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가 지지부진한 검계2 에피소드에서 벗어나는 자세가 아주 근사했다. 그 계기가 된 것이 애초에 동이의 인기요인이었던 숙종과 동이의 애절한 사랑이라는 점에서 최근 위기에 빠진 동이를 다시 구출해낼 아주 강력한 동아줄이 돼주었다. 그러나 계속 가볍고 달콤했던 전과 달리 동이가 모처럼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하는 명장면, 명대사를 줄줄이 쏟아내며 월화드라마 본좌의 카리스마를 뽐냈다.

여자의 귀, 여자의 심장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숙종의 절규

숙종 지진희는 더 이상 허당 임금님이 아니었다. 목숨 바쳐 사랑한다는 흔한 말보다 “임금이 아니어도 좋단 말이다”라고 울부짖는 모습에서는 사실이고 뭐고 따질 겨를을 주지 않았다. 역사보다 위대한 것은 사람의 마음인 것이 분명했다. 드라마가 사랑 빼고 뭐가 남을까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태어나 평생 왕으로 살아온 숙종이 왕이 아닌 그저 한 남자가 되어도 좋다는 절규는 목숨 그 이상의 의미를 절절하게 전달해 주었었다. 그것이 드라마 속 허구인 것이 오히려 아쉽게 할 정도였다.

동이 : 제 목숨을 구명하고자 전하의 전정을 그르칠 수는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이 나라의 임금이십니다.

숙종 : 임금이 아니어도 좋단 말이다! 모르겠느냐. 나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너를 지킬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세상 가장 한심한 임금이어도 상관없다 그런 것 따윈 상관없단 말이다. 나는 궐에서 태어나 장차 임금으로 태어나 평생을 임금으로 살았다. 나도 내가 이럴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널, 널 잃을 순 없다. 동이야 널 내어줄 수 없단 말이다.

동이를 지키려는 숙종과 거꾸로 숙종의 전정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동이의 고집이 맞선 일차 대결은 숙종의 승리였다. 왕이 왕이 아니어도 좋으니 너를 지키고 싶다는 말에 아무리 대쪽 같은 동이라 할지라도 여자의 귀, 여자의 심장을 가진지라 더 버티지 못하고 숙종의 말에 따를 수밖에는 없었다. 이 장면에서 동이 아니 배우 한효주도 여자로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동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 감동의 여운은 동이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숙종의 지엄한 금족령을 깨고 늦은 밤 자신의 수족들이 붙잡혀간 한성부로 홀로 행차한다.

결국 동이는 검계2 수장 게둬라를 도운 혐의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동이는 인현왕후가 자신이 당했던 고초를 똑같이 겪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에도 불구하고 폐서인이 되어 사가로 쫓겨나게 된다. 물론 이 내용은 44회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결코 절망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의 시작이었다. 동이가 사가로 나간 후에 다시는 숙원을 만나지 않을 거라 했던 숙종은 만취상태로 동이를 찾는다.

동이에게만은 임금이기 전에 한 남자이고자 했던 숙종은 그리움과 자책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동이의 초라한 거처를 찾았고, 그 여인의 품에 안겨 정신을 잃을 정도로 슬픔을 겪는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켜내지 못한 사내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숙종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로 알고도 남음이 있다. 비록 첫 아들 영수를 잃고, 게다가 폐서인의 고난을 맞게 되지만 그래도 숙종의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 있어 희망의 빛줄기는 놓치지 않고 있다. 그 빛은 연잉군 금을 탄생시켰다.

얼굴이 아닌 마음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궁녀들의 의리

착한 동이는 자신보다 수족들을 챙기려는 마음이 먼저였다. 숙종에게도 그리 말하고 나와 기다리고 있던 감찰부 정상궁과 정임 그리고 자신의 수발상궁인 봉상궁과 애종에게 짐을 싸 궐을 나가라고 지시한다. 동이는 실제로 중전의 허락을 받아 그들을 퇴궐시켜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이와 오랜 세월 보낸 그녀들은 따로 살기보다 함께 죽기를 각오하는 결연한 자세를 보였다. 이 당차고 신념 가득한 여인들의 모습은 온몸에 전율을 전해주었다.

처음 감찰부에 들어올 때부터 엄마처럼 돌봐주던 정상궁의 눈물과 까불기만 하던 봉상궁 등이 눈물로 끝까지 함께 하기를 청하는 장면은 어찌 보면 전형적인 장면일 수도 있지만 연기자들이 진심을 다한 열연이 감동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을 바꿔줄 힘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뭐든 척척 해결해냈던 것과 달리 아무 것도 상황을 바꿀 힘이 되지 않지만 그저 서로의 마음을 다한 의리가 아름다웠다. 이 장면은 연기를 어떻게 했다고 논할 차원이 아니었다. 동이부터 애종까지 이 여인들은 여자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서 아름다웠고, 진심으로서 감동적인 연기였다는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도록 행복한 장면이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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