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김재철 MBC사장은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장에 대한 ‘고소’ 방침을 철회했다. <신동아> 4월호에 실린 김 전 이사장의 ‘큰 집 쪼인트’ 발언과 관련해, 기자회견 등을 통해 수차례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하겠다”고 밝힌 지 5개월만이다. 고소 방침을 철회한 이유는 이렇다. 고소를 할 경우, 김재철 사장은 물론이고 MBC도 죽는다는 것. 그러면서 “저는 고소할 생각이 없다”며 고소를 둘러싼 지난한 논쟁에 못을 박았다.

▲ 김재철 MBC 사장 ⓒMBC
김 사장의 공식적인 고소 방침 철회로 김우룡 고소를 두고 지난 5개월 동안 MBC안팎에서 이어졌던 논란은 일단락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처리할 급한 일이 있다” “(고소할) 시기를 보고 있다” 등의 이유를 대며 “고소 방침을 철회한 것은 아니”라고 질질 끌었던 고소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말을 번복한 그의 언사가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적절한 언사였는지는 살펴볼 일이다.

사실, 김 사장의 김우룡 고소 방침 철회는 쉽게 예상했었던 바였다. 김 사장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라면, 그 누구도 김 사장이 김 전 이사장을 진짜로 고소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관련 사안을 취재하던 기자들 그 누구도 “김 사장이 고소를 할 것”이라 보지 않았다. “저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던 기자들이 대다수였다. 기자회견을 통해 “고소하겠다”는 강경함으로 당장이라도 법원으로 달려갈 듯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MBC에서 흘러나오는 주장들은 허술하고도 구차했다. 듣기에 민망하기까지 했다. “송사에 휘말리지 말라는 선친의 권유 때문에” “(고소 보다) 중요한 일들이 있어서” “고소 여부와 시기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유를 둘러대다 5개월이 지나고서야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원인 제공자가 사라졌는데 왜 고소하냐”고 주장했지만, 김 전 이사장이 사퇴했던 지난 3월에는 왜 이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김 사장은 고소 방침 철회에 대해 “속인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그걸 가지고 왜 면박을 주냐”고 오히려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차례 입장을 번복한 뒤 고소 방침을 철회한 것은, 결과적으로 MBC 사원들과 국민들을 속인 게 맞다. 공영방송 MBC의 사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이라면, 적어도 그 발언이 미칠 파장과 영향을 생각하고 말했어야 했다. 그처럼 당당히 고소할 것처럼 밝혀놓고 이제 와서 “마음이 달라졌다”는 한 마디로 입장을 바꾸는 것은 공영방송 사장의 주장치고는 참으로 가벼운 언행이다. 그는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다”며 무척이나 쿨하게 이야기했지만, MBC라는 언론사가 갖고 있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공영방송 사장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이는 결코 적절하다 볼 수 없다.

▲ 4월20일 오전 MBC에 모습을 드러낸 김재철 사장(맨 왼쪽)이 노조원들을 향해 말하고 있다. 이날 연보흠 노조 홍보국장은 김 사장을 향해“왜 후배들 창피하게 만드냐, 한강으로 가라”고 일갈했다.ⓒMBC노조
관련 소식이 전해진 뒤, 트위터에선 “또 쪼인트 맞을까봐” “또 쪼인트 까이기 싫어서” “쪼인트 고 살다보면 다 그렇게 된다”는 트위터 이용자들의 비웃음 섞인 트윗이 돌고 돌았다. 차라리 김우룡 고소 방침 철회를 밝히는 그 자리에서 솔직한 그의 속내를 털어놨더라면 최소한의 믿음은 잃지 않았으리라 본다. 구차하고도 옹색한 주장을 늘어놓기보다는, 왜 이제 와서 고소 방침을 철회하게 된 것인지 그의 진심을 털어놨더라면 지금과 같은 생뚱맞은 주장은 나오지 않았으리라 본다.

김 사장은 지난 3월,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노조원들 앞에서 “남자의 약속은, 문서보다 강한 게 말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사원들이 (나를) 한강에 내다 버리세요”라고 밝힌 바 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김 사장은 이에 대해 이제 뭐라고 말할까? 이 말에 대해서도 그는 같은 이유를 대며 “마음이 바뀌었다”고 주장할까?

김재철 사장에게 공영방송 수장에 맡는 진중함과 신중함을 기대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중함과 신중함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 자신이 책임지고 했다던 MBC 임원 인사에 대해 “이번 인사는 김 사장 혼자 한 게 아니라, 큰집(청와대)이 김 사장을 불러다가 ‘쪼인트’ 까고 (김 사장이) 매도 맞고 해서 만들어진 인사”라는 김우룡 전 이사장의 발언만큼 김 사장과 MBC 모두에 대한 확실한 명예훼손은 없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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