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수준 결정 이후 후폭풍 수습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일련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비판을 나름대로 해야겠지만 대안을 모색하는 일도 게을리 할 수 없다. 정부가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짚고 우리가 더 봐야 할 문제는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17일 최저임금 인상 이후 대책 논의와 관련해 소상공인 단체 관계자들과 만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대단히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처럼 보였다. 소상공인 단체 관계자들이 정부의 대책을 사실상 거부했기 때문이다. 홍종학 장관은 정부의 정책 기조는 소득주도성장이고 최저임금 인상이 가계의 소비여력으로 이어지면 매출이 증대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로 설득에 나섰다. 또 상가임대차 계약 관련 지원과 카드 수수료 인하 등이 포함된 소상공인 후속 지원 방안 등을 마련하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소상공인 단체 관계자들의 반응은 냉소 그 자체였다. 홍종학 장관 소유의 상가 임대료부터 내리라는 비아냥까지 돌아왔다. 소상공인 단체 관계자들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과 이를 위한 실태조사 등을 주장했다. 최저임금이라는 제도에 직접적으로 손을 대지 않는 한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열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과의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상공인 단체 관계자들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영세한 자영업자의 경우 인건비 관련 비용의 부담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드 수수료 인하나 임대료 문제는 언 발에 오줌누기 수준이고 당장 손에 잡히는 대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최저임금 차등 적용 등의 해법을 받아들이는 것은 현재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결국 소상공인 단체 관계자들의 반발은 천막농성과 최저임금법 불복종 운동 등을 주장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좀 더 직접적인 소득 지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날 당정협의에서는 근로장려세제(EITC) 지급대상을 확대하고 지원액도 대폭 늘리는 방안이 논의됐다. 또 소득하위 20%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도 애초 계획을 앞당겨 당장 내년부터 30만원씩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통해 영세자영업자와 노인층의 소득을 일정하게 보완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당정은 부양의무자기준의 추가 완화에도 합의했다. 당연하게도 이런 조치들에는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 여당은 내년 예산을 최대한 확장적으로 편성하기로 합의를 해놓은 상태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6일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부담 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편의점 가맹점주들의 본사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고 불공정행위를 근절하는 게 핵심이다. 17일 공정거래위는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이러한 조사 일정은 하반기 내내 이어질 전망이다.

종합해보면 그야말로 다양한 방향에서 최저임금 결정 후폭풍을 보완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수언론은 이를 두고 또 ‘세금잔치’라는 둥 ‘세금주도성장’이라는 둥 비판을 내놓고 있으나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이런 대책이라도 실효적으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데 더 짚어봐야 할 것은 지금까지 언급한 정부의 대책이 일종의 대증요법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는 거다. 분명히 이런 조치들이 추진돼야겠지만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마다 이런 소동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저런 대책들도 중요하지만 한국 사회의 근본적 설계도 자체를 변경해야 하는 시점에 이른 게 아닌가 짚어봐야 한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이 대목에서 중요한 지적을 내놓고 있다. 장하준 교수는 17일 자신의 대표적 대중서인 ‘나쁜 사마리아인들’ 특별판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제조업 중심의 산업정책을 금융화 논리가 대신한 게 한국 경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하준 교수는 유독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경제구조에 대해서도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상황에서 노동시장에서 사실상 탈락한 이들이 영세자영업자가 되는 상황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을과 을’의 대결구도로 재생산되는 부조리의 원인을 짚은 것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도서 '나쁜 사마리아인들' 10주년 특별판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 정권의 경제정책도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경제민주화는 주주자본주의 강화로 대체됐고 야심차게 내놨던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뼈대도 이런 저런 속도조절론 속에서 흔들리는 형국이다.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경제정책의 두 바퀴를 이룰 것으로 기대됐던 혁신성장은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완화 정도의 수준에서 논의를 더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니 일각에서는 ‘삽질 경제’라도 동원하라는 지적을 내놓을 정도다. 정부 주도 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전형적 해법이라도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다.

‘삽질 경제’는 그렇다 치고, 제조업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의 핵심은 누구도 제조업에서 희망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이런 저런 금융화 논리의 전제가 됐던 ‘샌드위치 위기론’이나 ‘넛크랙커론’은 외피만 달리한 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제조업으로는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조차 이길 수 없으니 틈새시장을 찾아야 하고 ‘인적자원’의 우위와 지정학적 여건을 고려하면 서비스업과 함께 금융산업 발전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런 전제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제조업 분야는 산업정책과 관련한 담론의 차원에서 구조조정 대상으로만 다뤄져 왔다. 여기에는 앞서의 금융화 논리에 더해 박정희식 중화학공업화와 국가 주도 수출경제 체제의 중복투자 문제가 거론되는 게 일반적이다. 장삼이사의 인식 수준에서 거칠게 말하자면 민주화-효율성-금융화가 하나의 선택지를 이루고 그 반대편에 국가주의-비효율-제조업이 부정적 조합을 형성하는 모양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보정치와 노동운동 역시 이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적어도 두 가지가 필요할 것이다. 제조업을 혁신하고 생산성을 높이면서 구조조정이나 노동유연성 제고 등의 기존 해법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국가적 수준에서의 정책적 배려와 함께 노동자의 경영 참여와 노조 조직력의 확장이 필요하다. 노동자 경영 참여나 노조 조직률 향상 등의 해법은 이미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과제 이거나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약속한 것들이다. 진척이 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관료와 속도조절론에게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인가? 어쨌든 이 대목에서 밑그림을 정비하지 않으면 오늘의 논란은 앞으로도 끝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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