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신이 처음 배운 영어 단어는 단순하지 않다. 총과 영광, 그리고 슬픈 결말은 결과적으로 <미스터 션샤인>을 관통하는 핵심어일 것이기 때문이다. 격변의 시기 조선 최고 명문가 애기씨가 처음 배운 영어 단어들로 결합된 대서사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판도라 상자의 마지막에 튀어나온 희망처럼 '러브'는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된다.

글로리에 모인 세 남자;
이완익의 복귀 악랄함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권력보다 더 좋은 것이 '러브'라 했다. 그 말 뜻을 몰라 외국말을 잘 쓰는 유진에게 물었더니 대뜸 힘든 일이라 한다. 그리고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역시 '러브'는 권력보다 더 좋은 것임이 분명했다. 비록 그 '러브'가 뭔지 모르지만 애신의 마음속에 가득 채워지는 무언가라는 것은 명확했다.

유진을 동지라 생각했던 이유는 미국의 품위를 떨어트렸다는 이유로 로건을 암살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품격을 떨어트린 로건을 암살하기 위해 나선 애신과 같은 이유였기 때문에 동지라 생각했다. 하지만 유진의 총은 미군을 조선 땅에 들이기 위해 수단이었다.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애신의 총은 열강들을 조선에서 몰아내기 위함이었다. 남의 나라에 함부로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는 그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작금의 시대가 '낭만의 시대'라 하지만 그 시대는 '야만의 시대'였다. 왕은 있지만 왕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라를 팔아먹기에 바쁜 자들만 득세하던 시절이었다.

제물로로 가던 날 미군의 총기 하나가 사라졌고, 애신도 몸수색을 피할 수는 없었다. 황망한 상황에서 애신을 구한 것은 유진이 아니라 글로리 호텔 주인인 쿠도 히나였다. 도발적이며 여러 나라 말을 사용하고 세련된 쿠도 히나의 모습이 색다르게 보이는 애신과, 유진을 마음에 품었지만 그가 다른 사람을 보고 있음을 알게 된 쿠도 히나는 마음이 복잡하다.

쿠도 히나의 글로리 호텔은 조선에서 가장 크고 세련된 곳이다. 당연히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다 그곳으로 모인다. 없는 것 없는 그곳은 그래서 극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주둔한 미군 장교의 숙소이자, 조선 최대 갑부의 손자가 묶는 곳이기도 하다.

글로리 호텔을 지키는 일본 낭인들을 이끄는 구동매에게 애신은 생명의 은인이다. 부모가 마을 사람들에게 매 맞아 죽어 가던 상황에서 백정의 아들인 자신을 가마에 태워 구해준 인물이 바로 애신이다. 그런 애신에게 동매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다. 자신과 달리 양반의 자제로 태어난 자들을 향한 분노였지만, 애신에게는 두려움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었다.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사람 목숨은 다 귀하다"란 공자의 말을 인용했던 어린 애신의 모습이 동매에게는 가증스럽게 다가왔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일본으로 건너가 조직에 몸담고 살던 그가 조선으로 돌아왔다. 자신을 여전히 백정의 아들이라 싫어하느냐는 질문에 애신은 '변절자'이기 때문이라고 정리한다.

애신의 주변에는 세 명의 남자가 있다. 유진과 동매, 그리고 희성. 뒤늦게 일본에서 조선으로 돌아온 희성은 정혼자인 애신을 본 후 후회했다. 어른들끼리 혼담을 나누며 정한 정혼자가 싫어 조선으로 돌아오지 않고 룸펜으로 살았던 희성은 자신의 정혼자를 보는 순간 시간이 아쉽기만 했다.

희성과 유진은 악연이다. 그때 아직 엄마의 뱃속에 있던 희성은 유진과 그렇게 지독한 악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희성의 할아버지는 유진 어머니를 권력자에게 뇌물로 바치려 했고, 이를 알아차린 아버지가 야반도주를 준비하다 걸렸다. 어머니로 인해 어린 유진은 목숨을 건졌지만, 부모는 그렇게 김씨 일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동매의 삶도 유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시대 신분제도의 가장 아래 단계였던 백정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모진 삶을 살았던 동매는 그래서 일본 낭인이 되었다. 조선에 대한 증오는 그렇게 두 남자를 미국과 일본으로 나눴다. 희성은 탐욕스러운 할아버지와 아무 생각 없는 아버지를 견딜 수 없어 일본으로 떠났다. 이들 세 남자 모두 조선에 대한 증오심을 가진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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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은 조선을 떠난 지 30년 만에 돌아와 우연과 같은 필연처럼 반복적으로 만나게 된 애신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글로리 호텔에서 애써 변명하는 그의 모습은 명확하게 사랑이다. 애신은 그 뜻을 알지 못했지만 '러브'라는 단어를 언급한 직후부터 마법은 시작되었다.

지독한 복수심으로 미국에서 버티고 장교까지 되었던 유진. 그렇게 조선으로 돌아오면 복수를 하고 싶다는 막연함도 있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 복수심도 무의미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희성 아버지가 저잣거리에서 목격되었다. 보는 순간 온 몸이 마비가 되는 그 감정은 분노였다.

온갖 수탈과 약탈의 결과로 조선 최고 갑부가 된 김씨 집을 찾은 유진은 목에 상처가 뚜렷한 희성의 어머니인 호선에게 노리개를 보여준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진과 호선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극심한 공포에 떠는 호선과 희성의 아비에게 총을 겨누며 부모님 묘 자리는 해주었냐고 질문하는 유진의 모습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잊은 줄 알았던 감정은 순식간에 살아났다. 그 감정은 결과적으로 미국인으로 살고 싶었던 유진을 변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자신이 미국인이라 외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자신의 상관인 카일까지 눈동자가 까맣다는 말을 하며 인종적 차이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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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되어 있던 유진의 분노는 결국 애신과 함께 부도덕한 조선의 위정자들을 저격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다. 그건 그들의 운명이다.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없는 그 운명의 소용돌이에 유진도 올라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유진이 희성의 부모에게 총을 겨누는 순간 어린 시절 유진으로 돌아간 그는 더는 미국인일 수는 없었다.

가장 악랄한 인물인 친일파 이완익이 돌아왔다. 조선을 접수하기 위한 사명을 띠고 돌아온 이완익. 그리고 그의 딸이지만 아버지를 증오하는 쿠도 히나. 그녀의 호텔을 지키며 이완익의 오른팔이 되고자 했던 동매는 애신을 위해서는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인물이다. 증오와 애증,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동매는 애신을 사랑한다.

뒤늦게 애신을 바라보는 정혼자 희성 역시 변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조선 제일 부잣집 손자로 태어나 남 부러울 것 없이 컸지만, 항상 그게 증오스러웠던 룸펜 희성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는 조건을 모두 갖춘 애신을 사랑하는 남자다. 이 세 남자는 과연 총과 영광 그리고 슬픈 결말이 도사리고 있는 시대를 어떻게 해쳐나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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