵기는커녕 반대로 위안과 안도감을 느낍니다. 저는 아직 젊지만 잘 때마다 '오늘밤에 잠들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생각 때문에 제가 침울하다거나 슬퍼보인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이 축복에 대하여 저는 조물주에게 매일 온마음을 다하여 감사드리고, 모든 친구들과 이 축복을 나누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중략)…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아버님의 병이 나아지고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 모든 바람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으신다면, 더 편찮아지신다면, 부디, 부디 저에게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 사람이 낼 수 있는 제일 빠른 속도로 달려가서 아버님을 안을 수 있게…."

모차르트가 이 편지를 쓴 직후에 작곡한 게 바로 G단조 현악 5중주곡이다. 그의 음악은 가장 밝고 명랑한 순간에 슬픔의 그림자를 감추고 있지만, 반대로 가장 슬픈 음악에서 언제나 가장 따뜻한 위안과 긍정을 속삭인다. 빈에 정착해서 살던 마지막 1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죽음에 대해 생각했던 모차르트. 그가 결코 감상과 비탄에 빠지지 않고 삶에 당당하고 고귀한 자세로 맞서고 있었음을 이 곡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삶에 지친 한 인간의 독백에서 시작하여 온몸으로 외치는 절규처럼 정열적으로 삶을 끌어안는 1악장, 그리고 모든 악기가 약음기를 달고 삶의 슬픔과 기쁨을 명상하듯 노래하는 3악장이 특히 훌륭한 부분이다. 두 대의 바이올린, 두 대의 비올라, 한 대의 첼로가 이루는 앙상블에서 특히 음악 전체에 깊이와 우아함을 주는 비올라의 음색에 귀 기울여 들으면 좋다. 부다페스트현악사중주단과 비올리스트 발터 트람플러가 함께 연주한 레코드(1957년 녹음, CBS 레이블, K.515와 함께 들어있음)를 권하고 싶다. 아무런 과장이 없고 '에스프리'가 넘쳐흐르는 훌륭한 연주이다.

1984년 MBC 입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리즈에서 제주 4 .3, 여순사건, 보도연맹, 국가보안법, NLL 등을 다루었고, 모차르트, 정경화, 정명훈, 장영주, 장한나 등에 대한 음악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저서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우리들의 현대침묵사>(공저). 현 MBC 외주제작센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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