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후 첫 국가대표의 친선경기. 나이지라아전의 결과는, 2대 1, 우리 대표팀의 승리였습니다.
조광래 감독의 국가대표팀 데뷔전이자, 새로운 얼굴들의 등용의 장,
또 월드컵에서 이미 만났던 상대에 대한 리턴매치 등 여러 의미가 있는 경기이기도 했습니다만. 어찌됐던, 승리.

사실, 친선경기에서의 승리를 높이 평가할만한 이유는 없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승리. 단순한 승리라 평하기엔 조금 더 그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여태껏 우리 대표팀의 월드컵을 마친 직후 펼쳤던 친선경기들, 그 역사를 오늘은 한번 살펴보시죠.

좋았던 기억은 무려 1994년으로 올라가야 남아있습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직후 펼쳐졌던 9월의 친선경기, 우크라이나와의 2연전,
강름과 서울 동대문에서 펼쳐진 경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승리의 흔적이 있습니다.
2경기를 펼친 당시 친선경기에서 강릉경기에선 홍명보 선수의 득점으로 1대 0, 동대문에서는 김도훈, 황선홍 선수의 골로 2대 0 승리를 기록했죠.
하지만 이후로 15년이 넘도록 월드컵 이후에 펼쳐진 친선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온 것이 바로 대표팀의 묘한 징크스였습니다.

1998년 월드컵은 이후에는 친선경기 기록이 없고, 대신에 한중정기전이 펼쳐졌는데요.
월드컵을 사이에 두고 펼친 이 경기는 여러모로 안 좋은 기억, 월드컵을 직전에 두고 펼친 정기전은 황선홍 선수의 부상으로 기억된다면..
이후, 월드컵 직후 첫 대표팀 경기였던 상하이에서의 11월 경기에선 0대 0,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이어진 아시안게임에서는 2대 3으로 나름 약체였던 투르크메니스탄에게 패했다는 거. -이후로 선전을 거듭해 8강까지는 갔지만 말입니다.-

본격적인 친선경기가 있었던 2000년대 이후 월드컵에서 이 징크스는 본격적으로 들어나는데요.
월드컵 이후의 친선경기, 그 잔인한 역사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펼쳐진 친선경기는 세계 최강 브라질!! 당연히 이기긴 힘든 경기였습니다만...
11월에 서울에서 펼쳐진 친선경기의 결과는 2-3, 물론 패했지만, 이렇게 진 경기는 못했다고 할 수만은 없겠죠.
당시엔 설기현 선수와 안정환 선수가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아직 대표팀 감독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 김호곤 감독대행은 이 경기를 위해 잠시 대표팀을 맡았고, 결국 패배를 기록합니다.
놀랍게도 월드컵 뒤에 펼치는 친선경기의 저주는 이게 시작에 불과하다는 거.

이어지는 친선경기는 2003년 3월 말 부산,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무승부, 4월 서울에서 일본과의 친선경기는 0대 1로 패배,
일본도쿄에서의 5월 리턴매치에선 간신히 1대 0으로 설욕했지만,
이어지는 홈에서의 친선경기인 우루과이전과 아르헨티나전에선 내리 2연패를 기록합니다.
-당시 대표팀을 이끈 쿠엘류 감독은 2월에 부임한 이후 석달만에 첫승을 거뒀지만, 다시금 이어지는 홈경기 패배로 초반부터 흔들렸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이 끝난 뒤 평가전에도 이 징크스는 이어졌는데요.

당시에는 월드컵과 친선경기 사이에 아시안컵 예선이 있었고, 월드컵 이후 첫 경기였던 아시안컵 대만전에선 3대 0으로 승리했습니다만...
친선경기의 잔혹함은 10월, 가나와의 경기에서 나타났죠.

월드컵이 끝난 뒤 첫 친선경기는 10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이번처럼 아프리카 국가였죠.
가나와의 친선경기에서 우리는 김동현 선수의 득점이 유일했고, 결국 1대 3으로 크게 졌다는 거.
베어백 감독은 공교롭게도 부임 뒤 첫 패배를 친선경기에서 기록하게 됩니다.

아시안컵 조별예선을 지나 다시금 펼쳐진 친선경기는 전지훈련을 떠났던 영국런던에서 그리스와의 만남,
2007년 2월에 펼쳐진 이 경기에선 1대 0 승리, 하지만 이어진 서울에서의 친선경기는 연패가 이어집니다.
3월 우루과이에게 0대 2 패배, 네덜란드를 서울로 부른 6월 경기에서도 역시 0대 2로 패배를 기록했습니다.
도합 월드컵 직후의 친선경기에서 홈 3연패를 쓴 끝에 간신히 6월말 서귀포에서의 이라크전에서 친선경기 홈 첫승을 기록했다는 거.

이런 징크스들 사이에 어제 조광래 감독의 첫 경기이자, 월드컵 직후의 첫 친선경기 승리는 참 쉽지 않은 승리란 생각이 드는데요.
기분 좋은 출발, 조광래호의 앞날에 왠지 더 기대가 가는 건 묘한 징크스를 이겨낸 덕이 큰 거 같습니다.

스포츠PD, 블로그 http://blog.naver.com/acchaa 운영하고 있다.
스포츠PD라고는 하지만, 늘 현장에서 가장 현장감 없는 공간에서 스포츠를 본다는 아쉬움을 말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다른 생각들, 그리고 방송을 제작하며 느끼는 독특한 스포츠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