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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 국가는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낭만적'인 질문[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8.07.16 17:01

남자 주인공 캐스팅, 이어진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나이 차, 뜻밖의 연기 논란 그리고 구한말이라는 시대적 배경 등등 <미스터 션샤인>을 둘러싼 논란은 마치 '두더지 잡기'와 같다. 마치 망치로 두드려대는 타이밍을 놓쳤단 듯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런 논란이 무색하게 시청률은 상승세다. 김은숙, 이병헌이라는 화제성을 업고 8%를 거뜬히 넘기며 시작하더니, 3회 차에 10%를 넘어섰다(1회 8.852%, 3회 10.082%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주인공들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미스터 션샤인>의 시작은 비감했다. 강화도 김씨 가문의 노비였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야반도주하다 잡혔다. 아비는 멍석말이 매타작으로 목숨을 잃었고, 어미는 유진을 살리기 위해 양반네 며느리의 목에 비녀를 그었다. 그리고 어미의 목숨 값으로 던져준 노리개를 들고 유진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스스로 우물에 몸을 던졌다.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어린 유진은 자신을 쫓는 추노꾼들을 따돌리며 밤을 낮 삼아, 생감자를 씹으며 길을 이어갔다. 구사일생 도공의 집에서 만난 미국인을 따라 이 땅을 떠났다. 그것만이 어머니가 남긴 유언을 지키는 길이라 어린 유진은 생각했다. 그리고 낯선 이방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총을 들었다. 그 총이 유진초이가 된 그(이병헌 분)를 다시 고국으로 돌려보냈다.

조국을 '오만 원'에 팔겠다는 이완익(김의성 분)을 처단하기 위해 총을 든 의병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배신자가 있었고, 결국 그들은 총을 들어 배신자를 저격하는 대신 그 총에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동지를 지키기 위해 홀로 남아 적들로부터 시간을 끌던 어미는 자신의 아이를 동지에게 전한다. 아비 역시 어미의 뒤를 이어 장렬하게 목숨을 잃었다. 아이는 그렇게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진 어미, 아비대신 학자인 할아버지의 그늘에서 자랐다. 하지만 정숙한 여인으로 살라는 할아버지의 엄명에 목숨을 기꺼이 내놓겠다는 그녀 고애신(김태리 분)을, 할아버지는 의병의 아들이었으며 그렇게 살지 않겠다더니 그 자신 역시 의병이 된 장승구(최무성 분)에게 보낸다.

구동매라고 다를까. 그의 어미, 아비는 백정이었다. 칼을 들어 동물을 잡는 게 그들의 직업이었지만, 돌아오는 건 일반 백성들조차 사람대접 하지 않는 모진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동물을 잡던 칼끝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위 세 주인공들은 성별과 연령은 달라도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조선, 혹은 대한제국이라는 공동체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들은 사람으로 대접받은 적이 없는 존재들이다. 

그리스가 민주주의의 원형이라지만, 거기서 주인이 되는 이들에 ‘노예'와 '여성'은 해당되지 않았다. 조선에 일본이 쳐들어 왔을 때 그 일본군을 인도한 이들이 조선의 백성이라고 하여, 과연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신의 땅을, 땅에서 나는 소출을 빼앗아가는 '양반'의 나라와, 자신들에게 쌀을 주는 왜군 사이에서 한 백성들의 선택에 어떤 기준의 잣대를 댈 수 있을까? 애초에 '양반'의 나라였던 조선에서 노비와 백정과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바로 거기에서 <미스터 션샤인>의 질문은 시작된다. 지켜주지 않는 국가, 지킬 가치조차 없는 국가, 그 국가의 구성원인 그들에게 '국가'는 어떤 것일까?

그 질문을 시작하기 위해 드라마는 가장 '낭만적'으로 주인공들 캐릭터를 구축했다. 조선은 비루했고 비겁했으며 외세 앞에 무력했고 초라했다. 그에 비해 일본이든 미국이든 외세는 영악했으며 강력했고 압도적이었다. 이완익을 저격했던 고애신의 어미와 아비의 존재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찾기가 희박하듯, 드라마 곳곳에서 역사적 사실의 불충실함과 빈약함, 심지어 왜곡을 만난다. 그 '부실'한 역사를 엮어 드라마가 도달하고자 한 것은 구한말의 역사 속에서 애초에 국가의 성원인 적이 없는 세 주인공들의 가장 비극적이고도, 그래서 ‘낭만적인' 캐릭터이다. 

그리고 이는 일찍이 고려의 무신이었으나 나라의 버림을 받아 칼이 꽂힌 채 천년의 세월을 살아내야 했던 '도깨비' 김신과, 그의 아내가 되기 위해 비극적 가족사를 감내해야 했던 지은탁의 서사와 잇닿는다. 허구의 역사를 비극적 낭만적으로 길어왔던 <도깨비>의 서사가 이제 가장 극적인 역사의 전환기였던 구한말로 시점을 옮겨 '사랑'과 함께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자각하는 근대적 개인, 그들의 선택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개인에게 ‘국가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은 '모던'하다. 근대 이전에 개인의 존재와 역할, 의식이란 건, '신분'이란 틀 속에서 규정받는 개인들에겐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드라마는 신분제에서 살던 주인공들을 그 '신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가장 극적인 장치를 도입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신분을 부여한 부모님을 잃었다. 그저 잃은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존재를 규정한 공동체가 그들을 버렸다. 거기서 그들의 첫 번째 자각이 싹튼다. 그저 노비로, 백정으로 순탄하게(?) 살아갔다면 몰랐을 공동체의 ‘실체’를 뼈저리게 깨달으며 자기 존재의 비감함을 통탄한다. 존재론적 깨달음은 가장 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온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들은 자신이 몸담았던 공동체로부터 '이반'하거나, 된다. 유진은 살아남기 위해 양반 사회인 조선을 떠나 미국이라는 신문명에 자신을 던진다. 구동매 역시 칼잡이였던 자신의 특기를 살려(?) 일본의 무사가 되었다. 어미, 아비의 뜨거운 피를 물려받은 명문 양반가의 여식 고애신은 할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조신하게 한학이나 배우다 누군가의 '지어미'로 살아가야 할 운명을 거역한다. 아녀자가 무슨 '나라 걱정'이냐는 할아버지의 걱정이 무색하다. '애기씨'라는 존재로 모두에게 인정받는 양반이라는 사회적 신분이 무색하게, 그녀가 스승으로 받드는 건 사냥꾼 아비를 둔 포수이고, 바느질 대신 총을 든다. 전근대와 근대의 격동기에 그들은 그렇게 '집단'에서 벗어난 '개인'으로 각자 자신의 운명 앞에 선다.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조선이라는 신분제 사회에서 이탈된 그들은 그래서 '근대적 개인'으로서 자각하고 그로부터 개인과 국가에 대한 질문에의 토양에 던져지게 된다. 그저 양반님네에게 당하는 게 당연한 존재가 아니라, 버림받음에 대한 '자각', 양반 사회의 일원이 아니라 무너져 가는 조국에 대한 비감함이 그들을 자각된 개인으로 '국가' 앞에 서게 만드는 것이다. 과연, 지킬 가치조차 없는 국가를 지켜야 하는가. 나를 지켜주지도 않는 국가가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더 나아가 국가란 무엇인가? 이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해 김은숙 작가는 한껏 '드라마틱한' 인물들을 포진시켰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고애신이 조국을 구하기 위해 선뜻 총을 든 것과 달리, 유진과 구동매는 '자기 코가 석 자'다. 그들의 총과 칼은 자신을 버티기 위한 방패이다. 

하지만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유진과 구동매는 원치 않았지만 자신의 '존재'를 본다. 그리고 그 자신을 버렸던 그래서 돌아올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던 조국, 그럼에도 그 속에서 득세하는 적들 사이에서, 그리고 총을 든 고애신과 만나며 새로운 질문에 봉착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고전적이지만, 당대적이다. 우리가 지난 정권에서 던졌던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4월의 바다에서 비롯된 질문들이 공동체의 존재와 의무에 대한 여러 드라마들을 탄생시켰듯이, <미스터 션샤인> 역시 그 계보에 서있는 후일담이다. 단지, 그 질문이 '공동체'의 당위에 대한 의문을 넘어, '나'로 바통이 넘겨졌을 뿐이다. 그러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에 특출 난 재능을 보였던 김은숙 작가에게는 이 새로운 도전이 시련이 될 수도 있다. 작가가 그려내는 역사는 성기고, 뜻밖에도 호흡은 느리며, 연기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과연 이 시련을 또 한번 극복해낼 것인지, 역시나 김은숙이라는 '신화'는 이번에도 가능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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